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대결] 메이즈 러너·툼스톤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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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9-19   |  발행일 2014-09-19 제42면   |  수정 2014-09-19

메이즈 러너 (장르:스릴러 등급:12세 관람가)
기억 삭제당한 소년들의 미로 탈출기

20140919

우뚝 솟은 거대한 크기의 돌벽과 미로로 빽빽이 둘러싸인 공간, 글레이드. 이곳에 자신의 이름 말고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다수의 소년들이 갇혀 살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왜 이곳에 갇혀 있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외부세계와도 철저히 단절된 이곳에서 유일한 (외부와의) 소통은 한 달에 한 번씩 그들에게 보내지는 식량과 생필품, 그리고 기억을 삭제 당한 소년이 전부. 먼저 도착한 소년들을 중심으로 이들은 나름의 규칙을 만들고 역할을 분담해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또 한명의 소년 토마스(딜런 오브라이언)가 등장하면서 큰 변화를 맞는다. 토마스는 현재의 삶에 안주하려는 다른 소년들과 달리, 미로를 뚫고 탈출할 계획을 세운다.

‘메이즈 러너’는 제임스 대시너의 동명의 베스트셀러 시리즈를 원작으로 했다. 그런데 왠지 낯익다. 하이틴이 주인공인 SF 액션스릴러라는 점이 그렇고,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배경으로 다층적인 인물관계와 모험을 다뤘다는 점에서 ‘헝거게임’ ‘다이버전트’ 등이 떠오른다. 낯선 공간안에서 규칙을 세우고 살아가던 소년들이 미로를 탈출한다는 내용은 ‘파리대왕’과도 닮았다. ‘메이즈 러너’는 이들 영화의 흥미로운 설정과 이야기들을 적극 차용해 출발선에 선다.

연출은 특수효과 분야 출신의 웨스 볼 감독이 맡았다. 그는 관객들이 마치 롤 플레잉 게임을 하듯 이야기 속에 빠져들기를 바랐다. 다양한 상상력을 동원시켜 완성한 미로는 그 방증이다. 현대와 고대의 느낌을 담아낸 30m 높이의 미로는 보는 이들에게 공포감과 위압감을 안겨줄 만큼 압도적이다. 당연히 탈출을 꿈꾸는 소년들에겐 커다란 난관으로 작용한다. 매일 지형이 바뀌는 데다가, 미로 안에는 그리버라는 무시무시한 괴물까지 있어 이를 통과하기란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위험을 무릅쓰고 3년 동안 미로의 구조를 파악해왔던 러너 팀장 민호(이기홍)가 아직 탈출구를 찾지 못한 이유다. 따라서 대다수의 소년은 언감생심 글레이드를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토마스의 등장은 이들에게 새로운 상황과 선택의 순간을 가져온다. 소년들이 만들어낸 세번째 규칙인 ‘절대 미로 밖을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과감히 깨트림으로써 잘못된 문제를 해결하고 이를 극복해가려 한다. 물론 그의 제안에 모두가 동의한 건 아니다. 토마스와 뜻을 함께하기로 한 행동파가 있는 반면, 갤리(윌 폴터)를 중심으로 한 잔류파도 있다. 그런 그와 항상 갈등을 빚는 갤리는 생명을 담보로 한 미로 밖으로의 탈출을 꿈꾸기보다는 현재의 평화와 안전을 지키려 한다. 그에게 토마스는 경계대상 1순위이다.

소년들의 성장담으로 진행되던 이야기가 모험극으로 전환되는 건 토마스와 일행이 생존을 건 미로 밖으로의 탈출을 감행하면서다. 점점 좁아지는 통로는 물론, 불규칙적으로 계속 변형되는 미로의 개폐는 상당히 위협적이다. 이를 위해 배우들은 촬영하는 내내 달리고 또 달려야 했다. 살아 움직이는 미로와 위협적인 존재 그리버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다. 특히 유독 달리는 장면이 많았던 토마스역의 딜런 오브라이언은 그럼에도 “시각적인 요소와 감정적인 요소를 완벽하게 조합시켰고, 배우가 그 상황에 최대한 몰입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줬다”며 웨스 볼 감독을 향한 무한한 신뢰를 표했다.

하지만 기대가 컸던 탓일까. ‘메이즈 러너’는 장점만큼 아쉬움도 적지 않다. 각각의 매력적인 요소들을 호기롭게 차용했지만 이를 제대로 녹여내지 못한 탓에 인물 간의 긴장관계는 밋밋하고, 이야기의 밀도는 떨어진다. 지적 유희까지는 아니더라도 단순히 달리는 것만을 요구하는 듯한 미로 탈출 과정은 특히나 아쉬운 부분이다. ‘메이즈 러너’ 시리즈’는 총 3부작으로 나뉘어 있다. 이어질 2부 ‘스코치 트라이얼’은 미로에서 탈출한 후 플레어 현상으로 인류가 망해가는 지구 위의 삶이 배경이다. 속편에선 1부의 아쉬움이 채워지길 기대해 본다.


툼스톤 (장르:범죄 등급:청소년 관람불가)
믿고본다는 리암 니슨標 할리우드 액션

20140919

맷(리암 니슨)은 유능한 경찰이었지만 과거의 끔찍한 실수로 인해 평생을 괴로워하며 살아간다. 시내에서 벌어진 범인과의 총격전에서 무고한 시민이 목숨을 잃게 된 게 알콜중독자인 자신의 탓이라 생각한 것. 이후 스스로 경찰복을 벗은 그는 무허가 사립 탐정일을 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맷은 알코올 중독자 치료 모임에서 만난 피터의 동생 케니(댄 스티븐스)로부터 아내의 복수를 해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범인들이 요구한 몸값을 지불했음에도 납치되었던 아내가 참혹한 시신으로 돌아오자 케니는 복수심에 불타 있다. 처음에는 내키지 않았던 맷은 범인들의 끔찍한 범행행각과 일련의 살인사건이 이와 연관성이 있다고 판단되자 일을 수락한다.

로렌스 블록의 탐정소설 ‘무덤으로 향하다’를 영화화한 ‘툼스톤’은 짜임새 있는 구성과 세심한 캐릭터 묘사가 돋보이는 범죄 스릴러다. 여타 비슷한 장르물에 비해 화려함과 속도감은 다소 떨어지지만 맷이 겪는 내적 갈등과 그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연쇄살인범과의 추격전은 이를 상쇄시킬 만큼 강한 추동력으로 작용한다.

맷을 둘러싼 인물들은 평범하지 않다. 정식 허가없이 탐정일을 하고 있는 그에게 사건을 의뢰할 만큼 대부분은 도덕과 범죄의 모호한 경계에 놓여있다. 피해자는 모두가 선한 존재라는 뻔한 공식에서 벗어나 도덕적인 흠결을 지닌 자들이 영화의 주인공이라는 얘기다. 케니 역시 경찰에게 도움을 청할 수 없었던 건 그가 마약 밀매업자이기 때문이다.

‘툼스톤’의 무대가 되고 있는 뉴욕의 모습은 그래서 암울하고 우울하다. 이는 브루클린의 겨울 속에 은둔하며 지내는 맷의 내면과 닮아 있다. 할리우드 최고의 흥행 각본가로 명성을 날렸던 스콧 프랭크 감독은 이 점에 주목해 단조롭고 톤이 낮은 색채로 쓸쓸한 뉴욕의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제 남은 건 맷의 복잡한 내면과 범인들과의 치밀한 심리전을 장르적으로 풀어내는 일이다.

일단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경계는 분명하다. 과거의 죄책감을 덜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하는 맷이 정의의 편에 서 있다면, 연쇄살인범 레이(데이빗 하버)와 알버트(아담 데이빗 톰슨)는 천인공노할 절대악과 다름 없다. 사이코패스인 범인들은 마치 일상적인 놀이라는 듯 납치된 여자들과 피해자들을 상대로 사디스트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그들은 케니가 자신들이 제시한 금액의 40%만 보내자 아내의 신체 중 40%만 돌려보낼 정도로 잔인하다. 맷이 이 사건에 관여하게 된 이유다. 동시에 영화는 끔찍한 연쇄살인범을 쫓는 본격적인 추격전이 시작된다. 맷은 자신의 과거 인맥을 동원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범인의 흔적을 쫓는다. 그 과정에서 케니가 겪은 일과 유사한 사건이 3개월 전에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도서관에서 만난 떠돌이 소년 TJ에게 도움도 받는다. 그 점에서 맷은 스콧 프랭크 감독의 말마따나 “정형화된 액션 영화의 주인공이나 슈퍼히어로와는 다르게 삶의 무게와 현실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다. 일체의 두려움도 없는 듯 차분해 보이지만 더 이상의 잔혹한 범죄를 막기 위해 나섰을 뿐, 그 역시 보통 사람들과 별반 다를 바 없다.

‘툼스톤’의 영화화는 무려 12년이 걸렸다. 리암 니슨 같은 배우를 캐스팅하기 위해 스콧 프랭크 감독이 영화화를 미뤘기 때문이다. 그만큼 ‘툼스톤’은 리암 니슨을 빼놓고는 상상할 수 없는 작품이다. 할리우드 액션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리암 니슨을 캐스팅한 건 결과적으로도 탁월했다. 특히 맷이 가진 많은 후회와 슬픔의 감정은 리암 니슨을 만나 더 풍요로워졌다. 다만 ‘테이큰’과 ‘논스톱’의 강렬한 액션을 기대했던 관객들이라면 인물간의 심리에 주목한 이 영화가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듯. 하지만 이제껏 리암 니슨이 보여준 액션 배우로서의 모습과는 또 다른 흥미로운 지점에 있는 영화라는 점에서 손을 들어주고 싶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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