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카펫’서 에로영화감독 연기한 윤계상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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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10-24   |  발행일 2014-10-24 제37면   |  수정 2014-10-24
“배우 윤계상, 사회적 루저나 아웃사이더 역이 체질인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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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뤄놨던 숙제를 마친 뒤의 후련함일까. 윤계상의 얼굴엔 행복한 미소와 여유로움이 비친다. 정상의 인기를 구가했던 그룹 god의 멤버에서, 이젠 배우 윤계상이라는 수식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데뷔 10년 차 배우 윤계상. 그간 흥미로운 연기 행보를 보여왔던 윤계상은 지금 행복한 꿈을 꾸는 중이다. 지금껏 간절히 원했지만, 쉽게 닿을 수 없었던 배우로서의 기분 좋은 꿈을 말이다.

‘레드카펫’은 윤계상에게 그 꿈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훌륭한 무대로 다가왔다. ‘레드카펫’은 상업영화로의 진출을 꿈꾸는 에로영화계 감독과 동료들의 이야기를 코믹함과 감동으로 녹여낸 작품. 윤계상은 나름대로 잘나가는 에로영화감독 박정우를 연기했다. 언젠가 부모님께 자신의 이름이 걸린 상업영화를 보여주는 게 꿈인 인물이다.

영화는 ‘레드카펫’을 연출한 박범수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다. 실제로 그는 270여 편의 에로영화를 만든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 그만큼 상업영화로의 첫 데뷔를 앞둔 박 감독에게도, 전작의 무게감을 덜어내고 모처럼 한판 신나게 놀았다는 윤계상에게도 ‘레드카펫’은 꿈의 무대이자, 즐거운 놀이터가 됐다.

“오래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바라봤던 배우였다. 호감이었던 그의 이미지는 이번 작품을 통해 더욱더 굳혀졌다”는 박범수 감독의 말마따나 윤계상은 진정한 배우가 되고자 하는 그의 진심을 ‘레드카펫’을 통해 솔직 담백하게 드러냈다. 그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레드카펫’은
에로영화 270여편 연출한
박범수 감독 자전적 얘기
삶이 쓸쓸한 관객에겐
해피바이러스 안길 영화

가수에서 연기자로 자리매김
‘배우 윤계상’ 아직 50%
‘연기자 윤계상’이기 전에
가수였다는 게 매우 감사
god 다시 활동 행복 만끽

-영화에 대한 반응이 좋다. 개인적으로도 재미와 공감이라는 측면에서 만족스러웠다.

“사실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이제야 한숨 돌렸다. 그래서 어제 좀 과음을 했다. 원래 술을 잘 못 마시는데 시사회 반응이 좋으니까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걱정이 된 부분은 뭔가.

“진정성을 다루는 영화지만 소재 자체가 좀 의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서다. 소재의 진정성과 영화적인 재미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는 것이 관건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적절하게 수위 조절이 된 것 같다.”



-‘레드카펫’을 관객에게 소개한다면.

“인생을 살다보면 한두 번은 진짜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온다. ‘레드카펫’은 그 기회가 찾아와서 고민하는 사람, 그리고 지금의 삶이 지루하거나 쓸쓸하게 느껴지는 사람이 해피바이러스를 듬뿍 안고 갈 수 있는 영화다. 솔직히 영화가 너무 웃기기만 하면 남는 게 없고 허탈감이 또다시 찾아온다. 기쁜 감정은 짧고, 슬픈 감정은 더 깊어서 오래 간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희망을 찾으면 그 희망 때문에 기쁜 감정이 계속 유지된다고 한다. 그런 기쁜 감정이 이 영화를 보면서 느껴질 듯하다. 지금도 영화를 생각하면 너무 웃기지 않나. 그런 감정을 나눠주고 공유할 수 있는 영화다.”



-최근 영화의 소재가 무거웠다는 점에서도 에로 영화 촬영 현장을 밝고 코믹하게 다룬 이 영화의 경쟁력은 충분하다고 본다.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의 첫 느낌은 ‘재밌다’ 였다. 신기한 건 이 이야기의 80% 이상이 감독님의 실제 이야기라는 점이다. 에로영화 감독이라는 타이틀이 대중의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분명 힘든 시간이었을 텐데 이를 유쾌하게 다뤘다는 점이 놀라웠다. 감독님 자체가 되게 긍정적이고 기분좋은 사람이라 가능했던 것 같다. ‘레드카펫’은 그런 감독님의 성향을 고스란히 보여준 작품이다.”



-감독과 동갑이라 통하는 것도 많았겠다.

“엄청 친해졌다. 지난해 여름부터 찍었는데 지금까지 친분을 이어가고 있다.”



-극 중 정우는 에로영화와 상업영화 사이에서의 편견이라는 벽을 쉽게 넘을 수 없었다. 가수에서 연기자가 되는 과정에서 당신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을 것 같은데.

“편견에 대한 서운한 감정은 물론 있다. ‘왜 날 좋게 안 봐주지,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라며 최근까지 섭섭한 감정이 들었다. 그런데 ‘레드카펫’을 위해 감독님을 만난 후 그건 내 스스로의 열등감이었음을 깨닫게 됐다. 감독님은 본인이 에로영화 감독이라는 것을 전혀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부심과 긍지가 대단했다. 그는 이 일이 정말 재밌다며 자신에게는 매우 귀중한 재산이라고 여긴다. 사실 270편의 에로영화를 찍는 게 아무나 가능하진 않을 것이다. 에로영화 감독인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여전히 감독으로 일을 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고맙게 생각하는 것을 보면서 느낀 게 정말 많았다. 이젠 내가 가수였다는 게 감사하고, god를 다시 시작하게 된 것도 마냥 행복하다. 정말이지 요즘은 모든게 고맙고 감사하다.”

-박 감독의 작품을 본 건 있나.

“일부러 보지 않았다. 그동안 감독님의 좋은 면을 너무 많이 봐왔는데 그것을 보고 느낌이 달라질까봐.(웃음) 물론 감독님의 영화를 폄훼하려는 건 절대 아니다. ‘레드카펫’ 현장에서 능수능란하게 지휘하던 멋진 모습만 기억하고 싶었다. 진짜 현장에선 날아다녔다는 표현이 적확할 만큼 상업영화 200편은 찍은 분 같았다. 대단하고 신기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태종대 영화제 장면은 이 영화의 모든 감정을 감동으로 승화시킨 느낌이다.

“어떻게 담을지 심사숙고했던 장면이다. 결론은 쉽게 풀어가기로 했다. 단, 감정적으로 진정성있게 접근하자. 그래서 현장에서 대본을 계속 고쳐가면서 해 뜨기 전 10분 전에 찍었던 장면이다. 사실 시골 학교운동장에서 개최되는 태종대 영화제는 영화인에겐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여기에 작품이 출품된다고 감독으로서 인정을 받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조차도 감독은 행복하고 감사했던 거다. 시사회 때도 감독님이 이 장면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실제로 감독님의 부모님이 시사회장에서 관람을 하셨는데 그렇게 환하게 웃는 모습은 처음 봤다고 하더라. 그런 실제 모습이 투영된 장면이다. 그리고 태종대 영화제에서 정우가 수상소감을 하는 장면을 보면서 감독님은 시사회장에 모인 관객에게 얘기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야말로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였다.”

-감독의 자전적인 얘기다. 감독이 특별히 주문한 게 있다면.

“그냥 나를 믿어주었고 마냥 좋다고만 했다.(웃음) 하긴 촬영하는 동안 수도 없이 제안하고 검토했던 터라 딱히 주문할 건 없었다. 서로의 눈만 봐도 생각이 읽힐 만큼 통하는 게 많았다.”



-대중은 19금 소재를 다룬 다소 야한 영화라는 생각을 할 것도 같다. 사실 진짜 재미는 따로 있는데.

“같은 생각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내용은 그렇지 않아도 일단 대중의 관심과 이목을 끌어야 하니까 마케팅 측면에선 그렇게 접근하는 게 정답일 수 있다. 많은 대중이 보는 게 중요하니까. 포장지가 어떻든 열면 그 안에 진짜 보석이 들어있으니 오히려 그런 의외의 재미를 색다른 매력으로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평소 당신의 연기적 접근을 흥미롭게 생각했다. 상업적인 영화보다는 주로 저예산, 독립영화에 출연해 왔다. 게다가 ‘풍산개’ ‘조금만 더 가까이’는 노 개런티로 출연하기도 했다.

“연기를 처음 시작할 때는 뭣 모르고 시작한 건 있다. 그러다 현장의 스태프나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장난을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배우라면 분명히 믿음을 줄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해야 하고, 대중적이지 않더라도 연기자의 가치관을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10년 동안 연기를 하면서 솔직히 드라마는 경제적인 이유로 선택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영화만큼은 양보하고 싶지 않았다. 연기에 대한 내 진정성과 의지, 열정 등을 대중에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항상 도전적인 자세를 취했던 것 같다. 사실 저예산 영화에도 진정성이 담긴 좋은 영화가 무척 많다. 거기에 동참하고 싶었다.”



-캐릭터적인 면에서도 완성적인 인물보다는 사회적 루저의 모습일 때 당신의 매력은 극대화되는 것 같다. 그 점에서 이 영화와 공감되는 부분도 있을 듯한데.

“내가 좀 찌질해서 그렇다.(웃음) 솔직히 그런 루저 캐릭터에 호감이 많이 가는 건 사실이다. 극 중 정우는 에로영화 감독이지만 회사에 소속돼 있어서 4대보험과 월급이 밀리지 않고 꼬박꼬박 나온다. 이쪽 계통에선 나쁜 조건이 아니다. 그렇다고 꿈을 좇는 게 그냥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이든 기회는 한두 번씩 찾아온다. 정우가 평소 꿈꿔왔던 상업영화를 찍기 위해 안정적인 직장을 나온 것도 그렇고, 연기자를 선택한 나도 그렇고, 장편 상업영화에 도전한 감독님도 그렇고, 모두가 딱 한 번만이라도 죽기 전에 해보고 싶었던 것을 하기 위해서다. 비록 실패를 하더라도 후회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런 것이 관객에게 전해졌으면 했다. 그게 내가 이 작품을 선택한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연기 10년차다. 연기자로 살아오면서 생각했던 목표가 분명 있었을 텐데, 되돌아보니 어떤가.

“조금은 느리지만 나름대로 별다른 부침없이 잘 가고 있는 것 같다. 한 번도 (연기를)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적 없다. 애초 연기자로서의 바람은 믿음을 줄 수 있는 배우가 되는 거였다. 이제 한 작품 한 작품 끝내면서 팬이 조금씩 늘어가는 게 소중하고 행복하다. 배우 윤계상으로는 한 50% 온 것 같다. 그래서 ‘영화 잘 봤어요. 재밌어요’라고 말씀해주시는 게 제일 듣기 좋다.”



-같은 가수 출신이라는 점에서 2PM의 황찬성(대윤 역)을 보면 당신이 처음 연기하던 때의 모습이 그려지기도 하겠다.

“그렇다. 그런데 요즘 아이돌 출신 배우들은 (연기) 공부를 해서인지 엄청 잘한다. 내가 3~4년 하고 느꼈던 것을 그들은 이미 가지고 있더라. 부러운 한편으로 그래서 이 친구들이 글로벌 스타가 되고, 한류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다. 하긴 연기면 연기,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못하는 게 없다. 게다가 얼굴도 잘생겼고 똑똑하니 경쟁력이 있을 수밖에 없다. 격세지감이 느껴졌다. 우리는 진짜 밑바닥에서부터 몸으로 때우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아무튼 이런 친구들이 자꾸 나와야 편견도 없어질 것 같다. 찬성이는 여기에 더해 정말 열심히 한다. 그래서 예뻤다.”



-촬영장 분위기가 좋았다고 들었다.

“엄청 재밌었다. 그래선지 다들 현장에 나오면 집에 들어가기 싫어했다. 자기 분량이 끝나도 가지 않았다. 마치 대학교 졸업작품을 만드는 느낌이랄까. 자유롭게 서로의 의견을 제시하고, 배우가 먼저 재촬영을 요구하는 등 누가 감독이고 누가 배우인지 모를 정도였다. 그만큼 캐스팅 조합이 좋았다.”



-상대역인 고준희(은수 역)는 당신이 캐스팅됐다는 점 하나만으로 출연을 결정했다고 들었다. 호흡은 어땠나.

“같은 회사의 같은 팀이었다. 굉장히 친하게 지냈던 동생이고 지금도 세 달에 한 번씩은 연락을 하는 사이다. 그래서 준희에게 시나리오를 준다고 했을 때 매우 좋았다. 호흡은 물론 좋았다. 연인 사이로 나오고 스킨십 장면도 있지만 오히려 민망하지는 않더라. 서로에 대한 이성적인 감정이 아예 없으니까.”(웃음)



-작품선택의 기준은 뭔가.

“내 인생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나리오인지를 먼저 본다. 신기한 건 그때 느끼고 싶고,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매번 나를 찾아왔다. 그래서 내 필모그래피를 보면 그때 내 감정이 어땠는지를 엿볼 수 있다.”



-최근 god로 다시 가수 활동을 재개했다. 연기력도 있으니 뮤지컬에 도전해보는 건 어떤가.

“뮤지컬은 아직 내 실력으로는 무리다. 진짜 모든 것이 월등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게 뮤지컬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난 가수 출신이지만 아직도 무대에 서면 떨린다. 행여 실수라도 하면 어떡하나.”(웃음)



-이 영화로 얻은 게 있다면.

“정말 많이 얻었다. 일단 좋은 사람들을 많이 얻었다. 전까지는 뭔가에 갇혀서 아웃사이더 같은 느낌이었다면, 이 영화를 하면서는 열려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모두가 영화를 위해 열정을 바쳤다. 기존의 나만 잘해야지 하는 건 사라지고 앙상블이라는 것을 더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양보할 땐 양보하는 것도 본인에게나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옳은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은근히 한 방을 기대하는 것 같다.

“솔직히 조금 기대된다. 이전까진 그런 생각이 없었는데 시사회 반응이 엄청 좋으니까. ‘기대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막연히 들었다. 정세 형도 느낌이 왔는지 시사회가 끝나고 ‘됐어, 됐어’라며 얼굴이 상기돼 있었다. 정말 이 영화가 잘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 또한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써서라도 영화가 잘되도록 노력하고 싶다. 감독님이 계속 상업영화를 했으면 좋겠고, 배우들도 다 승승장구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이 담긴 영화이기 때문에 괜객도 좀 애정을 갖고 봐주셨으면 고맙겠다. 물론 영화도 재밌다.”

▨사진=김현수(프리랜서)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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