[전문의에게 듣는다] 중증외상

  • 임호
  • |
  • 입력 2014-09-16 08:02  |  수정 2014-09-16 09:32  |  발행일 2014-09-16 제21면
사고 후 보이지 않는 손상, 생명 위협하는 시한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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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를 당한 외상 환자의 경우에는 눈에 보이는 당장의 상처도 중요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한폭탄처럼 진행되고 있는 숨겨진 외상에 대한 평가나 검사도 매우 중요하다. <영남대병원 제공>
버스에 치여 응급의료센터로 이송된 이모씨(39). 기흉이 발견된 이씨는 응급처치로 흉관 삽관을 하고 바로 CT 검사를 했다. 겉모습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어 보이던 머리 부위. 하지만 뇌에 출혈이 발생한 긴급 상황이었다. 의료진은 다른 검사를 생략하고 바로 신경외과 전문의를 호출했고, 수술을 통해 뇌출혈을 막았다. 만약 겉모습으로 아무 이상이 없다고, CT검사를 하지 않았다면 이씨의 생명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이 때문에 외상외과는 단순한 겉모습뿐만 아니라 환자의 상태를 세밀하게 점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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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정민 영남대병원 외과 교수

두개강 충격 받으면 뇌출혈
출혈 조금씩 서서히 발생땐
늦게는 몇주 뒤 증상 나타나

흉강 내엔 기흉·혈흉 발생
호흡 곤란·혈압 감소 위험

복강 손상땐 증상 다양해
사고로 인한 복통 환자
적어도 24시간 지켜봐야

환자 상태·경과 의심땐
전문 진료 받는 것이 중요

 

영남대병원 배정민 외과 교수는 “외상 환자는 외견상 상처가 있고 상처의 크기나 출혈량, 팔다리 부분의 통증 등을 보고 중증 외상 환자인지 아닌지 대강 예상할 수 있다”며 “그러나 외견상 상처가 없는 환자 중에도 생명이 위험한 경우가 종종 있다. 사고로 다쳤을 경우에는 당장의 외견상 모습으로 가벼운 사고나 상처라고 단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경고했다.


문제는 국내 중증외상환자에 대한 일반시민 대상 교육과 의료체계 개선이 시급하다는 것.

실제 교통사고나 추락 등으로 인한 국내 중증외상환자 사망률은 35.2%(2010년 기준)에 이른다. 10~15% 수준인 일본이나 미국에 비해 크게 높다. 갈길이 멀다는 소리다.

배 교수는 “외상사고가 위험한 것은 우리 몸에 공간을 이루고 있는 구조가 몇 군데 있기 때문”이라며 “이런 공간이 충격을 입으면 공간 내로 서서히 출혈 등이 발생되어 사고가 발생하고 늦게는 24시간이 지나서 증상이 나타나 환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런 공간 중 대표적인 곳이 두개골로 둘러싸인 두개강(頭蓋腔), 갈비뼈로 둘러싸인 흉강(胸腔), 복벽으로 둘러싸인 복강(腹腔)이다.

두개강에 충격을 받으면 뇌출혈이 발생할 수 있다. 뇌출혈도 양이 많으면 사고가 나자마자 의식이 저하되기 때문에 누가 봐도 생명이 위급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초기 뇌출혈량이 경미하고 출혈이 조금씩 서서히 발생되면 그로 인한 증상이 며칠이나 몇 주 뒤에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뇌출혈을 지연성 뇌출혈이라고 하며, 드물지 않게 발견된다. 머리 부위에 단순 타박상을 입고, 1개월 후 일시적인 행동장애가 발생해 뇌 단층 촬영 검사 결과 지연성 뇌출혈이 발견되기도 한다.

흉강에 충격을 받으면 갈비뼈 골절도 생기지만, 흉강 내에 기흉이나 혈흉이 생길 수 있다. 기흉이나 혈흉도 양이 많으면 흉통과 호흡 곤란이 심해지고, 혈압도 저하되므로 누가 보아도 생명이 위급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기흉이나 혈흉이 조금씩 진행되면 며칠이 지나서 호흡 곤란이나 혈압이 감소되어 생명이 위험한 경우로 진행할 수도 있다.

복강의 경우, 사고 당시에 발견되지 않았던 손상들이 뒤늦게 발견되면 다른 부위에 비해 더욱 다양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어 많은 주의가 필요하다.

배 교수는 “복강 내에는 간장, 비장, 위장, 소장, 십이지장, 대장, 신장 등의 많은 장기와 이런 장기를 먹여 살리는 혈관이 있다”며 “이러한 장기나 혈관이 사고로 인한 충격으로 손상이 심하면 심한 복통이나 실신, 저혈압 등이 바로 나타나지만, 경미한 경우에는 서서히 증상이 나타나 뒤늦게 발견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소장이나 대장 손상의 경우에는 외부 충격으로 소장에 작은 구멍이 생기면 당장에는 증상이 없다가 24시간쯤 지나면 심한 복통이 발생하기도 한다. 복강 안에 피가 고이는 혈복강의 경우에도 수도꼭지에서 물이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것처럼 조금씩 출혈하다가 24시간쯤 지나서 증상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사고로 인해 복통이 생긴 환자는 당장의 장기 손상은 없더라도 적어도 24~48시간은 병원에서 지켜보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그래서 지켜보는 도중에 손상이 발견되면 언제라도 응급 수술을 시행할 수 있다. 간혹, 자신이나 가족의 외상이 경미하다고 생각해 입원 후 경과를 지켜보자는 의료진의 권유를 무시하고 귀가했다가, 반나절도 되지 않아 상태가 더욱 악화되어 다시 구급차에 실려오는 경우도 있다.

배 교수는 “사고를 당한 외상 환자의 경우에는 눈에 보이는 당장의 상처도 중요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한폭탄처럼 진행되고 있는 숨겨진 외상에 대한 평가나 검사도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모든 외상 환자에 대해서 모든 정밀 검사를 할 필요는 없다. 경미한 환자에게 과도한 검사가 이뤄지면 불필요한 비용이 지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고의 종류, 외상의 정도,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 및 진찰로 이상이 있다고 생각되면 정밀 검사를 통해 자칫 놓칠 수도 있는 외상을 찾아내는 것이 중증 외상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사고를 당했을 때 환자의 상태나 경과가 의심스러우면 대학병원 응급실 등 외상(트라우마)에 대한 전문 진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임호기자 tiger35@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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