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희망을 품다] 대구여상 심효진·기혜연양

  • 백경열,황인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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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10-27 07:54  |  수정 2014-10-27 07:59  |  발행일 2014-10-27 제15면
왕따 이겨내고 어려운 가정환경 극복해 대기업 사원으로 공무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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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대구여자상업고등학교 한 교실에서 기혜연양과 심효진양이 실습하고 있다(위). 기혜연양(왼쪽)과 심효진양이 파이팅을 외치는 모습. 황인무기자 him7942@yeongnam.com

심효진양
중학교 시절 왕따로 자퇴···검정고시로 중·고 졸업
학창생활 필요하다 생각, 대구여상으로 진학

선생님·친구 격려로 적응

기혜연양
어려운 가정 형편에 정구 선수의 길 포기

고등학교 특성화고로 진학
평일에도 아르바이트하며 교통비·학원비 벌어

취업에 필요한 자격증 8개


열여덟 살 동갑내기 심효진(대구여상 3), 기혜연양(대구여상 3)은 잃어버렸던 희망을 다시 찾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해 온 아이들이다. 절망에 빠져 헤어나기 힘든 순간, 이들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자신을 응원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고, 보란듯이 일어섰다. 두 사람은 최근 입사시험에 나란히 합격했다. 이들의 성공기를 면접 형식을 빌려 소개한다.

◆ 밤이 깊을수록 별은 더욱 빛난다

<2014 지역인재 9급 견습직원 채용시험 최종 면접장>

면접관: 심효진양, 여기 보니까 중학교 때 왕따를 당해 학교를 그만뒀다는 얘기가 있던데요?

심효진: 네. 중학교 1학년 때 친하게 지낸 친구가 다섯명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가장 친했던 친구가 나를 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저에게 말을 걸지 않고 무시했습니다. 다른 친구들도 그 친구의 말만 듣고 저를 피했고,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저의 책임으로 돌렸습니다. 어느 순간, 저는 학교에서 나쁜 아이로 자리 잡아 버렸습니다.

면접관: 많이 힘들었겠네요. 대체 왜 그런거죠? 어떻게 해결하려고 했나요?

심효진: 정말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저에게 뭔가 속상한 일이 있긴 했겠죠. 저는 친구들과 다시 잘 지내고 싶다는 생각에 편지를 여러 통 써서 친구에게 보냈지만 친구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계속 저를 무시했습니다. 욕설이 담긴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했고요. 심지어 점심시간에 화장실에 가서 밥을 먹은 적도 있습니다.

그렇게 친구들은 저를 계속 피했고, 결국 학교생활을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부모님께 자퇴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친구들과의 갈등을 숨기고, 그냥 검정고시를 하면서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고 지식과 경험을 더 쌓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걱정하실 것 같아서요. 선생님께 말씀을 드릴까도 생각해봤지만, 제가 좋아했던 친구들이라 피해를 입는 건 원치 않았습니다.

면접관: 아직 어린 나이인데 사람에게 받은 실망감이 상당했겠어요. 혼자 공부하는 건 어렵지 않았나요?

심효진: 학교를 그만뒀다는 게 못내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제 행동에 후회가 되기도 했고, 사람을 대하는 게 어려워서 밖에 나가기도 힘들 정도였어요. 부모님께 죄송하기도 하고.

사실 검정고시 준비는 쉬운 편이었어요. 집에만 있으니 공부할 시간이 길어서였는지도 모르겠네요(웃음). 계획을 세워 인터넷 강의 등을 통해 어렵지 않게 공부를 계속했죠. 그렇게 제 또래들이 중학교 2학년 일때, 저는 4월에 고입시험에, 8월에는 고졸시험까지 합격했어요.

면접관: 벌써 고등학교 졸업자 신분이군요? 그럼 고등학교에는 다시 왜 들어간거죠?

심효진: 공부할 게 없어지니까 혼자있는 시간에 컴퓨터만 하면서 의미없는 시간을 보내게 되더라고요. 어느 날 어머니께서 집 근처에 있던 고등학교에서 공기업과 대기업 등에 합격자를 냈다는 플래카드를 보셨나봐요. 집에 오셔서는, “그래도 고등학교를 다녀보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권유하셨습니다. 저도 이렇게 허송세월을 하느니 다시 한 번 평범한 학생이 돼 보고 싶었어요.

면접관: 그렇게 대구여자상업고에 들어가게 된 거군요. 친구들과 다시 친하게 지내기가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어땠나요?

심효진: 일종의 트라우마로 남았던 것 같아요. 거의 한 달 넘게 반 친구들과 친해지지 못하고 공부만 했어요. 또 사실, ‘실업계’하면 아이들이 못됐다는 선입견 같은 것도 있었고요. 그런 압박감 때문에 담임선생님께 다시금 자퇴를 하겠다고 말을 꺼내기도 했어요.

하지만 선생님은 여기서 또 물러서면 앞으로도 이런 일이 반복된다며 학교를 떠나는 일을 막으셨어요. 그때 마침 저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친구도 있었어요. 그 친구와 차츰 친해지면서 평범한 여고생으로 학교생활에 재미를 찾아가게 됐어요. 정말 잘한 일인 것 같아요. 저를 믿어주고 응원해 준 가족과 친구들에게 고마운 마음, 잊지 못할 거예요.


◆ 하니까 할 수 있었다.

<2014 A기업 고졸공채 최종 면접장>

면접관: 기혜연양이죠? 자기소개서 보니까 ‘초등학교 때 프로 정구선수를 꿈꿨다’는 말이 있네요?

기혜연: 초등학교 3학년 때 일인데, 친구가 우연히 ‘정구’라는 운동을 하러 간다길래 따라간 게 계기가 됐어요. 당시 전 키가 145㎝나 돼서 꽤 큰 편이었거든요. 코치님께서 저보고도 한번 쳐보라고 하시더니 그 길로 본격적으로 연습하게 됐어요. 잘하게 되니까 재밌더라고요. 6학년이 될 때까지 대구시에서 열리는 각종 대회에서 상도 받고, 전국대회에도 여러 번 나갔어요.

그러다가 중학교 때도 정구부가 있는 학교로 진학하려고 결심했죠. 하지만 그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어요. 지병이 갑자기 악화되셨어요. 부모님은 이미 몇 해 전에 이혼하신 터라 저와 할머니, 그리고 언니와 남동생만 덩그러니 남게 됐어요.

면접관: 많이 힘들었겠네요. 운동부하려면 돈도 많이 들텐데.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기혜연: 결국 정구를 포기해야 할 것 같다고 할머니가 말씀하셨어요. 가정형편도 더욱 어려워진 터라, 열심히 공부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씀하셨죠. 쉽게 포기하긴 힘들었어요. 저녁에 집에도 안 들어가는 식으로 나름 ‘반항’도 하고, 떼쓰기도 했어요. 하지만 운동을 접고, 평범한 학생으로 돌아갔죠.

면접관: 라켓을 놓고 공부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요.

기혜연: 네. 거의 중학교 내내 아무것도 안했어요. 그러다가 고등학교를 선택해야 할 때가 왔고, 저는 또 한 번 갈등하게 됐어요. 일반계, 아니면 특성화고 중에서 선택해야 했죠. 이때 남동생이 눈에 밟혔어요. 변변치 못한 가정형편 속에서 남동생이라도 공부를 제대로 해서 대학을 가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빨리 돈을 벌어서 동생을 뒷바라지 해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할머니께 ‘이번만은 제가 선택한 대로 해 달라’고 말씀드렸죠. 할머니께서는 저도 대학에 진학하길 원하셨지만, 저는 여의치 않을 것만 같았어요. ‘동생은 인문계를 나와서 꼭 좋은 대학 다니게 하고 싶어. 내가 열심히 해서 취업 꼭 하고, 다음에 대학을 가도 될 거야’라는 내용으로 말씀드린 것 같아요. 그렇게 대구여상을 선택했고, 졸업하고나서 곧장 취업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었죠.

면접관: 부모님이 없는 상태에서 공부하는 게 쉬운 게 아니었을텐데. 경제적인 부분도 그렇고.

기혜연: 가정형편 때문에 이미 꿈을 한 번 포기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 목표는 반드시 이루고 싶었습니다. 교통비나 학원비 등 생각보다 많은 돈이 들더라고요. 하지만 할머니께 손을 벌릴 수는 없어, 주말과 평일에도 시간이 날 때마다 음식점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다른 친구들처럼 많은 학원을 다닐 수 없었지만, 다행히 선생님들께서 방과후 수업 등을 마련해 주셔서 자격증을 따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불가피하게 학원을 다녀서 따야 하는 자격증은 학원비가 아깝다는 생각에 하루도 빼먹지 않고 열심히 나가서 빨리 따버렸어요(웃음). 다른 친구들보다 조금 늦긴 했지만, 취업에 필요한 자격증을 8개나 따게 됐어요.

정구를 같이 치던 친구도 이후 운동을 포기했더라고요. 대신 배드민턴을 치고 있었는데, 저도 같이 그 동아리에 들어서 활동을 했죠. 고등학교 생활이 제 인생의 마지막 학교생활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다른 활동도 많이 했어요. 중학교 때부터 관심을 가졌던, 제 또 다른 꿈이었던 청소년에 관한 활동을 하기도 했어요. ‘대구청소년참여위원회’ ‘청소년특별회의’ 등에서 청소년 정책과 관련한 활동을 했습니다.

두 사람은 내년부터 어엿한 직장인으로 살아간다. 혜연양은 최근 국내 대기업의 고졸공채에 최종 합격했고, 효진양 역시 전국에서 25명밖에 뽑지 않는 지역인재 9급 채용시험 회계직렬에 최종 합격해 공무원 생활을 하게 됐다. 환히 웃는 미소 속에서 아이들이 품고 있는 희망이 더욱 빛났다.

백경열기자 bky@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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