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2014] 스토리의 寶庫 영일만을 가다<10> 영일대해수욕장

  • 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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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9-30   |  발행일 2014-09-30 제10면   |  수정 2021-06-15 16:47
털털거리는 버스만 간혹 오가던 이곳이 상전벽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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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시 북구 영일대해수욕장은 길이1.75㎞에 너비70여m의 백사장을 자랑한다. 1975년 개장 당시에는 인근 송도해수욕장의 유명세에 밀렸지만, 백사장 면적이 늘고 시설 및 환경 개선이 이뤄지면서 현재의 번화한 도심 해수욕장으로 거듭났다.

 

<스토리 브리핑>

포항시 북구 영일대해수욕장은 포항을 대표하는 해수욕장이다. 

길이 1.75㎞, 너비 70여m의 고운 모래로 이뤄진 백사장을 자랑한다. 

1975년 북부해수욕장으로 개장했다가 2013년 영일대해수욕장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포스코와 영일만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영일대해수욕장은 해상누각 영일대와 산책로 등 각종 편의시설에 위락시설까지 더해지면서 동해안 최고의 명소로 거듭나고 있다.
‘2014 스토리의 寶庫 영일만을 가다’ 10편은 영일대해수욕장의 변천사에 대해 다루었다. 

주요 스토리는 가공의 인물을 통해 풀어냈다.


#1. 놀라운 변화를 맞이한 포항 영일대해수욕장

바다는 언제나 그곳에 있었다. 마치 천년을 기다린 불멸의 사랑처럼. 해안과 인접한 공영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킨 정(鄭)은 동남쪽으로 열린 바다를 향해 천천히 걸어 나갔다. 이른 저녁의 햇살이 뉘엿한 풍경 아래 가을을 품은 시원한 해풍이 불어왔고, 결 고운 모래가 신발 바닥에 부드러운 감촉으로 와 닿았다. 먼 태곳적부터 육지를 그리워하듯 파도가 하염없이 밀려드는 해안 백사장에는 괭이갈매기 몇 마리가 허공에 그려놓은 오선지의 음표처럼 바람을 타고 자유롭게 날아다녔다.

길들여지지 않은 갈매기들의 자유분방한 자태를 제외하면 주변의 모든 건 낯설고 새로웠다. 해안을 따라 서로 어깨를 겨누며 들어선 현대식 고층빌딩과 명함을 내밀듯 이마에 간판을 내건 많은 술집과 음식점, 카페와 횟집, 편의점과 모텔이 바다를 보며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그 뒤편으로는 고층 아파트가 저마다 위용을 뽐내기나 하듯 곳곳에서 바다를 향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 정경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남유럽이나 지중해의 해수욕장을 연상시키는 바가 있었다.

잔잔하게 파도가 밀려드는 해안 모래사장에는 연인처럼 짝을 짓거나 혹은 서너 명씩 무리지어 푸른 바다를 전망하거나 넓은 백사장을 산책하며 나름대로 바다를 만끽하고 있었다. 개중에는 애완견을 데리고 저녁 산책을 나온 사람도 있었고, 육상선수처럼 러닝셔츠에 쇼트 팬츠 차림으로 해안을 달리는 건장한 젊은이도 보였다. 일찌감치 모래밭에 원을 그리며 퍼질러 앉아 술판을 벌이는 청년들도 보였다.

정씨는 자신이 찾아온 바다가 어린 시절 한때를 보냈던, 추억이 너무 많아 꿈속에서도 종종 등장하곤 했던 그 해변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옛말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도 있고 뽕밭이 변해 바다가 된다는 뜻의 상전벽해라는 고사성어도 있지만 자신의 기억에 선연했던 바다가 외국에 떠나 있던 수십년 동안 이처럼 놀랍게 변해 있을 줄은 전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그나마 변하지 않은 게 있다면 우측에 보이는 포스코의 웅장한 모습과 좌측의 바다를 향해 거북등처럼 튀어나온 두호동 동산 모습 정도일 것이다. 북쪽의 어촌은 어릴 적에 ‘설머리’로 불리기도 했다.

“아우! 정말 오랜만이다.”

지난 상념에 빠져 있을 때 누군가 그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돌아보니 중학교 동창인 김이었다. 이틀 전에 미리 전화로 바닷가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해두었던 터였다. 어린 시절엔 누구보다 친하게 지냈던 동네친구이자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을 함께 보냈던 죽마고우였다. 이제 그도 시간의 흐름엔 어쩔 수 없던지 어릴 적에 보았던 개구쟁이 소년의 모습은 사라지고 귀밑머리가 희끗한 중년이 되어 있었다. 다른 동창에게 들은 얘기론 그는 이곳에서 제법 괜찮은 상가건물을 운영하며 북부상가협의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고 했다.

 

#2. 북부해수욕장을 추억하다

“넌 여기 와본 지 30년은 넘었지, 아마?”

반갑게 악수를 나눈 뒤 동창 김이 감회 어린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그랬다. 그쯤 되었을 것이다. 그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지금의 해수욕장이 들어선 자리는 털털거리는 버스가 하루에 몇 번 오가는 작고 외진 바닷가 어촌마을에 불과했다. 당시에 작은 모래톱이 있던 백사장에는 어민들이 잡아온 고기를 말리는 발이나 덕장이 늘어서 있었다. 날씨가 좋으면 어민들은 통통배를 타고 인근 바다에서 잡아온 멸치와 오징어 따위를 덕장에 널어두고 따가운 햇살에 말리곤 했다.

“작년부터 이곳의 이름이 영일대해수욕장으로 바뀐 것 모르지? 예전의 송도해수욕장보다 여기가 전국적으로 더 유명해졌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백사장을 걷던 친구 김이 은근히 자부심 어린 말투로 말했다. 정은 여객선 터널 너머의 송도해수욕장 방향을 바라보았다.

친구의 말처럼 그가 고등학교를 다닐 당시엔 송도해수욕장의 명성이 꽤나 높았다. 여름철만 되면 바캉스 인파가 백사장을 가득 메웠다. 포항시민은 물론 인접한 대구와 울산, 멀리는 서울사람들까지 피서를 즐기기 위해 송도해수욕장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그 당시부터 포스코를 비롯한 인근 산업체가 포항을 중심으로 우후죽순처럼 들어섰고, 그에 따른 산업폐수와 도시 생활폐수가 형산강을 통해 바다로 흘러들면서 바닷물이 오염된 탓이었다. 게다가 새로 들어선 방파제의 영향 탓인지 송도해수욕장의 모래가 빠르게 유실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실되는 모래만큼이나 빠르게 송도해수욕장의 명성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갔다.

당시 피해를 입은 건 비단 송도해수욕장뿐만이 아니었다. 1975년에 새롭게 북부해수욕장이란 이름으로 개장되었던 두호동 앞바다 역시 환경오염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철강관련 산업들이 호황기를 맞으면서 경향 각지에서 수많은 근로자와 노동인력이 포항으로 몰려들었다. 인근의 창포동, 장성동, 두호동이 상업용지와 주거용지로 개발되었고 여기서 발생한 생활하수며 오폐물이 정화되지 않고 하수관을 통해 그대로 해수욕장으로 흘러들었다. 이런 실정을 잘 알고 있던 인근 지역주민들은 북부해수욕장에 몸을 담글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다. 가끔씩 사정을 모르는 외지인들이 수영을 한답시고 바다에 들어가는 것을 보면 피부병을 걱정할 정도였다. “어릴 적에 너와 내가 여기 해변에서 명지조개를 잡은 것 기억나?”

역시 중·고등학교 무렵의 회상을 하고 있었던지 김이 물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기억에 선명히 남아 있었다. 바닷물이 무릎 정도 오는 지점까지 들어가 트위스트를 추듯 몸을 움직이면 모래 속의 딱딱한 감촉이 발바닥에 느껴지고, 손으로 건져 올리면 대합과 비슷한 형태의 황갈색 명지조개가 나왔다. 당시 마을 어민들은 갈퀴를 사용하여 모랫바닥을 긁어 잡은 조개에 콩나물을 넣어 국을 끓이거나 찜을 만들어서 술안주로 애용했는데 맛이 아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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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일대해수욕장 북편에 위치한 영일대 해상누각은 영일대해수욕장의 명물이다. 포항시 북구 두호동 주민센터 앞 해상 100m 지점에 위치해 있다.
 

#3. 바다와 도시가 어우러지는 해변 

 

“이제 이 영일대바다에서도 명지조개가 다시 잡히기 시작했어.”

친구 김이 말했다. 바다가 오폐수로 더러워지면서 자취를 감춘 명지조개가 다시 잡힌다는 건 그만큼 바다가 청정해졌다는 뜻일 것이다. 놀라는 그의 표정을 본 김이 덧붙였다.

“하수시설을 완비한 데다 두호동 어촌계에서 씨조개를 뿌린 게 유효했던 모양이야. 곧 예전처럼 명지조개가 지천으로 잡힐 때가 올 거야.”

두 사람은 바다를 향해 길게 석조다리로 이어진 해상누각인 영일대에 올랐다. 한눈에도 전망이 기가 막혔다. 천천히 석양이 지고 어둠이 내리면서 주변 경관이 점차 바뀌어갔다. LED 조명으로 환해진 포스코의 스카이라인과 인근 빌딩과 상가에서 환하게 밝힌 조명등이 해수면에 반사되어 더욱 아름답게 빛났다. 마치 초현대식 해양도시의 야경을 보는 듯했다. 바다 중간에서 색색의 조명을 받으며 분수가 용트림하듯 하늘을 향해 힘차게 솟구쳤다. 고사분수라고 했다. 친구 김은 이곳 영일대 백사장에서 매년 포항국제 불빛축제와 바다국제공연예술제 등 갖가지 축제가 열리며 이때면 전국에서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발 디딜 틈도 없을 지경이라고 했다. 그 소식은 그도 방송이나 인터넷으로 접한 바가 있었다.

“머지않아 영일대해수욕장이 동해에서 가장 이름난 관광명소가 되리라 생각해.”

조명이 휘황한 영일대 난간에 기대어 한층 화려해진 주변 야경을 바라보던 정에게 김이 말했다. 정은 친구의 바람이 단순한 개인적 희망이 아니라고 느꼈다. 정은 문득 자신도 이곳에 다시 뿌리를 내리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밤마다 바다와 도시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야경을 빚어내고, 마음 맞는 사람과 술과 음식이 있으며 철마다 축제가 열리는 그런 곳이라면 누군들 살고 싶지 않을까.

“이제 술이나 한잔하러 가볼까. 그동안 밀린 얘기도 나눌 겸.”

정의 말에 김이 반색을 지으며 앞장을 섰다.

“잘 아는 횟집이 있는데 그리 가지. 고향을 찾아온 걸 축하해서 오늘 내가 한 턱 쏠게.”

빛과 색으로 수놓인 밤의 경치가 영일대해수욕장에 고스란히 내려앉았다. 그것은 고흐의 그림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보다 더욱 찬란한 야경이었다.

글=박희섭<소설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고문>
도움말=김상출 전 북부해수욕장 상가연합회장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공동기획 : 포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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