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대구 동구 평광동 사과마을

  • 류혜숙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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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10-17   |  발행일 2014-10-17 제38면   |  수정 2014-10-17
붉디붉은 마을…‘대구 사과’의 마지막 자존심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대구 동구 평광동 사과마을
대구시 동구 평광동에서 가장 크고 먼저 만들어진 못인 평광지. 탐스러운 사과가 빨갛게 익어간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대구 동구 평광동 사과마을
효자 우효중과 지조의 선비 우명식을 기리는 ‘첨백당’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대구 동구 평광동 사과마을
우리나라가 해방되던 날 마을 청년들이 심은 ‘광복 소나무’. 왼쪽이 유래비, 오른쪽은 해방기념비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대구 동구 평광동 사과마을
평광동 재바우 농원에 있는 국내 최고령 홍옥사과나무.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대구 동구 평광동 사과마을
신숭겸 장군 유허 비각. 모영재 뒤편 사과밭 너머에 위치한다.


불로천은 금호강의 지류 중 하나다. 강이 되기 전 불로천은 불로시장 앞을 흐르고, 조금 더 상류로 가면 도동의 측백나무 숲이 뿌리를 내린 향산을 적신다. 좀 더 거슬러 가보면 불로천은 아침햇살에 멋지게 반짝이는 황금빛 버드나무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협곡의 가운데서 여러 번 굽이지며 수목들의 왕성하고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다 갑자기 넓고 평평한 땅이 환하게 나타나는데, 불로천은 그 땅의 가운데를 흐르고 있다.

◆ 사과가 익어가는 계절

산으로 둘러싸인 넓고 평평한 땅, 평광동이다. 들 평(坪), 넓을 광(廣)자를 쓰니 마을 이름을 지은 이도 이곳의 지형이 매우 인상적이었음에 틀림없다. 마을을 개척한 사람은 단양 사람 우익신이라 한다. 16세기 임란을 피해 남쪽으로 왔던 그는 이곳의 아름답고 기름진 땅에 놀랐다 한다. 그가 터를 일구었고, 지금도 마을 사람의 다수가 단양우씨다.

마을 입구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평광동 마을 표지석과 거대한 왕버들나무다. 나무는 효성이 지극했던 가은 강순항을 기려 ‘효자 강순항 나무’라 불린다. 그의 정려각도 가까이 위치한다. 입구에서 볼 수 있는 또 다른 것은 ‘평광동 사과마을’ 표지판이다. 이 표지판이 아니어도 마을에 들어서면 알 수 있다. 마을은 온통 사과밭이다.

평광동은 115년 전통의 대구사과 집단재배지다. 마을의 192가구 중 140가구가 사과를 재배한다. 사과 하면 대구였던 적이 있다. 1960년대부터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대구의 사과 수확량은 전국의 80%에 달했다. 대구는 패티 김이 부른 ‘능금 꽃 피는 고향’이었다. 이후 도시화로 재배 농가가 줄어들기도 했고, 온난화 등의 이유로 사과의 주산지가 중부지방으로 옮겨졌지만 평광동 사과마을은 지금도 대구사과의 명맥을 잇고 있는 곳이다. 마을에는 국내 최고령인 84세 홍옥나무도 있고, 뉴턴의 사과나무 품종인 ‘켄트의 꽃’도 자라고 있다.

평광의 넓은 들은 대부분 사과밭이다. 불로천을 따라 서서히 좁아지는 골짜기에도 모두 계단식 사과밭이다. 장정의 주먹만 한 사과들이 빨갛게 익어가고 있다. 사과가 익어가는 계절이다. 다음달 1일에는 사과 따기 행사가 평광동 사과마을에서 열린다.

◆ 첨백당과 광복소나무

불로천을 따라 마을의 안쪽으로 쭉 올라가면 평광동 버스 종점에 다다른다. 종점은 동네의 한복판이고, 다른 마을로 갈라지는 임도의 분기점이다. 마을의 효자비와 열녀비 등도 이곳에 단체로 서 있다. 평광 종점의 오른쪽 사과밭 뒤쪽은 자연부락인 ‘큰마’다. ‘큰 마을’이란 뜻일 게다. 큰마의 가장 안쪽에 단양 우씨 집안의 재실인 첨백당이 위치한다.

첨백당은 고종 때인 1896년에 세워졌다. 아버지가 병이 들자 손가락 셋을 차례로 끊어 수혈해 14년을 더 살게 했다는 효자 우효중, 그리고 조선 말 벼슬을 버리고 은거한 절의의 선비 우명식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마당 한가운데는 소나무 한 그루가 서있다.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해방되던 그날 마을 청년들이 심은 나무라 한다. 그때 세 그루를 심고 바위를 세워 ‘해방기념’이라 새겼는데, 지금 해방 기념석 옆에는 한 그루만이 살아남아 있다.

2010년 정부는 전국 지자체를 상대로 광복소나무와 같은 당시 기념물이 있는지 조사했다고 한다. 그 결과 이 소나무는 국내에 유일한 광복 기념물로 공식 확인되었다. 지난해에는 ‘광복소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결성되었고 지난 8월에는 소나무 옆에 그 유래를 적은 비석이 세워졌다.

◆ 시량이 마을 가는 길

평광 종점에서 왼쪽으로 난 임도는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너비의 길이다. 몇 분간 숲에 폭 싸여 가다보면 다시 시야가 확 트이면서 커다란 저수지가 나타난다. 평광동에서 제일 크고 가장 먼저 만들어졌다는 평광지다. 저수지 옆길을 따라 아래로 가면 다시 마을의 초입이고 계속 오르면 시량이 마을로 간다. 시량이로 가는 길은 산 사면을 타고 오르내리면서 불로천 상류와 그 곁으로 빼곡한 사과밭이 장관으로 펼쳐져 있다.

시량이 마을은 옛날 왕건이 도피 중에 나무꾼을 만나 주먹밥을 얻어먹었다는 곳이다. 나무꾼이 다시 그 자리를 찾아 왔을 때 왕은 사라지고 없었다 하여 ‘왕을 잃은 곳’이란 뜻의 ‘실왕리(失王里)’로 불리다가 시량이가 되었다 한다.

마을은 깊은 골짜기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환하고 크다. 마을 안쪽에는 신숭겸 장군의 영정을 모신 ‘모영재’가 자리한다. 모영재의 왼쪽 오솔길을 오르면 작은 사과밭이다. 노인 한 분이 밭일을 하고 계신다. 찾아드는 이방인이 익숙한 모습이다. 사과밭 너머 볕 좋은 땅에 ‘신숭겸 장군 유허 비각’이 있다. 유허비는 927년 후백제와의 공산전투에서 전사한 신숭겸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비각은 돌담으로 단정하게 둘렀고 평평하게 다져놓은 주변은 꽤 넉넉하다. 아직 이파리 파란 은행나무 한 그루가 돌담 옆에 서 있다. 햇살 속에 평화로운 그림자를 드리운 나무는 도인처럼 보였고, 그가 보는 것은 도원경이었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대구 지하철 1호선 아양교역에 내려 버스 팔공1번을 타고 평광동 마을 입구나 종점에 내리면 된다. 자가용으로 갈 경우 불로시장 직전 불로천을 따라 도동 측백나무숲 이정표를 따라가서 도평로로 계속 가면 된다. 평광종점과 첨백당은 팔공산 왕건길 6코스인 ‘호연지기길’에 속해 있다. 평광지는 백안삼거리에서 출발, 평광종점까지인 왕건길 5코스 ‘고진감래길’에 속해 있다. 모영재가 있는 시량이 마을은 대구올레 팔공산 4코스인 ‘평광동네길’에 속한다. 11월1일 평광동 사과마을에서는 ‘사과 따기’ 행사가 열린다. 참가신청 및 문의는 대구녹색소비자연대(www.dgcn.org)로 하면 된다. 참가비는 1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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