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조영남에게 가기로 된 노래, 10월 아닌 ‘9월의 마지막 밤’이었다

  • 이춘호
  • |
  • 입력 2014-10-31   |  발행일 2014-10-31 제34면   |  수정 2014-10-31
●국민가요 ‘잊혀진 계절’ 秘史
20141031
국풍 81 청년 가요대전에서 ‘바람이려오’로 대상을 받고 그 이듬해 조영남한테 갈 뻔했던 ‘잊혀진 계절’로 국민가수로 등극했다가 개인사로 인해 2003년까지 가요계를 떠났던 이용. 그가 매년 10월 마지막날 하루만은 국민가수로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잊혀진 계절’은 원래는 조영남을 위한 곡이었다.

그런데 이용한테 돌아간다. 이용의 첫 음반 녹음이 끝나고 판이 나오기 직전인 어느 날이었다. 레코드사 사장이 직권으로 조영남한테 갈 곡을 이용의 음반에 끼워넣는다. 이용은 곡이 너무 좋아 타이틀로 올려버린다. 당시 조영남과 이용은 같은 레코드사 소속. 처음에는 10월의 마지막 밤이 아니라 ‘9월의 마지막 밤’이었다. 그런데 음반 발매 시기가 점점 늦어져 결국 발매 시기에 맞춰 가사가 갑자기 10월로 수정된다. 9월로 녹음하다 갑자기 10월로 가사가 변하자 이용도 발음 때문에 적잖이 애를 먹는다.

잊혀진 계절은 한 작사가의 실연담이다.

바로 작사가 박건호다. 시인보다는 작사가로 유명세를 치러왔던 박건호. 1980년 9월 비가 내리는 어느 날 밤이었다. 평소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박건호는 실연의 아픔을 다독이면서 소주 한 병을 다 비우고 있었다. 연인과 헤어지는 마당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만나면 그녀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그녀를 편안하게 보내고 다시는 만나지 않으리란 생각으로 일부러 더 취했다.

비틀거리는 박건호를 차에 태우던 연인은 ‘이 분을 흑석동 종점에 내려주세요’라며 안내양에게 당부한다. 하지만 그는 다음 정거장에서 바로 내려버린다. 안내양의 제지를 뿌리치고 버스가 오던 길로 내달렸다. 동대문에서 창신동으로 가는 중간 지점쯤에서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보였다. 숨도 고르지 않은 채 그녀 앞으로 달려가서 씁쓸한 사랑고백을 했다. 그 한마디를 던지고 오던 길로 다시 뛰어갔다. 그것이 그녀와의 마지막 작별이었다.

이용은 84년에 제작된 영화 ‘잊혀진 계절’에 직접 출연해 60만 관객을 동원한다. 박인희의 ‘모닥불’ 등 숱한 곡을 손만 대면 히트시켜 ‘히트 가사 제조기’로 불렸던 박건호는 2007년 12월9일 58세로 타계했다.

20141031
‘잊혀진 계절’ 이 수록된 가수 이용의 1집 앨범(1982년)

작사가 박건호 失戀史 담아
가사 중 ‘10월의 마지막밤’
진한 페이소스 잘 묻어나

◆잊혀진 계절의 가요심리학

박건호가 만약 노래의 초입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10월의 마지막 밤을’ 대신 ‘~가을의 마지막 밤을’이라고 작사했다면 과연 잊혀진 계절이 ‘시월의 베스트셀러송’이 될 수 있었을까.

가요 전문가들은 곡 자체가 지니는 생명력 외에도 대중이 이 곡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일종의 ‘학습효과’에 주목한다. 특히 10월의 마지막 날이란 가사가 결정적인 ‘최면제’ 구실을 했다. 10월 초순과 중순보다 ‘말일’은 울림과 감성이 더 각별해질 수밖에 없다. 말일만이 가진 독특한 페이소스가 가슴을 마구 두들겨 팬 것이다.

가요심리학적으로 볼 때 가을만큼 실연의 추억을 더욱 절절하고 애절하게 만드는 계절도 없다. 특히 10월31일이면 웬만큼 단풍이 들 시점. ‘우수수’ 정도는 아니고 여기저기서 낙엽이 ‘툭툭’ 떨어지고 있으니 평소 쾌활한 사람도 삶의 덧없음과 옛사랑에 대한 미련이 더욱 증폭되기 마련이다. 그런 심사에 감미롭기 그지없는 피아노 전주와 ‘지금도 생각하고 있어도 10월의 마지막 밤을~’이란 가사가 쏟아지면 모두 ‘시월 나그네’로 휘둘릴 것이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