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현의 걷기 여행 .7] 정도전의 혼 서린 소백산 자락길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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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10-17   |  발행일 2014-10-17 제39면   |  수정 2015-01-30
600년 前 못다핀 개혁의 꿈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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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고장’ 영주에 조성된 선비촌 입구의 삼봉 정도전을 기리는 조형물. 선비촌은 조선시대 전통가옥을 재현하여 유교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영주시가 소수서원 뒤편에 건설한 테마파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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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敬)자바위: 단종복위 거사로 죽은 원혼들이 죽계천 백운동 계곡을 떠돌았기에 소수서원을 세운 주세붕이 억울한 혼령을 달래기 위해 경자에 붉은 칠을 하고 정성을 다해 제사 지내니 원귀가 잠잠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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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자락길 제3자락 이정표. ‘죽령옛길’이라 불리는 제3자락 출발구간은 소백산역(희방사역)에서 출발하여 용부원길, 장림말길로 이어진다. 왼쪽 길은 소백산역으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 길은 희방사를 거쳐 연화봉으로 오르는 등산길이다.


영주는 안동, 문경, 예천, 봉화와 인접해 있다. 소백산을 경계로 죽령터널을 지나면 충북 단양이 되고, 마구령을 넘으면 강원도 영월이 되는데, 소백산을 크게 한 바퀴 돌아오는 멋진 길인 소백산 자락길이 있다. 소백산 자락길은 모두 12자락인데, 자락마다 수승한 경치와 재미있는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말처럼 걷기만 하면 스스로 즐거움이 넘치는 자락길(自樂길)이다. 영주-풍기-단양-영월-봉화-영주로 원점 회귀하는 소백산 자락길의 구간, 거리, 경로, 볼거리는 아래 표와 같다. 12자락 중에서 영주에 속한 것은 1·2·3·11·12자락이고, 4·5·6·7자락은 단양, 8자락은 영월, 9·10자락은 봉화에 속해 있다. 특히 9자락은 외씨버선길 10구간과 겹치기도 한다. 영주에 속한 다섯 개의 자락은 다시 세부 길로 나뉘어 재미있는 이야기와 볼거리를 제공한다. 소백산자락길은 영주시에서 2009년부터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를 만들기 시작하였는데 이제는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한국관광의 별’이 된 걷기길이다.

◆영주와 정도전

영주는 경북 북부에 위치한 교통의 요지다. 삼국시대 이전에는 기저국이 있었고, 신라시대에는 죽령이 고구려와의 국경이 되어 치열한 접전을 벌이던 군사요충지였다. 지금도 충북 단양에는 온달산성이 있어 고구려의 체취를 느낄 수 있고, 순흥 읍내리 벽화고분이나 어숙묘벽화에도 고구려의 영향이 많이 남아있다. 소백산 남쪽 비탈에는 신라가 축조한 산성의 흔적이 있고, 길목마다 세워진 희방사, 비로사, 초암사, 성혈사, 장안사, 부석사 등의 오래된 사찰은 신앙의 사찰이기보다는 국경 경비 초소의 역할이 더욱 컸으리라 짐작이 된다. 죽령에는 신라장군 거칠부, 화랑 죽지랑, 죽령산신 ‘다자구할머니’의 이야기가 전해져온다. 고려시대 말에는 순흥안씨의 시조인 안자미가 풍기(영주)로 입향하여 시조인 안자미(安子美)의 증손자 안유(安裕, 安珦)가 현달(顯達)해 소수서원을 세우게 되었고, 여말선초의 경세가이자 지략가인 삼봉 정도전이 영주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된다.

정도전은 봉화정씨로 영주시 중앙에 있는 구성공원의 ‘삼판서고택’에서 출생해 영주에서 성장했다(단양에서 출생하여 영주에서 성장했다는 주장도 있다). 정도전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정몽주, 이숭인, 권근, 이색 등 당대의 유학자들과 함께 공부하였다. 그는 고려 말 어수선하고 퇴락해가는 왕조에서 부패사회 개혁과 민본에 기초한 농민해방사상을 주장한 개혁가였다. 조선 건국과정을 살펴보면 무인이던 이성계가 지략가이자 경세가(經世家)인 정도전이 필요했는지, 아니면 정도전이 이성계를 기용하여 자신의 경세사상을 마음껏 펴게 되었는지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다. 조선건국 후 전개된 일련의 개혁이나 경세사상(經世思想)을 살펴보면 정도전이 이성계를 기용하여 조선이라는 새로운 왕조를 건설하였다는 것이 드러난다. 정도전을 해동장량(海東張良)이라 부르는 것도 그만큼 그의 재능이 뛰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유방은 장자방이 있었기에 한나라를 건국할 수 있었고, 유비는 제갈량이 있었기에 삼국이 정립(鼎立)할 수 있었던 것처럼, 이성계는 삼봉 정도전이 있었기에 조선 건국이 가능했다. 달리 이야기하는 것이 낫겠다. 장자방은 한고조를 기용하여 자신의 경세사상을 구현했고, 제갈량은 유비를 앞세워 자신의 포부를 드러낼 수 있었고, 정도전은 이성계를 이용하여 자신의 재능과 개혁사상을 실현할 수 있었다.

최근 KBS에서 방영돼 사극으로의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킨 ‘정도전’의 촬영지는 주로 영주와 봉화지역인데 이 지역의 멋진 경치도 한몫했겠지만 영주가 정도전의 고향이고, 그가 봉화정씨이기 때문일 것이다. 고려 말 친명파였던 정도전은 친원파에 의해 심한 견제를 받았고, 낙향해 불우한 세월을 보내다가 마침내 이성계를 통해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치게 된다. 조선건국 후에는 한양으로 천도하여 도시를 설계하였고, 제도와 법령을 정비하고, 과전법을 실시하고, 요동정벌을 계획한다. 요동정벌계획은 사병(私兵)을 혁파하여 왕도정치를 구현하고자 하는 노림수도 있었는데, 강력한 사병을 보유한 반대파였던 이방원, 하륜, 조준 등에 의해 정벌계획이 사전에 명나라에 밀고되어 실패하게 된다. 그는 자신의 정치사상을 담은 ‘조선경국전’을 써서 새로운 법제도의 틀을 세웠고,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관료지배체제를 통한 왕도정치를 주장했다. 또한 그는 서울을 설계하고, 경복궁을 건립하고, 궁궐이나 종묘의 위치와 4대문의 명칭 등을 꼼꼼하게 제정한 그야말로 서울을 디자인한 도시설계가였다.

왕자의 난으로 이방원에 의해 피살당하지만 그의 정치철학은 탁월하여 조선중기 사림(士林)에 의해 자연스레 계승되었다. 정도전은 신권과 조화를 이루는 왕도정치를 주장했고, 세습되는 왕조국가가 아니라 재상이 다스리는 나라를 건설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현실은 이방원이 주도하는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을 거쳐 세습 왕조가 건설된다. 이방원에 의해 세습되는 조선왕조에서 정도전의 경세사상이나 정치철학은 오랫동안 거론이 금기시되어 왔다. 허균도 정도전의 정치철학을 계승하고 그의 시문을 애호했다고 하여 역모로 참수될 정도였다. 정도전은 조선 후기 정조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의 경세사상이 인정받는 복권이 시작되었고, 고종 때가 되어서 완전히 복권된다.

영주시 중앙에 있는 구성공원에는 정도전과는 달리 새로운 왕조인 조선에서는 벼슬을 하지 않겠다며 낙향하여 은거한 사복재(思復齋) 권정의 봉송대(奉松臺, 鳳松臺)와 반구정(返舊亭, 伴鷗亭)이 남아있어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의 선비정신을 일깨워 준다. 또한 소수서원의 죽계천 바위에 새겨진 ‘경(敬)’ 자를 보면 단종복위 거사로 죽은 금성대군이나 선비들의 혼령이 떠오르기도 한다. 영주에서는 ‘의(義)가 산보다 무겁고 죽음은 새털보다 가볍다’는 말이 허언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리고 열녀는 두 아비를 섬기지 않는다(烈女不更二夫)는 정절이 소백산처럼 높게 느껴지는 곳이 바로 영주이다.

영주에는 최초의 서원이자 사립교육기관인 소수서원이 있다. 소수(紹修)란 ‘이미 무너진 교학을 다시 이어 닦는다(旣廢之學 紹而修之)’는 뜻이다. 소수서원은 사액서원으로 제향과 강학 기능이 있고, 주변의 아름드리 소나무와 은행나무가 멋지다. 풍기군수 주세붕이 숙수사 절터에 세운 백운동서원(소수서원)은 명륜당을 기준으로 오른편에는 학구재와 지락재가 있고, 왼편에는 일신재와 직방재가 있다. 바로 옆을 흐르는 죽계천에는 경렴정, 취한대, 탁정지 등이 있고, 바위에는 경자바위가 있다. 경자바위 앞에 서면 금성대군을 중심으로 도모한 단종복위 거사 실패로 죽은 원혼의 억울한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부석사는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화엄사상을 펴기 위해 창건한 사찰이다. 목조건물의 정수라고 말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이 있고, 안양루에서 바라보면 오른쪽으로 펼쳐지는 소백산 봉우리들이 시원하고 장엄하다. 무량수전 왼편 뒤에는 부석(浮石)이 있고, 오른편에는 선묘낭자의 영정을 봉안한 선묘각(善妙閣)이 있다. 선묘각은 부석사 창건설화와 관련이 있는데, 선묘낭자는 의상이 당나라에 유학할 때 기거하던 집주인의 딸이었다. 선묘낭자는 의상을 사모하였는데 의상이 수학을 마치고 귀국하자 바다에 몸을 던져 용이 되어 의상을 따른다. 그리고 의상대사가 부석사를 창건할 때 이 지역이 도둑들의 소굴이어서 저항이 만만치 않았는데, 용이 되어 의상대사를 따라온 선묘낭자가 나타나 부석(浮石)을 하는 이적(異蹟)을 보여 주었기에 비로소 부석사를 창건할 수 있었다. 의상대사가 주석한 처소를 조사해보니 앞마당에 돌용이 묻혀있는 것이 확인되어 이 설화가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님이 증명되었다. 이러한 선묘낭자의 설화는 서민들에게 불교가 빠르게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고, 의상대사의 화엄사상이 쉽게 전파되고 정착되는 것을 도왔다.

그 외에도 영주에는 문수면 수도리 무섬마을의 외나무다리가 아름답고, 5월 말이 되면 ‘소백산철쭉제’와 ‘선비문화축제’가 열리고, 가을에는 ‘풍기인삼축제’와 ‘부석사화엄축제’가 열린다. 십승지인 양백지간(兩白之間, 太白과 小白의 사이)의 고장 영주는 격암 남사고나 정감록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능히 마음의 위안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대구 능인중 교사

■ 소백산 자락길
자락 거리(㎞) 길이름 경로 볼거리/탐방추천명소
1 12.6 선비길 소수서원 → 삼괴정 소수서원, 선비촌, 금성단, 순흥향교, 배순정려비, 삼괴정
구곡길 삼괴정 → 초암사 배점분교, 죽계구곡, 초암사 
달밭길 초암사 → 삼가주차장 계곡, 달밭골 움막, 잣나무숲(최대섭 교장의 대금연주), 비로사
2 15.6 학교길 삼가주차장 → 영전펜션마을 금계바우, 금계호
승지길 금계호 → 풍기소방서 금선정, 십승지 임실마을, 풍기인삼시파지(임실마을)인삼포
방천길 남원천 → 소백산역 찰방역터, 무쇠다리터, 풍기온천리조트, 희방사
3 11.4 죽령옛길 소백산역 → 죽령마루 죽령장승공원, 주막터거리, 소백산역
용부원길 죽령마루 → 죽령터널 생태공원, 보국사지, 보국사지 장육불, 산신당, 죽령폭포
장림말길 죽령터널 → 장림리 죽령옛길, 대강주막, 죽령산신당 
4 11.7 가리점마을옛길 당동리 → 기촌리 또아리굴, 가리점마을, 성황당, 농경전시관, 클레이사격장 
5 15.8 황금구만량길 기촌리 → 보발재 구만동, 대대리마을, 향산리3층석탑, 다리안계곡, 구인사
6 13.8 온달평강로맨스길 보발재 → 영춘면사무소 온달산성과 동굴, 온달국민관광지, 영춘향교
7 18.2 십승지의풍옛길 영춘면사무소 → 의풍리 십승지마을 의풍, 김삿갓문학관, 김삿갓계곡
8 6.5 접경길 의풍분교 → 마흘천 삼도접경공원, 어래산, 남대리
대궐길 마흘천 → 주막거리 마구령, 현정사, 주막거리
9 7.2 방물길 주막거리 → 늦은맥이재 원시림, 화전민집터 
보부상길 늦은맥이재 → 오전댐 내성천발원지, 보부상위령비, 상신기마을, 생달마을, 오전약수터
10 7.0 쌈지길 오전댐 → 봉화학예관 오전댐, 장터마을, 봉화학예관
소풍길 봉화학예관 → 부석사 죽터, 땅골마을, 부석사
11 13.8 과수원길 부석사 → 사그레이 소백산예술촌
올망길 사그레이 → 모산 사그레이댐
수변길 모산 → 좌석(시거리) 단산지
12 8.0 자재기길 시거리 → 두레골 장안사
서낭당길 두레골 → 점마 두레골서낭당, 꼬두메마을
배점길 점마 → 배점분교(삼괴정) 덕현서낭당, 배순정려비, 성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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