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대결] 나의 독재자·웨스턴 리벤지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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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10-31   |  발행일 2014-10-31 제42면   |  수정 2014-10-31

나의 독재자 (장르: 드라마 등급: 15세 관람가)
‘김일성 대역’ 세상서 가장 슬픈 악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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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설경구)은 평생을 연극에 몸 담아온 배우다. 하지만 허드렛일과 단역만 전전했던 탓에 지금껏 그가 무대 위에서 내뱉은 대사는 고작 몇 마디가 전부. 그래도 아들에게만큼은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고 싶었던 성근은 무대 위 주인공을 꿈꾸며 오늘도 홍보 포스터 붙이기와 무대 청소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런 그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온다. 1972년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회담 리허설을 위해 김일성의 대역으로 뽑힌 것. 이후 성근은 자신이 김일성이라는 착각에 빠질 만큼 말투부터 제스처 하나까지 필사적으로 역할에 몰입한다. 하지만 남북정상회담은 무산되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야 할 성근은 쉽게 김일성 역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다.

‘나의 독재자’는 러닝타임 중반까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악역을 온 몸으로 받아들인 성근의 모습에 주목한다. 그 점에서 성근은 누구보다 특별한 70년대를 맞았다. 김일성의 대역을 국가와 민족을 위한 위대한 역할 수행이라고 생각하는 한편으로, 늘 아들에게 떳떳하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이 기회를 통해 멋지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이제 세상은 그에게 하나의 무대가 된다. 자신을 지우고 남의 삶을 사는 것을 배우라 말한다면, 그간 반도 채우지 못한 성근은 세상에서 유일한 배역으로 당당히 앞으로 나아갈 자신감과 희망이 생긴 셈이다. 이게 꿈이라면 절대 깨고 싶지 않을 만큼 그에겐 너무나 소중한 기회다.

이 프로젝트의 배후에는 중앙정보부가 있다. 그들은 대사 하나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무명배우 성근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철저히 캐릭터화시킨다. 폭력의 역사, 개인의 희생이 강요되던 시대의 어두웠던 민낯은 그런 성근을 통해 고스란히 투영된다. ‘나의 독재자’는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전에 실제와 같은 리허설을 치렀다’는 기사를 접한 이해준 감독의 호기심에서 출발했다. 전작 ‘천하장사 마돈나’ ‘김씨 표류기’ 등을 통해 기발한 상상력과 연출력을 선보인 바 있는 그는 “모두에게 등을 돌리고 반대편의 논리로 살아야 했던 사람의 마음이 어떤 것일까 궁금했다”며 기획의도를 밝혔다. 그리고 이를 애증의 관계에 놓여있는 부자의 이야기로 확장해 나갔다.

“돈은 곧 목숨”이라고 외치며 등장한 아들 태식(박해일)은 90년대를 열며 영화의 2막을 알린다. 사고친 아버지의 일을 수습하느라 고등학교 연합고사를 볼 수 없었던 태식은 여전히 스스로를 김일성이라 믿는 아버지를 원망하며 집을 떠났다. 이후 다단계 건강보조기구를 판매하며 빚더미에 앉아도 강남에 살며 외제차를 몰며 살아왔을 만큼 속물 근성이 다분한 인물이 됐다. 그가 사채빚을 갚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요양원에 있는 아버지를 20년 만에 찾아온다.

이후 영화는 그런 두 부자의 갈등과 화해의 과정을 따라간다. 아들에게 최고가 되고 싶었던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 때문에 인생이 꼬였다고 생각하는 아들 태식과의 애증의 관계를 1970·90년대 시대상을 관통하며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보여지는 완벽한 시대적 재현은 다소 비현실적인 이 이야기에 강한 생명력을 부여한다. 사실 70·90년대는 아버지와 아들 세대의 충돌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시기다. 경제개발을 위한 본격적인 신호탄이 되었던 70년대가 아버지들의 희생을 필연적으로 요구했다면, 90년대는 그 수혜를 입은 세대가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다. 가치관이 다른 두 세대간의 충돌이 흥미롭게 다가올 수 있었던 이유다.

‘나의 독재자’는 아버지와 아들의 끈끈한 정이라는 보편적 공감대를 기저에 깔고, 두 세대간의 충돌을 웃음이 녹아 있는 감동의 드라마로 풀어간다. 도식적인 전개가 다소 아쉽지만 영화가 소구하려는 의미 전달은 무난해 보인다. 이는 “연기만한 분장이 없다"는 찬사를 들을 만큼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설경구의 존재감에 기인한다. 성근을 통해 보여준 스펙트럼 넓은 연기는 설경구라는 배우의 진가를 새삼 일깨우게 만든다. 아버지에 대한 복잡한 감정과 애증을 지닌 태식 역의 박해일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런 두 사람이 있었기에 시대를 관통하고 세대를 넘어선 이 이야기가 특별하지만 평범한,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로 다가올 수 있었다.


웨스턴 리벤지 (장르: 액션 서부극 등급: 미정)
복수 vs 복수 vs 복수 ‘야만의 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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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 덴마크를 떠나 미국 서부로 온 지 7년 만에 존(매즈 미켈슨)은 가족들을 미국으로 데려오게 된다. 하지만 가족들과의 행복한 미래를 꿈꿀 새도 없이 마차에 함께 탄 악당들에 의해 아내와 아들을 잃는 비극을 맞는다. 어린 아들은 차가운 바닥에서 죽음을 맞이했고, 사랑스러운 아내는 겁탈당한 채 살해됐다. 분노에 찬 존은 즉시 악당을 찾아 복수한다. 문제는 그 악당이 마을의 절대 권력자 델라루(제프리 딘 모건)의 동생이라는 사실. 델라루는 동생을 죽인 범인을 데리고 오라며 마을 사람들을 위협하고, 그의 무자비한 공포 정치를 두려워한 사람들에 의해 결국 존은 붙잡힌다.

‘웨스턴 리벤지’는 정통 서부극을 표방한다. 서부의 거칠고 황량한 풍광을 배경으로 돈, 사랑, 복수 등을 키워드로 삼았다. 할리우드조차 관심을 가지지 않는 장르이자, 만들어진다 해도 코믹과 SF 등으로의 다양한 변주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 비쳐보면 ‘웨스턴 리벤지’는 분명 흥미로운 결과물이다. 게다가 연출은 도그마 선언의 대표 주자이기도 한 덴마크 출신의 크리스티안 레브링 감독이 맡았다. “서부 영화를 만드는 게 5살 때부터 간직해 온 꿈이었다”는 그는 이 영화를 “어린 시절 상상의 세계를 되살린 결과물이며, 정통 미국 서부극에 대한 헌정”이라고 밝혔다.

영화는 존 포드와 세르지오 레오네의 장르적 스타일을 오마주함과 동시에 좀 더 서부라는 세계의 야만성에 주목한다. 그 과정에서 ‘복수’는 이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로 작용한다. 가족을 잃은 존의 분노와 복수, 동생을 잃은 델라루의 복수와 악행이 서로 맞물리며 러닝타임을 채워간다. 사실 영화적 소재와 이야기가 한정된 서부극에서 선과 악을 명확히 구분지을 수 있는 복수극은 이야기를 가장 효율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장치다.

서부가 죽음과 폭력의 공간으로 주로 묘사돼 왔던 이유다. ‘웨스턴 리벤지’가 보여주는 서부 역시 일말의 동정심과 자비, 정의와 구원은 찾아볼 수 없는 지옥과 같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아무렇지 않게 남을 희생시키는 냉혹하고 잔인한 세계다. 동생을 죽인 범인이 밝혀질 때까지 두명씩 죽이겠다는 델라루의 협박에 마을의 시장과 보안관은 앞장서서 노파와 앉은뱅이를 그에게 제물로 바친다. 게다가 델라루는 보호비까지 두 배로 올리겠다고 선언한다. 기시감이 든다. 돈을 수탈하고 거리낌 없이 사람들을 죽이는 델라루의 모습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전쟁까지 불사하고 약한 자를 핍박하는 현재의 모습을 노골적으로 은유한다.

마델린(에바 그린)은 그런 마초적인 남성 사이에서 또 다른 복수와 자유를 꿈꾸는 여인으로 위치한다. 인디언들에 의해 목소리를 잃고 존에 의해 남편을 잃어 버렸지만, 무엇보다 그녀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건 잔악무도한 델라루로 인해 자유를 잃게 된 것이다. 이제 마델린까지 이들과 얽혀들면서 복수극은 속도를 내며 내달린다. 화려하진 않지만 정통과 현대적 감각이 적절히 녹아있는 총격신은 깔끔하고, 드넓은 황야에서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은 서부극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킬 만큼 강렬하다.

‘웨스턴 리벤지’의 완성도에는 폭 넓은 연기력을 지닌 배우들의 열연도 한몫했다. 특히 주목할 건 존을 연기한 매즈 미켈슨이다. ‘헌트’로 제65회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바 있는 그는 소중한 가족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과 슬픔, 악당에 대한 분노와 절망 등 다층적인 감정이 뒤섞인 내면연기를 절제된 카리스마로 훌륭히 소화해냈다. 가장 미국적인 장르를 자신만의 언어로 완성시킨 스타일리시한 서부극의 탄생이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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