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자유의 언덕 영선役 문소리

  • 윤용섭
  • |
  • 입력 2014-09-22 07:39  |  수정 2014-09-22 08:55  |  발행일 2014-09-22 제22면
“주연인지, 조연인지, 단역인지도 모르고 촬영”
20140922

홍상수 감독과 네번째 호흡
이번 이야기구조는 복잡
하지만 따스한 감성도 배어

배우가 특정 이미지 없으면
다양한 작품 할 수 있어 좋아

“저녁식사 같이 하실래요?” 서울 북촌에서 조그마한 카페를 운영하는 영선은 자신의 애완견을 찾아준 일본인 모리(카세 료)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저녁식사를 권한다. 오래된 애인(이민우)이 있지만 그와의 관계가 소원해진 지금, 영선은 첫 만남부터 진실된 모습으로 다가온 모리에게 호의적이다. 친근하고 따뜻한, 무엇보다 인간관계에 솔직한 ‘자유의 언덕’의 영선은 그 점에서 문소리와 닮았다. 호기심이 생긴다. 감추기보다 드러냄을, 소박하되 그녀만의 화려한 매력을 지닌 문소리가 그렇게 영선과 겹쳐지니 왜 안 그렇겠나.

연출을 맡은 홍상수 감독은 ‘자유의 언덕’이 시간과 꿈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멋지고 기분 좋게 벗겨내는 진귀한 경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흥미로운 작업에 든든한 힘이 되어준 건 홍상수와 네 번째로 호흡을 맞춘 문소리다. 그녀 역시 그와의 작업은 다른 작품에서 만날 수 없는 희열이 느껴진다고 했다. “이번에는 이야기 구조 자체가 훨씬 복잡하다. ‘하하하’처럼 웃기지도 않고 영어 대사가 많아서 자막도 봐야 한다. 하지만 나는 처음으로 홍 감독님 영화를 보면서 슬프면서도 따뜻한 감성을 느꼈다.” 개봉(4일) 이후 꾸준한 입소문을 이어가고 있는 ‘자유의 언덕’과 독보적인 매력을 품고 있는 배우 문소리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자유의 언덕’으로 베니스 영화제를 다녀왔다. 이번이 세 번째인데.

“다른 여행도 그렇지만 베니스가 주는 느낌은 유독 강하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유럽은 안 변하는 것 같다. 모두가 그대로였다. 이번 일정 중에는 비까지 와서 느낌이 또 달랐다. 따스한 햇살과 화창함이 없는 베니스가 낯설긴 했지만 그것도 나쁘진 않았다. 게다가 누구와 같이 가느냐에 따라 느낌이 되게 많이 바뀌는데 이번에는 홍상수 감독님과 함께해서인지 진짜 차분하고 오붓한 느낌이었다.”

-홍상수 감독과는 네 번째 작업이다. 이젠 그의 작업스타일이 익숙해졌을 듯하다.

“웬걸, 오히려 점점 더 모르겠다.(웃음) 이젠 홍 감독님 스스로가 변해가는 게 느껴진다. ‘하하하’ 때만도 50% 정도 영화 정보를 미리 주셨던 것 같은데 그게 점점 줄어든다. 이번에는 당일 아침에 눈을 떠도 내가 오늘 촬영이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다. 오전 10시 전에 전화가 오면 촬영장에 가는 거고, 없으면 없다고 문자가 온다. 그렇게 정보가 없으니까 내 분량이 어느 정도인지도 예측을 못했다. 주연인지, 조연인지, 단역인지도 모르고 시작했다.”

-게다가 줄곧 영어로 대사를 하니 더 힘들었겠다.

“익숙하지 않은 언어라 아무래도 그렇다. 그런데 감독님은 익숙하지 않으면 익숙하지 않은 대로 보여지길 원했다. 내 스타일로 말하는 방식을 재밌어 하면서 자꾸 시켰다. 창피하다고 말하면 ‘아냐! 아주 좋아, 귀여워’라고 하셨다. 그런 믿음이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되는 것 같다.”

-카세 료와의 호흡은 어땠나.

“누구와의 호흡을 따질 것 없이 정말 모든 스태프, 배우들과 교감을 가졌던 것 같다. 그의 헌신적인 자세도 있었지만 여기 있는 동안 숨 쉬는 것조차 홍 감독님 영화를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 모습과 자세는 정말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홍 감독님 스타일에 쉽게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100번 정도 같이 일해본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얼마전 e메일이 왔는데 이젠 기존에 해왔던 작업방식을 받아들이는 게 힘들다고 했다. 홍 감독님과의 작업 후유증이 큰 것 같다.”(웃음)

-올해 부산국제영화제(10월2~11일) 개막식 사회를 맡았다.

“그외에도 ‘관능의 법칙’이 파노라마 부문에서 상영되고 대학원에서 내가 만든 단편도 소개된다. 그 일환으로 관객과의 대화도 있고 야외 무대인사도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른 때보다 더 바쁠 것 같다. 그런데 그보다 더 기쁜 게 있다. 내가 지난 학기에 조감독을 한 작품이 있는데 그게 단편 경쟁부문에 출품됐다. 류현경씨가 주연인 ‘이사’라는 작품이다. 친구와 서로의 작품에 각각 품앗이를 했는데 나는 캐스팅 디렉터 겸 조감독을 맡았다. 고생도 많이 한 작품이라 그런지 출품 소식을 듣고 기뻤다.”

-예능 프로그램 SBS ‘매직아이’의 진행도 맡고 있다. 해보니 어떤가.

“그냥 잘 적응해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이젠 괜찮아요’도 아니고, ‘할 때마다 너무 힘들고 불편하다’도 아닌, 아직은 조금씩 적응해 가는 단계다.”

-당신을 빼면 다들 예능에 일가견이 있는 베테랑인데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나름 적응을 잘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게 생각해주니 힘이 난다. 모두에게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잘 모르는 판이니까 어떻게 하는 게 잘하는 건지 자주 물어보게 된다. 김구라씨에게 자주 물어보는 편인데 그럴 때마다 좋은 얘기들을 해준다. 남들이 뭐라든 신경쓰지 말고 지금 있는 그대로 하라고 했다. 그게 제일 좋다면서.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진짜 선배님 같았다. 대기실이 바로 옆방인데 먼저 문 열고 인사하고 싶어질 정도다.”

-재미있나.

“재미도 있고 희한하다. 일단 아침에 녹화장 가는 게 힘들지 않고 사람들을 만나는 게 불편하지 않다. 난 그것만으로도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낯도 가리는 편이고, 이 분야는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지만 할 만하다. 앞으로는 이런저런 시도를 많이 해볼 생각이다.”

-차기작은 뭔가.

“올해 ‘관능의 법칙’ ‘만신’도 개봉했지만, 정작 촬영한 작품은 하나도 없다. 마음이 이상했다. 이렇게 바빴는데 촬영 안 하고 내가 뭐했지? 스스로 반문하게 되더라. 그래도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은 좋은 작품을 찾아보고, 기다리는 중이다.”

-여배우를 위한 작품이 줄어든 건 사실이다.

“한국영화계가 좀 덜 건강하다는 증거가 아닐까 생각한다. 다양한 영화, 작은 영화, 개성있는 영화가 만들어지거나 제대로 상영할 기회조차 없는 것도 안타깝고. 정말 더 늙기 전에 바짝 써줬으면 좋겠다.”(웃음)

-최근 세월호 단식 농성에 참여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했나.

“부모의 심정으로, 또 사회의 구성원으로 당연히 안타까워해야 할 일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힘이 될 수 있다면 보태주고 싶었고, 잘 해결됐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이들의 상처나 트라우마를 위로하고 해소시키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당시에는 그러한 직접적인 행동이 절실히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많은 영화인이 공감했고, 그런 얘기가 나오자마자 하루 이틀 만에 쫙 모여서 같이 하게 됐다.”

-특정한 이미지보다는 ‘연기 잘하는 배우’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자신을 새롭게 보여주고 싶은 욕심은 없나.

“전혀. 나는 오히려 어떤 이미지가 생겨 버리지도 못하고, 그것을 고수하게 되는 순간이 오지 않기를 바란다. 이미 ‘오아시스’를 통해 내가 만들 수 있는 이미지는 다 깨졌다고 생각한다. 그 외에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이미지라면 나도 어쩔 수 없다. 내가 관여할 영역도 아니고. 아무튼 특정 이미지가 없으면 다양한 작품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개인적인 바람이라면 1년에 한 작품 정도만이라도 꾸준히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글=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사진=황인규(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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