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락의 풍수로 본 명당] 선덕여왕릉 터의 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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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10-24   |  발행일 2014-10-24 제36면   |  수정 2014-10-24
[박재락의 풍수로 본 명당] 선덕여왕릉 터의 비보

신라 천년의 찬란한 문화가 꽃필 수 있었던 것은 신라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 덕분이며, 경주 진산인 낭산에 선덕여왕릉이 자리한다. 선덕여왕릉 터는 삼국통일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도록 대의정치를 보여주었던 여왕이기에 얻을 수 있는 천장지비(天藏之秘)의 터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명당형국은 일제 강점기 울산과 영천 신작로를 따라 놓인 계획철도가 경주로 진입하면서부터는 그것이 많은 왕기맥을 끊으면서 관통하고 있다. 특히 선덕여왕릉은 사천왕사지와 연결된 지맥을 확연이 끊고 빠져나갔으며, 황룡사지와 안압지, 옛 도읍지인 반월성 지맥을 자르며 경주 중심부를 지나 안강으로 빠져나간다. 이에 낭산에 자리한 선덕여왕릉 터의 명당공간을 살펴보고, 훼손된 왕릉 터에 대한 풍수비보를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낙동정맥이 백운산(892m)에서 분맥하여 호미지맥을 이루고 치술령(603m)에서 좌선지맥은 남산(495m)을 세우고 우선지맥은 토함산(745m)을 세웠다. 토함산의 내룡맥은 다시 망호봉-대덕산-형제봉(290m)을 행룡한 후, 산진처인 낭산(101m)에 입수맥을 뻗어내려 선덕여왕릉 터에 혈처를 이루고 있다. 즉, 토함산은 주산이 되고 낭산은 현무봉을 이룬 곳으로, 내룡맥이 단맥하지 않고 살아 움직이듯이 행룡입수하여 터를 이룬 것을 말한다. ‘A’지역은 예전의 사천왕사지로, 낭산의 앞쪽 입술에 해당되는 전순(氈脣)부분이다. 전순은 혈처의 여기맥(餘氣脈)이 더 이상 분출되지 않도록 땅이 뭉쳐진 형태를 띠게 된다. 풍수적으로 전순이 없는 터는 생기가 앞쪽으로 새어 나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곳 왕릉 터는 전순을 갖춘 명당을 의미한다. 명당혈처는 생기가 오래도록 머물 수 있도록 좌우의 산세가 감싸듯이 호위하고 있는 공간에 자리하여야만 한다. 풍수도에 나타난 바와 같이 선덕여왕릉(27대)을 중심으로 뒤쪽은 부왕인 진평왕릉(26대)이 든든히 자리하고 있으며, 앞쪽 가까이는 신문왕릉(31대)과 효공왕릉(52대)이 있고, 초입에는 신무왕릉(45대)이 자리를 지키는 형국이다. 이러한 지세를 보면 지금까지도 후대의 왕들이 머물고 있는 지맥에 의해 낭산의 혈처가 보호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째, 득수는 ‘남천’을 얻고 있다. 남천의 수계를 살펴보면 토함산에서 발원한 계류수는 불국사가 입지한 중심룡맥의 좌우에서 1차 지당을 이룬 후 산진처의 ‘불국동’에서 합수한다. 다시 물길은 구곡수로 흐르다 남산에서 발원한 계류수와 2차 합수하여 낭산으로 흘러 들어오는 수세이다. 득수형태는 선덕여왕릉 터로 진입하기 전에 신문왕릉 터에서 반궁수를 이룬 뒤, 곧바로 궁수를 이루어 서쪽의 넓은 들을 거쳐 옛 도성인 반월성을 따라 빠져나가 형산강과 합수하고 있다. 이것은 신문왕릉의 터가 남천의 물길을 걷어주어 역수형태로 완화시킨 후 다시 궁수형태를 이룬 것이며, 낭산의 지맥은 더 이상 뻗어나가지 못하도록 경계를 이룬 것이다. 이러한 형국은 산(음)과 물(양)이 서로 만나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 생기가 생성되는 곳이 되며, 빠져나가는 물길이 보이지 않는 입지를 이루게 된다. 따라서 선덕여왕릉의 터는 장풍과 득수가 이루어져 혈처를 이루고 있는 명당이다.

셋째, 왕기맥이 끊어진 신성공간이 흉당으로 변하고 있다. 먼저 울산에서 경주의 초입에 있는 원성왕릉(38대), 효소왕릉(34대), 성덕왕릉(33대), 신무왕릉, 신문왕릉, 효공왕릉, 선덕여왕릉 입지는 토함산의 왕기맥을 받고 있는 곳이다. 토함산은 예로부터 우리 선현들의 산악사상에 따른 동악(東嶽)의 신성공간으로, 맑은 정기가 머물고 있는 영산(靈山)이다. 그런데 이러한 정기가 이어진 왕릉 터의 왕기맥을 무참히 자르면서 지나는 철로가 놓여 있는 형국이다. 특히 선덕여왕릉 터는 전순을 자르면서 지나고 있으므로, 지금 사천왕사지의 조성은 생기가 없는 땅에 모양만 만드는 형국이다. 또, 서쪽으로 진입하는 철도와 4호선 국도가 선도산(381m) 목자락을 가로질러 조성되어 있으며, 철로는 태종무열왕릉(29대)을 관통하였고 다시 송화산(276m) 자락의 김유신장군(흥무대왕으로 추증)묘를 관통하고 있다. 이곳 역시 흉당으로 바뀌고 있다.

현 정권은 문화융성을 유독 강조하고 있지만 선현들이 머물고 있는 명당공간들이 훼손된 채 방치된 사실은 정작 모른다. 경주는 천년의 역사가 숨 쉬는 공간이다. 지금도 늦지 않다. 철로가 지척에 놓여 왕기맥을 자르면서 지나고 있는 입지는 서서히 흉당공간으로 변해가고 있다. 도시재생 차원에서 효소왕릉·선덕여왕릉·신문왕릉 터·경주 안압지 북편·태종무열왕릉 터·김유신장군묘역 공간은 방음벽이나 비보림을 조성하여 명당지기를 받을 수 있도록 풍수비보를 해야 한다.

국풍환경설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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