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샘의 밑줄 쫙] 낮 과 밤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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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10-31   |  발행일 2014-10-31 제43면   |  수정 2014-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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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출장을 갔다가 새벽 3시쯤 집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도로는 한산하고 거리에 사람들의 모습도 거의 찾아볼 수 없더군요. 늘 사람이 북적이는 곳에서 생활하다 보니 아주 오랜만에 느끼는 고요함이구나 싶었습니다.

네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옆 차로에서 한 차량이 멈춰서는 듯하다가 ‘쌩’ 하고 다시 출발하더군요. 신호등을 보니 아직 빨간 불이었습니다. 급한 일이 있나 보다 생각하고 있는데 제 뒤에 있는 한 차량이 경적을 울렸습니다. 그래서 다시 신호등을 보니 여전히 빨간불이었습니다. 그 순간 뒤에 있던 차량이 차로를 바꾸고는 그대로 네거리를 지나가버리더군요. 집으로 가는 길에 다른 네거리뿐만 아니라 횡단보도 신호에도 빨간 불에 차들이 그냥 지나가는 게 꽤 보이더군요. 새벽에 차량을 운전할 일이 드물다 보니 당황스러웠지만 밤에는 신호를 지키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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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중에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도로를 무단횡단하는 사람, 굉음을 내며 달리는 오토바이, 대로변 가로수에 노상방뇨하는 사람 등 낮에는 보기 드문 모습들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밤과 낮의 모습이 아주 많이 다른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했습니다. 낮에는 질서정연하던 도시가 밤이 되니 이렇게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걸 보면서 ‘만약 우리가 만들어놓은 규범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연히 무질서해지고 힘이 있는 자가 많은 것을 누리고 살아가겠죠. 질서와 질서가 만나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것이고 질서와 무질서가 만나면 질서가 무질서에게 양보를 하며 조금은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지만 그래도 지금처럼 세상은 돌아갈 것이고 무질서와 무질서가 만나면 그야말로 혼란 그 자체겠죠. 네거리 모습만 봐도 신호 위반하는 차량 두 대가 만나면 당연히 큰 사고가 나는 것처럼 말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만든 규범 때문에 불편하기도하고 억울하기도 할 때가 있지만 그런 규범이 모두 사라진다면 우리는 훨씬 더 큰 불편과 억울함을 당해야 할 것입니다. 저도 가끔씩 속도위반 딱지를 받을 때면 “이런 것까지 나라에서 통제를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내가 납부하는 범칙금이 나의 안전을 지켜주는 대가라고 생각하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더군요. 게다가 위반을 하지 않는다면 그런 비용도 없을 테죠. 지금 같은 밤의 모습이 계속 된다면 아마도 낮처럼 밤에도 우리의 자율성을 통제하는 그런 규범들이 생겨나게 되겠죠. 내가 자유를 누리고 싶다면 타인의 자유도 존중해주겠다는 생각이 우리 사회를 더욱 행복하게 할 것입니다.

방송인·대경대 방송MC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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