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관 개청 100년 1914~2014 칠곡 .15] 지게부대를 아시나요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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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10-24   |  발행일 2014-10-24 제11면   |  수정 2014-11-21
‘왜관개청 100년-1914~2014 칠곡’은 칠곡군의 군청 소재지가 왜관으로 옮겨 개청한 1914년부터 100년 동안, 칠곡의 주요 역사와 인물을 다룬 시리즈이다.
군번도 계급도 없이 지게에 보급품을 싣고 전쟁터를 누볐다

스토리 브리핑

한반도는 국토의 70%가 산악지역이다. 이 때문에 6·25전쟁 당시 고지전이 곳곳에서 치열하게 벌어졌다. 1950년 8월 낙동강전투가 한창이던 칠곡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곳 또한 산악지역의 지형적 특성 때문에 수많은 고지전이 벌어졌다. 328고지를 비롯해 유학산, 수암산, 가산 등지에서 고지를 뺏고 뺏기는 격전이 밤낮없이 이어졌다. 고지전의 특성 때문에 아군은 군수물자를 제때 지원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당시 이러한 문제를 해결했던 부대가 일명 ‘지게부대’로 불린 노무대원들이었다. 노무대원은 지게에 포탄이나 식량 등의 보급품을 지고, 산 정상에 있는 아군에게 전달하는 일을 맡았다. 전사자와 부상병을 지게에 지고 부대로 옮기기도 했다. 급박한 상황에서는 총을 들고 전투에 참여하기도 했다고 한다. 특히 노무대원들은 철모도 쓰지 않고 흰색 무명바지 차림으로 전장을 누벼야 했다. 이 때문에 북한군은 흰색옷으로 인해 눈에 잘 띄는 노무대원들을 집중적으로 공격하기도 했다. 노무대원 대부분은 민간인이었다. 앳된 얼굴의 소년부터 백발 노인까지 연령층도 다양했다. 나라를 위해 자원한 경우도 있지만, 일부는 징집되는 사례도 많았다.

미군들은 노무대원이 지고 다니는 지게의 모습이 알파벳 A와 흡사하다고 해서 “The A-frame Army”(지게부대)라고도 불렀다. 특히 유엔군과 미군 지휘부는 노무대원들을 가리켜 “어떤 의미에서는 전투의 절반을 그들이 치렀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미 8군 사령관이었던 밴 플리트 (James Van Fleet) 장군 또한 회고록에서 “만일 노무대원들이 없었다면 최소한 10만명 정도의 미군병력을 추가로 파병했어야 했을 것”이라며 그들의 역할을 높이 평가했다. 군번이나 계급장도 주어지지 않았지만 노무대원들이 없었다면 전쟁의 급박한 상황을 헤쳐 나가기 어려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왜관개청 100년-1914~2014 칠곡’ 15편은 낙동강전투에서 총 대신 지게를 지고 나라를 위해 전장에 나섰던 노무대원들의 이야기다. 이야기는 참전용사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풀어냈고, 등장인물은 허구임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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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당시 노무대원들은 포탄이나 식량을 지게에 지고 고지전을 벌이는 아군에게 전달하는 일을 맡았다. 철모는커녕 흰색 무명바지 차림으로 전장을 누빈 노무대원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전세를 역전시키고 나라를 지켜낼 수 있었다.


#1. 1950년 8월15일 대구 외곽

허씨는 날품팔이라도 할까 싶어 무작정 거리로 나왔다. 그는 마을에 흔치 않은 남자였다. 전쟁통에 장정은 모두 끌려갔지만 그는 징집대상연령을 초과해 노모를 부양할 수 있었다. 끼니를 구해볼 요량으로 거리에 나왔지만 마땅한 일거리도 없었다. 무거운 발걸음을 계속하다 언뜻 시청 앞에 붙어있는 벽보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민간인 노무자 모집’

뿌연 흙먼지를 날리며 미군 트럭이 줄지어 달려갔다. 광춘은 ‘무슨 사단이 났을까’ 하며 도로변에서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지나가던 트럭이 광춘 앞에서 거칠게 멈춰섰다. 찌든 때가 잔뜩 묻어있는 몰골을 한 미군이 광춘에게 다가왔다. 흰 피부의 사내는 말이 통하지 않자 손으로 몇 가지 동작을 보였다. 트럭에는 벌써 네댓 명의 사람이 타고 있었다. 광춘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위압적인 미군의 손짓에 꾸역꾸역 트럭 뒤칸에 올라탔다.

“여러분은 이곳에서 군인들을 도와 각종 지원업무를 하게 될 것입니다.”

칙칙한 부대 한편에는 유난히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이 눈에 많이 띄었다. 눈물을 왈칵 쏟을 것 같은 표정의 앳된 소년부터 머리가 반쯤 벗겨진 노인까지 50명 남짓의 사람이 뜨거운 햇살을 견디고 있었다. 장교로 보이는 군인은 다부진 자세로 말을 이었다.

“우리는 낙동강과 칠곡 유학산 가산을 잇는 방어선을 최후의 저지선으로 삼고 대구를 사수할 것입니다. 병사는 총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총은 충분한 탄약 없이는 쓸모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포탄과 탄약 그리고 물과 식량을 아군에게 보급하는 임무를 맡을 것입니다.”

장교의 말이 끝나자 곳곳에서 ‘아이고, 아이고’ 소리가 새어나왔다. 앞줄에 앉아있던 허씨는 아차 싶어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부대에서 잡일이나 하는 줄 알았는데, 빗발치는 총탄을 뚫고 전장을 오가게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당황스러운 것은 허씨만이 아니었다. 가두에서 멋모르고 트럭을 탄 많은 사람들의 탄식소리도 터져 나왔다. 광춘도 불평을 쏟아냈다.

“이걸 우예 드노?”

낑낑대며 한 상자에 두서너 명씩 붙은 노무대원들은 무거운 포탄과 탄약상자를 이고 지며 산으로 올랐다. 거친 숨을 몰아쉬자니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고지에는 이미 한바탕 전투를 치른 군인들이 보급품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맙습니다. 밤에는 좀 서두르셔야 할 겁니다. 오가는 길을 잘 봐두십시오.”

인사를 건네는 군인을 뒤로한 채 노무대원들은 또다시 무거운 발걸음을 되돌렸다. 산을 내려오는 길에 허씨는 뒤처져 가는 한 늙은이를 발견했다. 변씨였다. 그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으로 얼핏 봐도 예순은 넘어 보였다. 갑자기 변씨가 일행과는 다른 방향으로 길을 틀었다.

“어르신, 어데 가십니까?”

허씨가 다그쳤지만 변씨는 못 들은 체하며 걸음을 옮겼다. 그런 변씨의 등을 멍하니 바라보던 허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도망칠 생각을 할까….’ 허씨는 변씨 노인을 뒤로한 채 산을 내려와 부대로 복귀했다.

“이거 너무하는 거 아이가?”

막사 그늘에서 잠시 숨을 돌리던 차에 광춘이 삐죽대며 말을 꺼냈다.

“아니, 아무리 일손이 딸린다 캐도, 이래 막 델꼬 오믄 집에서 내만 바라보고 있는 처자식들은 우야라꼬….”

착잡한 현실에 노무대원들 모두 고개를 푹 숙였다.

“경기도 안양에서 내려온 이준영이라고 합니다. 저는 난리통에 고향땅을 버리고 아무 연고도 없는 여기까지 내려왔습니다. 우리가 이렇게라도 도와야 나라를 지킬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 이왕 이래 된 거 우리가 열심히 해가 나라 지키면 되는 거지.”

돌을 베고 누워있던 허씨가 고쳐 앉으며 말했다. 노무대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2. 8월16일 328고지

“어제 빼앗겼던 수암산 남쪽 328고지를 15연대가 탈환했습니다. 밤이 되면 다시 북한군이 공격해 올 것입니다. 낮 동안 최대한 많은 탄약을 보급해야 합니다. 서둘러 주십시오.”

노무대원들은 산처럼 가득 쌓인 탄약 상자들과 보급품을 보고는 엄두를 못냈다. 긴 한숨만 터져나왔다.

“여다 실어라.”

무리 사이를 헤집으며 백발 노인이 나타났다.

“아니, 어르신!”

허씨는 순간 목이 막혔다. 도망간 줄 알았던 변씨 노인이었다. 등에는 지게를 지고 있었다.

“산에 가는 거믄 지게를 져야지.”

변씨 노인은 묵묵히 지게를 내려놓고는 보급품을 쌓아올렸다. 그 모습을 본 노무대원들은 무릎을 탁 치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맞다, 지게가 있었제!”

“아! 그래, 지게를 사용했으면 대번에 편했을 낀데. 어르신, 지게 가지러 갔다왔는갑네예.”

허씨는 반가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지게를 진 노인은 거뜬하게 일어섰다. 노무대원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싱긋 눈웃음을 지었다.

지게로 무장한 노무대원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산을 오르내리며 보급품을 전달했다. 미군이 담당하고 있는 고지로 올라가는 길에는 가끔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덩치 큰 미군들이 용을 써가며 드는 것을 체구가 작은 사람들이, 심지어 백발 노인들이 그 무게의 두세 배쯤 되는 것을 등에 지고 산을 척척 오르니, 모두들 입이 떡 벌어졌다. 노무대원들의 그런 모습을 미군은 마치 서커스를 구경하듯 신기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It looks like A.”

미군들은 노무대원들의 지게를 보며 ‘A…A…’를 반복했다. 허씨와 광춘은 무슨 말인지 몰라 멋쩍은 웃음만 지어보일 뿐이었다.


#3. 8월18일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고지를 점령했다 빼앗기는 격전이 반복됐다. 새벽부터 전차를 앞세운 적이 국군 1사단과 6사단의 경계인 가산으로 쳐들어왔다. 전투는 계속됐고 노무대원 중에서도 사상자가 속출했다.

“자, 퍼뜩 올라가입시더. 우리만 기다리고 있는 군인들 목빠지게 하지 말고…”

허씨의 재촉에 모두 발걸음을 서둘렀다. 8부 능선을 지날 때였다. 정상에서 군인들이 도망치듯 뛰어내려오고 있었다.

“이…뭐…뭔 일이고?”

“후퇴하라! 후퇴!”

고지로부터 들려오는 소리는 아군의 후퇴명령이었다. 곧이어 눈앞에 포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불빛이 번쩍하며 총탄이 날아들었다. 놀란 노무대원들은 등에 실은 보급품을 내버리며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정신없이 내려가던 허씨의 귀에 끔찍한 단발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변씨 노인이 총을 맞아 쓰러져 있었다. 배에는 피가 솟구치고 있었다.

“어르신! 정신차리소!”

허씨는 지게를 벗어놓고 쓰러진 변씨를 부축해 지게 위에 실었다.

“여기 꼭 붙잡고 있으소. 퍼뜩 내려갈 낍니더. 단디 잡으소!”

부대로 돌아온 노무대원들은 넋을 잃은 표정이었다.

“허씨 아제하고 변씨 할배가 안 보이네예?” 광춘이 걱정스러운 눈빛을 지어보였다.

“어! 저기 오네요.”

지게를 진 허씨가 허둥거리며 뛰어오고 있었다. 지게엔 축 늘어진 무언가가 있었다.

“너거들 뭐하노? 이거 안 보이나? 어르신 총 마따 안 카나!”

눈에 불을 켜고 씩씩거리는 허씨를 광춘이 말리며 나섰다.

“행님, 고마하소, 예? 어르신은 벌써….”

노무대원들이 입고 있던 흰 무명옷은 어느덧 검붉은 피로 찌들어 있었다.


#4. 8월21일 다시 328고지

변씨 노인을 잃었지만 노무대원들은 일을 멈추지 않았다. 지게에 보급품을 싣고 밤낮없이 고지에 올랐다.

328고지는 여전히 전쟁의 한가운데 있었다. 맹렬하게 싸우던 아군은 가까스로 버티고 있었다. 탄약이 점점 떨어져가면서 북한군의 공세는 더욱 거세졌다. 노무대원들은 탄약을 가득 실은 채 서둘러 산을 올랐다. 폭염에도 불구하고 바쁜 발걸음을 옮겼다. 산길에는 신경질적으로 우는 매미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퍼뜩 주이소!”

고지를 지키던 군인들은 보급대원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성한 사람이 없을 만큼 모두 처절하게 싸우고 있었다. 지체할 시간도 없이 보급품을 내려놓고는 허씨가 말했다.

“쪼매만 더 버티소. 우리가 금방 내려갔다가 또 올 테이끼네.”

말은 이렇게 했지만 탄약만으로는 버틸 재간이 없어보였다. 허씨는 하산하던 노무대원들을 불러 세웠다.

“안 되겠다. 돌아가자.”

“예? 고지로 말입니까?” 광춘은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저대로 있다간 모조리 몰살될 끼다. 우리도 가서 싸우자!”

허씨의 눈빛은 단호했다.

“그래, 그라자! 가서 싹 다 직이뿌자!”

광춘은 기다렸다는 듯이 흥분하며 동의했다.

스무 명 남짓한 노무대원은 시신 더미 속에서 총을 집어 들었다. 직접 훈련을 받은 적은 없지만 눈짐작으로 많이 봐온 터라 어렵지 않게 사격할 수 있었다. 시신에 포탄이 떨어져 피칠갑을 해도 옆에 놓인 수류탄을 집어 던지며 저항했다. 하지만 고지 위로 올라오는 적의 함성은 그칠 줄 몰랐다. 으아아아! 허씨는 괴성을 지르며 쏘아댔고, 광춘은 기관총을 붙잡고 미친 듯이 흔들었다. 고지는 핏빛으로 붉게 타올랐고, 주인을 잃은 지게는 갈 길을 잃은 채 나뒹굴었다.

노무대원들은 처음에는 민간수송부대(CTC)로 불렸다. 하지만 전쟁에서 보여준 그들의 활약은 군인 못지않았다. 미 8군 사령관이었던 밴 플리트 장군은 1951년 이들을 미 육군 소속의 한국근무단(KSC)부대로 재편하는 것을 지시한다. 이 부대는 6·25전쟁 동안 한반도 전역에서 큰 활약을 펼쳤다. 그리고 미군들은 지게를 지고 가는 그들을 이렇게 불렀다.

“A-Frame army.”

글=김찬년<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초빙연구위원>

사진출처=국가기록원
공동기획: 칠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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