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세상보기] 아버지의 펜글씨

  • 이미애 시민
  • |
  • 입력 2014-10-01   |  발행일 2014-10-01 제11면   |  수정 2014-10-01
[시민기자 세상보기] 아버지의 펜글씨

글씨가 예쁘면 그 사람까지 궁금해진다.

손글씨는 이제 사인이나 주소를 적을 때만 사용할 정도로 그 빈도가 크게 줄었지만 한자, 한자 정성들인 글씨에서 쓴 이의 성품까지 보이는 게 바로 손글씨의 매력이다. 글씨를 잘 쓰려면 쓰기를 시작할 무렵부터 습관을 잘 들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이다.

요즘은 초등학교 단원에 맞춰 글씨체 연습용 교본이 나온다고 한다. 연습도 하고 모르는 단어를 익힐 수도 있으니, 마치 한글 자판 연습을 위해 자주 치던 ‘벙어리 삼룡이’라는 작품이 저절로 숙지되는 과정처럼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는 셈이다.

지난 8월 청송에서 있었던 영남일보 시민 기자단 세미나 말미 ‘객주문학관’에 들렀었다. ‘객주’와 관련한 여러 전시물 중 인상적이었던 것은 김주영 작가의 펜이었다. 요즘은 거의 쓰지 않는, 찾아보기도 어려운 펜 30여 개가 잉크병과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펜대는 새의 깃털을 꽂아서 영화에서나 봄직한 것에서부터, 투명한 플라스틱 펜대에 조개껍데기를 넣은 것, 나무와 쇠로 된 것까지 다양했다. 그것을 보면서 작가와 동갑인 내 아버지의 펜이 생각났다.

필자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책을 받아온 날, 아버지는 신줏단지 모시듯 받아놓고는 잉크와 펜을 꺼내셨다. 그리고 몇 번이나 연습을 하신 뒤 책 표지 하단 오른쪽에다 긴장한 듯 차분하게 또박또박 내 이름자를 써 주셨다. 마치 ‘글씨는 이렇게 쓰는 거야’라는 듯이. 그 선명하고 반듯한 펜글씨는 연필뿐이었던 나의 필기구에서 흉내 낼 수 없는 글씨였다.

그 글씨는 학교 책상에서 더욱 빛났다. 시간표 정리를 하거나 수업시간에 책이나 노트를 펼 때, 숙제를 할 때도 먼저 눈도장 찍던 곳, 나는 학기가 바뀌거나 노트를 새로 사도 체본 받듯이 아버지의 글씨를 받았다. 그 의식은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계속됐다.

필기구로서의 기능을 멈춘 지 오래여서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펜!

친구들이 내 글씨가 남자 글씨 같다고 해도, 아버지의 글씨가 내 글씨처럼 편하다는 생각은 했어도 내 글씨체의 원형이 아버지의 펜글씨였다는 생각은 못했다. 글씨체도 몸에 배고 나면 버릴 수 없는 그 사람 것이 된다. 한 번 몸에 밴 것은 몸이 기억하는 무형의 자산처럼. 내 글씨체의 바탕이 된 아버지의 글씨체, 솜 먹은 잉크병에 펜촉을 담갔다가 잉크병 목을 몇 번이나 쓰다듬듯이 쓸어주며 글씨의 농담을 조절하던 손짓이 그립다.

내 이름 세 글자 써준 그 일이 결코 이름만 써준 일이 아니었음을…

이미애 시민기자 mo576@hanmail.net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시민기자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