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관계 맺는 법 : 별명 부르지 않기, 일상적인 말 건네기

  • 최은지
  • |
  • 입력 2014-10-27 08:03  |  수정 2014-11-06 15:24  |  발행일 2014-10-27 제18면
따돌림 당하는 친구에게 먼저 이름을 불러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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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최은지기자

아동심리학자 피아제에 의하면 아이들은 숨바꼭질이라는 놀이를 통해 홀로 남겨지는 따돌림을 체험하게 되고, 이 따돌림에서 벗어나고자 숨어버린 친구들을 끝까지 추적하고 탐색하여 결국 술래에서 벗어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러한 놀이를 통하여 아이들은 고독과 외로움, 소외와 따돌림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도시의 아이들은 숨바꼭질을 모르거나 숨바꼭질을 해 보지 않은 아이들이 꽤 많습니다. 그 때문일까요? 따돌림을 당한 대부분의 아이들은 따돌림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잘 모르거나, 스스로 따돌림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도 약한 편입니다.


저는 몇 년째 술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술래(가명)가 공부하고 있는 가상의 6학년 교실로 여러분을 초대하고자 합니다.

나술래는 하루 종일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즐거운 일이 있을 때나 슬픈 일이 있을 때에도 소리 내어 웃거나 우는 경우도 없습니다. 쉬는 시간에도 화장실에 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자리에 앉아서 책을 읽거나 혼자 지우개를 만지작거리곤 합니다. 학년 초에 담임선생님께서 나술래에게 발표를 시켜보려고 무척 노력하셨지만 결국 실패하였습니다. 나술래는 공부를 못하는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선생님도 이제는 나술래에게 억지로 말을 시키지 않고 그냥 놔두는 편입니다. 대부분의 반 친구들은 나술래를 그림자 취급하거나, ‘나내숭’이라는 별명을 부르며 무시하거나 놀려대곤 합니다.

저는 가상의 교실을 방문한 여러분들이 몇 년째 술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따돌림을 당하는 나술래를 구출하는 미션을 수행해 주기를 기대하며 여러분에게 나술래 구출작전 두 가지를 제안하고자 합니다.

#구출작전 1: 별명이 아닌 이름 부르기

나술래가 겪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 중에 하나는 오랫동안 친구들이 자신을 그림자 취급했거나 별명을 불러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매우 낮아졌다는 점입니다.

요즘 개그콘서트라는 TV 프로그램 중에 ‘큰세계’라는 코너가 있는데, 뚱뚱한 사람을 ‘돼지’라는 별명을 붙여 비하하거나 놀리는 장면이 자주 나옵니다. 연기자들은 별명을 부르며 놀리고 놀림 당하는 것을 개그 소재로 삼아 천연덕스럽게 연기하고 있고, 방청객이나 시청자들도 이런 장면에 웃고 즐거워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별명을 부르는 것이 모두를 즐겁게 하고 웃게 만드는 일인지 심각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학생은 학교생활에서 친구들이 부르는 별명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으며, 집단따돌림을 당하는 학생 대부분은 유쾌하지 못한 별명을 갖고 있으며, 이름보다는 별명으로 더 자주 불리고 있습니다.

별명은 신체적 특징, 특정한 사건, 이름과 연상되는 단어와 관련지어 붙여진 것으로 진정한 나 자신을 상징하는 단어가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나 자신의 모습을 왜곡하여 보여주게 됩니다. 있는 그대로의 진정한 ‘나’를 상징할 수 있는 단어는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불리어진 이름밖에 없습니다.

6학년 교실에서 고립되어 있는 ‘나술래’가 따돌림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도와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별명이 아닌 이름을 불러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나의 소중함을 알고, 나 자신을 위해 숨어버린 친구를 찾아다닐 힘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나술래는 늘 우리에게 말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고 김춘수 시인이 말하였듯이 말입니다.

나술래를 위하여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하여 ‘별명 부르지 않기 운동(이름 부르기 운동)’을 펼쳐보기 바랍니다.



#구출작전 2: 일상적인 말 건네기

몇 년째 술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술래’는 표현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사실은 매우 외로웠을 것입니다. 20여 명이 함께 생활하는 교실은 늘 시끌벅적하지만, 주위에 사람이 많이 있다고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니니까요. 아무리 주위에 사람이 많이 있어도 나와 너라는 관계를 맺고 소통하지 않는다면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법입니다.

어린왕자(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왕자’의 주인공)가 본 지구의 모습은 메아리만 되돌아오는 삭막한 사막이었듯이 지금 나술래에게 교실은 아무도 살지 않는 사막일 것입니다. 아무런 관계 형성이 되어 있지 않은 사막과 같은 교실에서 나술래는 자신의 존재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생텍쥐페리는 여우를 통해서 외로움을 벗어나고 싶다면 어떤 것을 길들이라고 말하고, ‘길들이는 법’ 즉 ‘관계를 맺는 법’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생텍쥐페리가 말하는 ‘길들이는 법(관계를 맺는 법)’을 실천하기에 앞서서, 나술래를 도와주는 방법으로 보다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일상적인 말 건네기’를 제안합니다.

“연필 좀 빌려 줄래?”

“어제 뭘 했어?”

“오늘 급식에 피자 나온대. 맛있겠지?”

이러한 일상적인 말 건네기는 ‘나-너 관계 맺기’의 출발점입니다. 즉, 일상적인 말 건네기는 상대방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도록 거울 역할을 해 주는 ‘너’가 되어주기 위해 다가가는 첫걸음이며, 나에게도 상대방을 의미 없는 타인이 아닌 의미 있는 ‘너’로 맞이하는 첫걸음이 됩니다.

나술래와 같은 홀로 있는 친구를 보았을 때 그리고 나 자신이 외롭다고 느껴질 때 먼저 상대방에게 다가가서 일상적인 말 건네기를 시도해 보기 바랍니다. 사막이 정원으로 변하는 기적을 체험할 것입니다. 김장수<대구성서초등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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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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