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건강식품론 유감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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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10-10   |  발행일 2014-10-10 제41면   |  수정 2014-10-10
‘이것만 먹으면 건강걱정 끝’ 대한민국은 효능을 만병통치로 착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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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하루에 섭취하는 숱한 음식물에 섞인 헤아릴 수 없는 영양소의 성분이 몸 안으로 들어가 어떤 융·복합 작용을 거쳐 흡수되는지, 그게 몸에 좋은 건지 나쁜 건지를 측정해주는 기계는 이 세상에 없다. 몸에 좋은 음식을 따지기 전에 기본에 충실한 제철밥상을 맛있게 먹는 게 순리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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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과 건강의 상관관계는?
국내 전문가들 주장 ‘제각각’
특산물마다 무병장수 자랑
TV프로그램서 무차별 전파
채식지상주의 이상구 박사도
이젠 특정식품 효능론 경계
식품건강론 엄정기준 확립해야

21세기로 들어오면서 큰 문제가 생겼다.

모든 사람이 죽긴 죽지만 그 죽음이 천수를 누린 ‘자연사(自然死)’가 아니란 사실이다. 대다수 ‘돌연사(突然死)’로 종지부를 찍는다.

자연사란 뭔가?

크게 아프지 않고 일상적인 생활을 하다가 감기 앓듯 조금 노약증을 앓다가 며칠 만에 시름시름 하며 운명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선승에겐 선망의 죽음 형태가 있다. 바로 ‘천화(遷化)’이다. 옛날 중들이 가장 멋있게 여겼던 이 죽음의 방식은 연로한 승려가 임종이 가까워 옴을 감지했을 때 수좌 등에게 알리지 않고 인적 없는 산속으로 몸을 끌고 들어가 굶어죽는 것이다. 예전에는 밭을 매다가, 잠을 자다가 고통 없이 아름답게 운명한 사람이 적잖게 있었다.

그런데 이젠 그런 경우를 만나기 어렵다. 부음을 받으면 모두 무슨무슨 장례식장이다.

임종을 지키는 것도 가족보다는 의사, 호스피스, 간병인 등이다.

여러 정황을 볼 때 우린 이제 자연사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세상은 너무나 편해져 초고속인데 저승으로 가는 길은 ‘깔딱고개’ 같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타계하고 그 병원 지하 장례식장에서 발인을 한다. 태어나는 곳도 병원의 신생아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의 고향은 묻지마 ‘병원’인 것이다.

왜 우리는 자연사를 하기 힘든 것일까.

기자는 요즘 침대에서 잠을 청하기 전 종종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성공은 자연사’란 생각을 자주 한다. 한 생명이 별다른 굴곡을 겪지 않고 마치 장작불처럼 너무나 고요하게 불(생명)을 갈무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세상은 자꾸 자연사할 수 없는 사지(死地)로 몰아넣고 있다.



◆성인병 절벽으로 내몰리는 대한민국

2012년 11월 충격적인 조사결과가 나왔다.

‘우리나라 30세 이상 성인 10명 중 1명은 당뇨병 환자’라는 통계가 나왔다. 그야말로 ‘당뇨병 대란’이 현실화된 것. 대한당뇨병학회가 내놓은 ‘2012 한국인 당뇨병 연구 보고서’를 보면 2010년 기준으로 국내 만 30세 이상 성인 인구의 당뇨병 유병률은 10.1%였으며, 당뇨병 전 단계인 공복혈당장애 유병률은 19.9%에 달했다. 성인 10명 중 1명은 현재 당뇨병 상태이고, 10명 중 2명은 ‘잠재적 당뇨병’단계로 볼 수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런 당뇨병이 향후 폭발적으로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학회는 보고서에서 연도별 당뇨병 유병률이 2001년 8.6%에서 2010년 10.1%로 증가한 추세를 볼 때 2050년에는 당뇨병 환자가 591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너나없이 이런저런 성인병을 앓다가 자신의 집이 아니라 병원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세상. 이런 흐름을 사업적으로 역·악이용하는 담론이 난무하고 있다. 바로 만병통치약 건강식품의 발호이다. 쉽게 말해 ‘이걸 먹으면 건강걱정은 끝’이란 협박적 메시지다. 여기서 한발 더 나간 메시지는 ‘이걸 먹으면 좋고 저걸 먹으면 나쁘다’란 흑백논리적 식품건강론이다.

기자는 최근 10년간 숱한 식품영양학자, 임상영양사, 자연치유전문가, 대증요법 전문가, 약초 전문가, 약선요리 전문가, 푸드테라피 전문가, 가정의학 전문의, 단식 전문가, 식이요법, 제3의학 전문가, 심마니, 발효음식 전문가, 채식주의자, 운동요법 전문가 등을 만나 식품과 건강의 상관관계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문을 했다.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절감했다.

다들 자기 얘기만 떠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는 것만 얘기를 한다. 자신이 뭘 모르고 있는지는 공부하지 않는다. 같은 사실을 놓고도 찬반 양론으로 갈라지는 전문가들이다. 우리나라 전문가는 자신의 전문 영역을 벗어나면 다들 아마추어란 사실이다. 그들의 전문성은 입체적이고 갈수록 비즈니스적이고 학제 간 연구적이지 않고 어떤 보고서와 조사결과 등을 자기 구미에 맞게 조리해 주장한다.

가장 충격적인 사례 몇 가지 소개해 볼까 한다.

한국이 자랑하는 힐링한식의 대명사인 김치를 다짜고짜 ‘발암식품’으로 단정하는 의사도 있다. 바로 서울시 강남구 잠원동에서 힐링스쿨과 힐링클리닉을 꾸려가는 황성수 박사(전 대구의료원 신경외과 의사)다. “김치는 젓갈 때문에 암 위험이 있으니 먹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그는 1991년부터 고기는 물론 어패류, 계란 등도 먹지 않는 ‘비건(Vegan·절대 채식주의자)’으로 살고 있다. 절대다수의 의사는 이런 흐름을 무척 경계하고 염려한다. 그들은 황 박사의 주장은 황당할 정도로 반의학적이라서 의사계에서조차 그의 주장을 외면하고 있다. 하지만 그를 믿는 사람도 적잖게 있다.

대구를 축으로 새로운 채식주의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유방암 전문의인 임재양 외과 원장은 “채식을 하더라도 우리는 운명적으로 병에 걸릴 수밖에 없다는 건 인정해야 된다. 때에 따라서는 육식주의자보다 더 빨리 삶을 마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그렇게 채식으로 간 사람은 병과 건강에 대해 달리 생각한다. 육식주의자들은 자기는 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믿는다. 하지만 병에 걸리면 아주 당황을 한다. 유명 채식주의자 중에도 병에 걸려 요절한 이가 있다. 하지만 채식주의자는 그걸 아주 담담하게 순리로 받아들이더라”면서 채식에 더 높은 점수를 두고 있다.

채식망국론을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어떤 교수는 평생 돼지비계를 맘껏 먹어도 괜찮다고 한다. 현재 한국 전문가의 주장을 전수 조사하면 전문가의 주장이 얼마나 제각각이란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답을 못 내는 이러쿵저러쿵 건강식품론

전문가의 결론은 결국 ‘골라 먹는 지혜가 필요하고 적당하게 운동하고 맘 편하게 살면 된다’로 귀결된다.

그런데 이 ‘적당’이란 말과 ‘맘 편하게’란 말이 부아를 치밀게 한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담론’이 아닐 수 없다. ‘상대적 식품의학 정보’인 셈이다.

현재 국내 식품의학정보의 한계는 ‘단일 성분 단일 효과론’이다. 헛개나무를 보자. 동의보감과 의방유취 등에 따르면 비위강화, 갈증해소, 식욕부진치료, 대소변·신장·간기능 활성화 등이다. 거의 만병통치약 수준이다. 만약 헛개나무 농장을 가진 사람이라면 ‘헛개나무만 먹으면 건강걱정은 끝’이라고 할 것이다. 문경에선 오미자만 먹으면 끝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런 특산물이 한두 개인가. 그러니 지금 전국 농장주가 모두 만병통치교의 교주가 되고 있다. 모두 자기 것만 먹으면 무병장수한다고 자랑한다. 그런 내용이 6시 내고향, VJ특공대, MBN 천기누설 등 TV프로그램 식품 관련 코너를 통해 무차별적으로 퍼뜨려진다. 담당 PD는 인터넷에서 관련 검색어를 쳐넣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특정효능론을 관련 전문가의 멘트를 통해 알려준다. 모두 헷갈릴 수밖에 없다.

80년대 초 채식과 엔도르핀 돌풍을 일으켰던 이상구 박사가 얼마 전 한 TV 프로를 통해 의미심장한 식품건강론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이 80년대에 했던 채식만 하면 만사형통이란 식의 주장은 이제 더 언급하고 싶지 않다면서 특정식품 특정효능론을 경계했다.

특정 죽염까지 일부 마니아 사이에 부적처럼 추앙되고 있다. 하지만 식약청은 ‘죽염이나 일반 소금이나 결국 같은 성분일 뿐 그게 몸에 좋고 나쁜지는 우리도 말해줄 수 없다’고 한다. 다시 말해 어떤 효능을 제한적으로 가졌다는 것만 알 수 있지, 그게 몸에 좋은 건지 아닌지는 분석의 대상이 아니고 그걸 측정할 수 있는 첨단분석기계도 지구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우린 효능을 바로 건강으로 확신하는 병을 갖고 있다. 하나라도 많이 팔아야 하는 업자는 자기 식품을 하늘의 식품이라고 홍보할 수밖에 없다. 어차피 그게 몸에 좋은지 안 좋은지 분석하는 기계가 없으니 그들은 맘껏 선을 넘은 건강론을 신흥교주처럼 외쳐댈 수 있는 것이다. 한때 자석담요가 만병통치 상품으로 붐을 일으킨 것처럼 건강보조식품업계에도 유행상품순환론이 있다. 한때 소팔메토가 성인병 치료에 특효가 있는 것처럼 홍보됐고, 이어 아사이베리가 차세대 건강식품으로 급부상하기도 했다. 한때는 어성초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최근엔 종합채널 인기 프로 중 하나인 MBN ‘천기누설’에 등장한 울금, 된장차, 꽃송이버섯, 흰민들레 등 200여 종 암 특효 식품이 어필되고 있다.

기자는 몸에 좋은 식품도 나쁜 식품도 없다고 생각한다. 소금 하나에도 최대 수십만 가지의 성분이 감춰져 있다고 한다. 우리가 하루에 먹는 식품에 포함된 정확한 성분의 수는 오직 신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특정 성분 하나의 효능은 알아낼지 모르겠지만 위 안에 들어온 모든 성분이 어떤 융·복합반응을 일으키고 그게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아무도 모른다.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지금도 하루 한 끼가 좋은지를 놓고 고민한다. 기상하자마자 물을 먹는 게 나은지를 놓고 갈등하는 게 한국의 실정이다. 모두 건강염려증 환자로 전락하고 있다. 이제 식품건강론에 대한 엄정한 기준에 대해 고민할 때다.

갑자기 화장기 없는 ‘엄마 얼굴’ 같은 밥상이 더없이 그립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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