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원전 예정지 영덕읍 석리 주민들 정부 불신 폭발

  • 구경모,손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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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10-21 07:19  |  수정 2014-10-21 07:19  |  발행일 2014-10-21 제1면
“주민 설득 나설 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보상금 깜깜무소식”
보상금 믿고 대출냈다가 집안이 풍비박산나기도
정부는 아무런 반응없어…원전건설 지지 단체조차
반핵단체와 연대 움직임
천지원전 예정지 영덕읍 석리 주민들 정부 불신 폭발
영덕의 천지원전 건설 예정지역 주민들은 사업 선정 이후 무성의로 일관하고 있는 정부와 한수원에 대해 불신을 보이고 있다. 16일 영덕읍 석리 주민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천지원전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영덕군 영덕읍 석리. 정부가 2024년까지 가압경수로형 원자로를 갖춘 가칭 ‘천지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기로 한 예정지다. 지난 16일 석리로 통하는 해안도로는 아름다웠다. 상쾌한 바닷 바람에 햇빛은 파도에 너울거리며 반짝였고, 파란 하늘과 바다의 경계엔 어선들이 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여느 평온한 시골마을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석리에서 만난 주민의 얼굴에선 미소를 찾을 수 없었다. 천지원전 때문이었다.

올해 여든이 넘었다는 강모씨는 취재진에게 가슴을 치며 울분을 토했다. 보상금을 두고 가족 간 분쟁이 일어났단다. 원전예정지로 지정·고시되기 전까지만 해도 유산 욕심이 없었던 자식들이 보상금이 생긴다고 하니, 심하게 다투고 있다고 했다.

강씨는 그나마 자신은 나은 편이라고 했다. “이웃 집은 보상금이 나온다는 말을 듣고 아들이 은행에서 대출을 냈지. 그런데 지금까지 2년이 지나도록 깜깜무소식이어서 집안이 아예 풍비박산이 났어.” 강씨는 고개를 저으며 담배를 물었다.

김일광 석리 이장(70)은 “마을 주민들은 평생을 살아온 삶의 터전이자 죽은 후 안식을 취해야 할 땅이지만, 국가를 위해 원전 건립지로 내놨다. 그러나 보상이 지연되면서 정부에 대한 불신만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석리와 함께 천지원전 건설 예정지로 지정된 노물·매정·창포리와 축산면 경정리 일대 주민도 보상금 지연에 따라 불만의 목소리를 내는 건 마찬가지였다.

특히 주민들은 보상이 지연되는 사정에 대해 설명조차 하지 않는 정부의 무성의한 태도에 분개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수원이 천지원전 건설 예정지를 찾아 보상이 지연되는 사정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주민을 납득시켜야 하지만, 지금껏 외면한 게 주민들로부터 공분을 사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석리를 중심으로 이 일대에는 원전 건설 반대 움직임이 일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주민 80%가 원전 건설에 찬성했지만, 지금은 사정이 크게 달라졌다.

앞서 지난 8일엔 한국농업경영인영덕군연합회가 “천지원전 후보지 인근 주민의 동의만 구한 것은 문제가 있다”며 영덕군민 전체의 의견을 수렴할 것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영덕군의회에 제출했다. 6일에는 영덕핵발전소 유치백지화투쟁위원회와 경주핵안전연대 등 경북 동해안 반핵단체들이 영덕군청 앞에서 핵발전소 건설 백지화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천지원전 반대 기류에는 원전건설에 힘을 실어주던 찬핵단체도 동조하는 분위기다.

김영규 <사>천지원전 추진운영 대책위원장은 “4년 전 주민을 설득하기 위해 영덕을 찾았던 정부 관계자들은 2013년 6월까지 보상을 완료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금까지 보상은커녕 사업조차 미적거리고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우리도 반핵단체와 연대해 실력행사에 나설 수밖에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구경모기자 chosim34@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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