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공원 조성에 쫓겨나는 ‘사랑의 밥차’

  • 조규덕,황인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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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9-24 07:24  |  수정 2014-09-24 08:32  |  발행일 2014-09-24 제6면
서구청, 북비산네거리 쉼터 무료급식소 이전 통보…급식이용자·봉사단체 반발
20140924
23일 낮 대구 서구 북비산네거리 원고개시장 옆 쉼터에서 어르신들이 무료급식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지어 서 있다. 하지만 최근 대구 서구청이 이 일대에 명품공원 조성을 이유로 무료급식 장소 이전을 통보해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황인무기자 him7942@yeongnam.com

 

“수년간 끼니 해결하던 곳
 멀리 가면 다리아파 못가”


 마땅한 대체 장소도 없어
 뾰족한 해법 못 찾아

 

대구 서구청이 명품공원 조성을 이유로 수년간 활용돼 온 무료급식 장소를 이전하라고 통보해 해당 봉사단체와 급식 이용자들이 반발하고 있다.

서구청은 대체 장소를 물색 중이지만, 아직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23일 오후,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무료급식소가 운영되고 있는 서구 북비산네거리 원고개시장 옆 파고라(쉼터)를 찾았다. 3개 봉사단체가 화·수·토요일 돌아가며 무료급식을 하는 곳이다.

이날은 대구 서구여성봉사회가 급식봉사를 했다. 노인, 장애인 등 한끼 식사 해결이 여의치 않은 저소득계층 200명이 몰려왔다. 메뉴는 잔치국수였다. 값비싼 음식은 아니지만, 저마다 이야기 꽃을 피우며 점심식사를 했다. 하지만 급식장소를 옮겨야 한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이들의 표정도 어두워졌다.

급식소에서 만난 이모 할머니(73)는 “우리 같은 늙은이들은 다리가 아파서 급식장소가 멀어지면 가지도 못한다”며 “여기서 마냥 식사만 하는 게 아니다.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공간”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무료급식을 주도한 김명신 대구서구여성봉사회장(여·66)은 “이곳에서 15년간 무료급식을 했는데 갑자기 나가라고 하니 답답할 뿐”이라며 “아직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매주 수요일에는 이곳을 찾는 이들이 더욱 많다. 400명 정도가 모인다. 수요일마다 급식봉사를 하는 ‘사랑해 밥차’ 최영진 단장(57)도 지난 15일 구청직원으로부터 직접 이동통보를 받았다.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로 상의해서 대체부지를 찾아보자고 하던 구청이 일방적으로 이동을 통보했다”며 황당해했다. 토요일에 급식봉사를 하는 양무리봉사단도 같은 고민에 빠졌다.

북비산 네거리는 서구의 관문격인데 긴 줄을 서서 급식하는 모습은 미관상 좋지 않고, 명품공원 조성사업을 위해선 어쩔 수 없다는 것이 서구청이 이동을 통보한 이유다.

서구청에 따르면 북비산 네거리는 명품가로공원 조성사업이 추진된다. 4천여㎡ 부지의 노후된 경관을 뜯어내고 인도 교체, 휴게공간·수경시설·조형물을 설치한다. 공사비는 15억5천만원이 소요되고, 이르면 이달 말이나 10월초쯤 착공할 예정이다. 공사가 시작되면 저소득층 주민들은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또 다른 곳을 정처없이 떠돌아다녀야 할 처지다.

서구청 관계자는 “대체 장소를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현재로선 마땅한 곳이 없었다”며 “일단 인근 교회나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무료급식소가 몇 군데 있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우리복지시민연합측은 “어떻게 보면 지자체에서 해야 될 복지사업 중 한 부분을 봉사단체들이 하는 것인데, 최소한의 대책은 마련한 후 공사를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조규덕기자 kdcho@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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