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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칼럼] 각자 자신에게 충실한 사회의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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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0-10

자신에게 충실하기보단
자신의 선한 이상에 충실해야
충동적 욕구 통제하고
선하고 의로운 삶
지향하는 존재돼야

개성이 중시되는 현대사회에서 ‘자신에게 충실하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자신에게 충실한 삶이 바람직하다는 개인주의적 자유주의는 르네상스 인본주의와 함께 태동하여 시민사회의 성숙과 함께 서구의 보편적 가치관으로 자리 잡았는데, 각 개인의 내면적 욕구와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보장해주는 사회를 지향한다. 특히 기존 가치의 유지나 강화가 아닌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가치를 끊임없이 만들어야 하는 21세기 창조사회에서는 각 개인이 다양한 욕구와 감정, 개성을 숨김 없이 표현하는 것이 사회발전의 핵심 원동력으로 강조된다.

서구에서 발원한 개인주의적 자유주의가 우리 사회에 본격적으로 확산된 것은 세계화가 시작된 1990년대다. 이 새로운 가치관은 우리 사회에 엄청난 변화를 초래했는데, 각자 내면의 욕구와 감정을 예전에는 상상도 하기 어려웠을 정도로 자유데, 충동적 욕구나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면서 전체 사회가 이성과 이상에 기반한 자기절제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 결과 청소년들은 게임이나 음란물, 거친 언어, 학원폭력에 빠졌고, 청장년층도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충동적 폭력을 자제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범법자들은 엽기적 흉악범죄를 양산하게 되었다. 또 정치권에서는 막말정치가 당연시되며, 문화계에서는 막장드라마 같은 저질 콘텐츠가 만연하고, 사회적으로는 자살률과 이혼율이 세계 최고를 기록하게 되었다.

이런 문제의 원인은 각자의 개성을 중시하는 가치관 자체가 아니라 ‘자신’ 혹은 ‘자아’에 대한 왜곡된 이해다. ‘자신에게 충실하라’는 말이 실생활에서는 각자의 욕구와 감정을 감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의미하게 된 것이 문제다. 즉 ‘자아’를 전체 인격체 중 일부에 불과하며 가장 충동적이고 원초적인 요소인 욕구와 감정에만 폭 좁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원인인 것이다.

인간의 자아에는 충동적 욕구와 감정 외에 이를 냉철하게 통제할 수 있는 이성도 있고, 선하고 의로운 삶을 지향하는 이상도 있다. 욕구와 감정은 동물도 가지고 있는 데 비해 이성과 이상은 인간만의 고유한 본성이다. 고귀함을 지향하는 이상과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인 이성을 가짐으로써 비로소 인간은 동물과 다른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단테는 ‘신곡’에서 “그대들의 타고난 천성을 생각해 보라. 짐승처럼 살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덕성(이상)과 지식(이성)을 따르기 위함이었으니”라며 이기심이나 탐욕, 음욕, 폭력성 같은 어두운 욕구나 감정이 아니라 이상과 이성이 인간 자아의 진정한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인간의 삶은 충동적 욕구와 감정이라는 동물적 본성과 고귀한 이상과 이성이라는 신적인 본성 간의 끊임없는 투쟁이다.

시인 칼 샌드버그는 “내 안에는 하늘로 높이 날아오르고 싶은 독수리가 한 마리 있고, 진흙탕에서 뒹굴고 싶은 하마도 한 마리 있다”며진정으로 자신에게 충실한 삶은 진흙탕이 아닌 하늘을 높이 날아오르고 싶은 본성을 따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진흙탕에 빠져드는 것은 충동에 몸을 맡기면 되므로 쉬우나, 독수리처럼 날아오르는 것은 아래로 끌어당기는 중력을 이겨내야 하므로 치열한 노력이 필요하다. 동서양의 모든 철학은 바로 이런 삶의 실존적 투쟁을 다루고 있다. 유학에서는 수신(修身)을 통해 혼자 있을 때도 이상과 이성에 기반한 언행을 하는 신독(愼獨)을 군자의 책무로 강조했으며, 철학자 칸트는 개인의 욕구충족이 아닌 선한 의지를 삶의 절대적인 법칙으로 삼아 실천하는 ‘정언명령’을 주장했다.

이제까지 우리는 자녀나 후배들에게 “자신이 느끼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라”는 위험한 조언을 아무 생각없이 해왔다. 이제부터 우리의 조언은 곡해될 위험이 큰 “자신에게 충실하라”가 아니라 좀 더 구체적으로 “자신의 선한 이상에 충실하라”가 되어야 할 것이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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