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시론] 일본 산케이신문 고발사건 손익계산서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4-10-22   |  발행일 2014-10-22 제31면   |  수정 2014-10-22
20141022


박근혜 대통령에 관한
루머 다룬 산케이신문의
고발사건은 국민 혈세 낭비
한·일 신뢰 무너질 가능성
과연 한국에 덕이 될까

미국에서 유학을 한 뒤 한국에 돌아온 지도 10년이다. 펀드매니저 시절 외환위기를 겪었고 국제정치경제와 언론을 공부했다. 국내외 전문가와 언론인도 자주 만나는 덕에 국내 사정을 남들만큼은 안다. 그런데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다. 누워서 침을 뱉는 정도가 아니라 국민 세금으로 나라 망신을 자초한다. 산케이신문 고발 사건 이야기다.

2014년 7월7일. 김기춘 비서실장은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아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7월18일. 조선일보 최보식 기자는 ‘대통령을 둘러싼 풍문’이라는 칼럼에서 정윤회씨를 둘러싼 루머를 전했다. 8월3일. 산케이신문의 가토 다쓰야 지국장은 일본어로 ‘박근혜 대통령은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누구와 만났을까?’라는 칼럼을 실었다. 조갑제 기자의 언급 후 ‘뉴스프로’는 전문을 번역해 소개했다. 8월6일. 세월호 단식자 옆에서 폭식 행사를 주도했던 자유청년연합의 장기정 대표는 가토 지국장을 대통령 명예훼손으로 고발했다. 윤두현 청와대 대변인은 8월7일 기자회견을 통해 “엄하게 대처하겠다. 민형사상 책임을 끝까지 묻겠다”고 발표했다. 검찰은 출국금지를 요청했고 10월8일 정식 기소했다.

법적 소송을 제기한 목적은 명예 회복 또는 위축 효과로 알려진다. 정윤회씨가 미묘한 시기에 이혼을 했지만 대통령이 아니라면 이해할 수 있다. 명백한 거짓이거나, 악의적이거나, 정당한 관심사항이 아닐 경우 논란거리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공인이다. 대법원 판례에서도 정부나 국가기관은 형법상 명예훼손죄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고 결정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사실보도가 아닌 칼럼으로, 그것도 외국 언론이 고발된 사례는 없다. 겁을 줘서 입을 다물게 하는 것은 애초 불가능했다. 8월21일 영국 이코노미스트를 시작으로 이 소식은 전 세계로 퍼졌다. 언론보도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는 주제 자체는 물론 한국의 대통령이 일본 특파원의 칼럼을 겨냥했다는 것만으로도 뜨거웠다. 일본 언론, 정부와 언론단체는 말할 것도 없고 뉴욕타임스, 르몽드, AFP 등의 보도 역시 잇따랐다.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의문이다.

재판에서 승소할 경우 당장 사법부의 독립성이 의심을 받는다. 공인에 대한 명예훼손을 극히 예외적으로 인정하고 점차 폐지하는 국제사회의 흐름과도 멀어진다. 악의성, 허위성, 고의성을 입증하는 것 역시 결코 쉽지 않다. 결정적으로 외국어로 보도된, 뉴스가 아닌 의견을 처벌할 경우 그 후폭풍이 엄청나다. 당장 지도자에 대한 절대존엄을 구실로 선전용 ‘삐라’ 발송을 비판하는 북한에 할 말이 없다. 그들이 일방적으로 고소하고 제3국에서 체포해 재판을 할 수도 있다. 중국, 러시아 등에서 국내 언론의 보도내용에 대해 동일한 보복을 해도 할 말이 없다. 재판에서 질 경우 또한 곤란하다. 당장 무리한 기소였다는 비판을 받아야 한다. 국민의 혈세 낭비는 말할 것도 없고 이 모든 소동을 벌인 의미가 없다. 한국과 일본 양국 간 무너진 신뢰는 단시간에 회복되기 어렵다. 너무 많은 기회비용을 지불하고 있다는 것 역시 심각하다.

물이 낮은 데로 흐르듯 덕 있는 사람 주변에는 사람이 모인다. 국제사회의 공감과 동의를 얻지 못하면 국가는 고립되고 적대적 여론으로 피해를 본다. 우수한 인재가 떠나고 외국인투자도 줄어든다. 정부가 국가이미지위원회나 국가브랜드위원회를 만들어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좋게 만들려고 막대한 세금을 쏟아붓는 이유다. 해외홍보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및 국제교류재단 등에서 해외 언론인을 초청해 공짜로 숙식을 제공하고 관광을 하게하는 까닭도 국가의 품격을 관리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지금 이 모든 노력이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있다. 언론자유와 인권을 탄압하고 정치검찰이 부활한 독재국가로 회귀한다는 낙인이 찍혔다. 대통령의 총기를 흐리는 공공의 적이 누구인가를 질문해야 할 때다.

김성해 대구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