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소녀 오예리의 톡톡 세상] 유황온천계곡의 추억 日 하코네 ‘오와쿠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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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10-24   |  발행일 2014-10-24 제39면   |  수정 2014-10-24
신비의 우윳빛 물 안개구름 속에 숨어 있었구나
[비행소녀 오예리의 톡톡 세상] 유황온천계곡의 추억 日 하코네 ‘오와쿠다니’
유황온천수가 솟아나는 계곡으로 유명한 일본 하코네의 오와쿠다니 온천수. 마치 우윳빛처럼 뽀얗다.
[비행소녀 오예리의 톡톡 세상] 유황온천계곡의 추억 日 하코네 ‘오와쿠다니’
심산유곡에 형성된 오와쿠다니 유황온천 계곡의 전경. 멀리서 보면 꼭 숯가마 같다.
[비행소녀 오예리의 톡톡 세상] 유황온천계곡의 추억 日 하코네 ‘오와쿠다니’
가족이 오와쿠다니 온천의 명물 검은 계란을 먹고 있다. 작은 사진은 노천 유황온천에서 삶겨 나온 검은 계란.
[비행소녀 오예리의 톡톡 세상] 유황온천계곡의 추억 日 하코네 ‘오와쿠다니’
3천년 전에 형성된 아시노코 호수. 짙게 드리워진 구름 때문에 더없이 적막해보이지만 간혹 오리처럼 오가는 유람선이 생동감을 더해준다.


꾸물꾸물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한 비구름을 품고 있는 잿빛 하늘과는 대조적입니다.

뽀얀 우유 빛깔의 김이 모락모락 솟아나는 계곡물은 무심결에 손이라도 한번 담가 보고 싶을 만큼 신비롭고 매혹적입니다. 초가을을 재촉하는 비에 해발 1천50m의 고지대라는 조합이 더해졌으니 쌀쌀한 기운이 몸 전체를 휘감는 것이 정상일 법도 한데 실은 그게 아닙니다. 주위엔 오히려 몸을 후끈 달아오르게 만드는 후덥지근한 기운이 주위를 집어삼킵니다. 심지어는 계곡의 돌계단을 오르는 필자의 이마에 땀까지 송글송글 맺히게 합니다. 슬그머니 저편에서 바람이 불어오는가 싶더니 습하고 매캐한 냄새가 기습적으로 코를 알싸하게 자극합니다. 첫인상은 참으로 강렬합니다. 이런 산세에는 맑고 상쾌한 공기가 제격이겠지만 여기는 아닙니다. 싶어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에 자연스레 몸을 맡기고 땀이라도 식힐까 했는데 요상하게도 한여름 불쾌지수 높은 수증기를 한데 모아 놓은 듯한 열바람에 코를 찌를 듯 퀴퀴한 달걀 냄새까지 더해진 공기가 마치 한 묶음 선물 세트라도 되는 양 당당하게 바람을 등에 업고 나타납니다. 이렇게 엉뚱하고 생경한 조합을 도대체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하는 걸까요? 그래요, 여기는 산중 온천입니다.

필자는 지금 유황 온천수가 보글보글 솟아나는 계곡으로 유명한 일본 하코네의 ‘오와쿠다니’에 와 있습니다. 하코네 온천으로 료칸 여행을 가는 길에 이곳의 펄펄 끓는 유황 온천물에 삶아 낸 검은 달걀 ‘쿠로 타마고’가 유명하다고 해서 필수 코스로 방문한 겁니다. 도쿄에서 화창하게 고개 내밀던 햇살을 뒤로 하고 두 시간여를 꼬박 달려 마침내 오와쿠다니에 이르는 길 초입으로 야심차게 들어섰건만 아쉽게도 차가 구불구불 굽이진 산길로 접어들자 서서히 굵은 빗방울이 드리우기 시작했습니다. 산세가 깊어지고 지대가 점점 높아질수록 신성하고 영험한 기운이 도사린 듯 구름까지 덩달아 낮게 깔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낯선 여행자에게는 좀처럼 자신의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기를 꺼려하는 것 같았습니다. 산 언덕배기에 위치한 오와쿠다니는 자욱한 안개 구름 속에 잠겼다 또 나타나기를 반복하며 고집스레 제 모습을 감추고서 한참을 그렇게 저항하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햇살이 여유롭게 비추는 전형적인 가을날이 아니라 안개비가 내리는 날 이곳을 찾은 덕분일까요. 오히려 산에 오르는 그 드라이브 길이 마치 예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영험한 세계로 필자를 인도하는 듯, 신비로운 느낌마저 들게 했습니다.

◆ 우윳빛 유황온천수

우산을 펼쳐야 하나 망설이던 차에, 거짓말처럼 비가 멈추고 구름이 걷히기 시작하더니 하늘이 밝아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목적지인 오와쿠다니 계곡 쪽으로 오르는 산길은 여전히 온천에서부터 모락모락 피어나는 수증기로 그 모습을 감추며 베일에 싸여 있습니다. 어찌보면, 멀쩡한 숲속에 불이라도 난 듯한 모습인데요, 연기가 끊임없이 하늘로 피어나는 광경이 생소하면서도 가히 압권입니다. 돌계단으로 오르는 경사는 그리 가파르지 않지만 매캐한 연기를 품은 수증기 때문인지 연신 땀이 송글송글 솟아납니다. 계곡물은 모름지기 맑고 투명하게 그 속을 훤하게 드러내야 제 맛이라고 그 누가 정해두었던가요? 어쩌면 필자의 머릿속에서 당연한 듯 수천번 수만번 그려본 공식이 이 곳에서는 쓰임새를 잃은 해법이 되고 만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근처 기반암은 이곳에서 뿜어져나오는 유독성 황화수소나 아황산 가스를 포함한 수증기 때문인지 보통의 암석과는 다르게 하얗게 변질되어 있습니다. 그 틈새로 흐르는 계곡물은 얼핏 푸른 기운이 도는 불투명한 새하얀 빛깔의 액체였습니다. 마치 깨끗한 물에 흰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모습이랄까요? 신기한 마음에 손이라도 한번 담궈보고 싶지만 잠시도 틈을 주지 않고 솟아나는 수증기의 높은 온도를 미루어 짐작하기에 손을 갖다 대는 것이 조심스럽기만 합니다. 화구에서 저만치 떨어져 졸졸 흐르는 얕은 시냇물에 이르러서야 소심하게 검지 손가락을 한번 가져다 넣어 보는데요, 체온을 감싸고 도는 훨씬 따뜻한 물의 온도가 손끝으로 전해져와 경이로운 마음에 절로 눈이 동그랗게 떠집니다.

◆ 검은 계란

오와쿠다니는 약 3천년 전에 대규모의 수증기 폭발로 생긴 ‘폭렬 화구’라고 하는데요 현재도 끊임없이 그 생명력을 이어가며 활동 중입니다. 그 알 수 없는 지하세계에서의 움직임과 활동으로 인해 이렇게 한번 먹으면 장수한다는 유명한 ‘쿠로 타마고(검은 계란)’로 탄생할 수 있었겠죠. 저 깊숙한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물과 솟아오르는 가스를 보고 있노라면 한편으로는 대자연의 놀라운 힘에 두려운 마음도 일고 자연스레 경외감도 느껴집니다.

드디어 목적지에 올라 검은 빛깔, 딱딱한 옷을 걸쳐 입은 오와쿠다니의 명물, 검은 계란을 마주합니다. 다섯 개들이 한 봉지에 500엔이라니, 달걀 하나에 100엔인 셈이네요. 참을 수 없는 호기심에 압도되어 발걸음은 주저없이 판매대로 향하게 됩니다. 펄펄 끓는 유황 온천물에 잠겨 새카맣게 변신한 딱딱한 껍질을 한겹 벗겨내 봅니다. 의외로 속은 뽀얗습니다. 평소에 보던 말랑말랑한 삶은 달걀과 비슷합니다. 따끈따끈한 달걀이 식을까 싶어 얼른 한입 베어무니 속까지 잘 익은 샛노란 노른자도 나타납니다. 맛 자체는 그렇게 별다른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여기저기 매캐한 연기와 수증기가 솟아나는 산 중턱에서 이렇게 많은 관광객들이 한 자리에서 호호 불어가며 함께 달걀을 먹고 있다는 사실 때문인지 이 검은 달걀의 정체는 독특하고 이색적인 것으로 탈바꿈하고 맙니다.

◆ 아시노코 호수

검은 계란을 두 개나 먹었으니 필자는 이제 틀림없이 장수하는 거겠죠.

가슴속 깊은 곳으로부터 차오르는 강력한 믿음(?)을 갖고 찬찬히 주위를 둘러보니 부글부글 끓는 유황 온천수로부터 잘 익은 달걀을 온천에서 건져내는 작업을 하는 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익숙한 듯한 손놀림으로 유황 성분으로 인해 검게 변한 달걀을 제시간에 맞춰 구조해 냅니다. 이렇게 뽀얀 물 속에서 새카만 달걀이 탄생한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기까지 합니다. 여기저기 분화구와 계곡에서 솟구치는 수증기를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남긴 후 한번 맡으면 결코 잊을 수 없을 만큼 자극적인 유황 가스 냄새를 뒤로 한 채 계곡을 내려왔습니다. 주차장 입구에 보니 캐릭터 왕국인 일본답게 검은 달걀 속에서 환하게 웃음짓고 있는 귀여운 고양이를 형상화한 캐릭터 표지판이 눈에 띕니다. 간단명료하면서도 친근하게 이곳을 소개하고 홍보하기에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이곳에서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는 또 하나의 명물인 달걀이 들어간 노란 아이스크림을 맛보며 이번엔 도겐다이 선착장으로 이동했습니다.

눈 앞에 펼쳐진 거대한 아시노코 호수는 3천년 전 화산 활동으로 생성된 겁니다. 낮게 깔린 구름 때문에 어둑어둑해진 하늘 아래로 펼쳐진 잔잔한 호수의 물결은 또 다른 감탄을 자아냅니다. 날씨가 좀 더 훤하고 밝았다면 이 깊고 청아한 눈동자를 닮은 호수의 정취에 더 깊이 빠져 오래 발이 묶여 버릴 것 같았습니다. 적막한 풍경, 움직이는 것은 호수 위를 그림처럼 떠다니는 한두 척의 배뿐입니다.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안정되는 듯한 정적인 아시노코 호수의 풍경을 바라보며 바쁜 생활 속에서 좀처럼 찾을 수 없었던 여유를 되찾습니다.

외국항공사 승무원 ohyeri@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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