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피플] 조해현 대구지방법원장

  • 최수경 황인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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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11-01   |  발행일 2014-11-01 제3면   |  수정 2014-11-01
“자유로운 의사소통 거친 국민 법감정은 재판서 중요한 판단 요소”
20141101
부드러운 소통의 리더십으로 법원의 문턱을 낮춘 조해현 대구지방법원장이 집무실에서 밝게 웃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황인무기자 him7942@yeongnam.com

‘Homo proponit, sed Deus disponit(사람은 뜻을 둘 뿐 하느님이 이룬다).’

이는 라틴어 경구다. 조해현 대구지방법원장(53)은 이 구절을 항상 가슴 깊이 새긴다. 종교적 신앙에 기반을 둔 이 내용에 조 법원장은 겸손을 담았다. 그래서일까. 항상 법관 특유의 원칙주의를 중시하면서도 낮은 자세를 유지하고 유연한 사고를 잃지 않는다. 90명의 후배 판사들과 민원인을 대하는 동네슈퍼 아저씨처럼 넉넉한 미소는 이미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지 오래다. 하지만 후배 판사가 급한 마음에 법정 넥타이가 아닌 평상복 넥타이를 매고 법정으로 향할 때는 현장에서 지적해 법관의 자세를 다시금 가다듬게 하는 꼼꼼함도 겸비하고 있다.

내 마음 속 '김홍섭 판사'
"겸손의 미덕을 실천하신 분…
법관은 끊임없는 자기점검과
상호존중의 자세 잊지 말아야"
'말의 성찬'으로 끝나지 않고
소통·행동하는 법조인상 강조

 

"10년 만에 폐지된 지역법관제
업무공백 등 부작용 최소화 위해
법관 전보 점진적으로 진행해야"

 

취임 8개월… 그리고 변화
5월부터 '찾아가는 법정' 운영
현장 답사하고 민원인 편의 제공
장애인사법지원단 전국 첫 위촉
법정언행 개선 위해 방청 확대도



조 법원장이 대구지법 수장이 된 지 8개월이 지났다. 부드러운 소통의 리더십으로 법원은 조금씩 변화의 길을 걷고 있다. 하루 평균 3천여명이 드나드는 법원 문턱도 낮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는 법원의 권위와는 별개의 사안이다.

법원 수장이지만 고생하는 후배 판사와 직원을 뒤로하고 자신이 부각되는 것을 극구 원치 않던 조 법원장은 부임 후 수차례 언론 인터뷰 요청을 받았지만, 한사코 사양해왔다. 그럴수록 기자의 호기심을 더 자극했다. 삼고초려 끝에 인터뷰 승낙을 받고 지난달 29일 오후 법원장 집무실로 향했다.

다소 어색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그의 미소 트레이드 마크에 대해 물었다. 역시나 미소로 화답했다. 그냥 던지는 미소는 아니었다. 나름의 철학이 배어 있었다.

조 법원장은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생각하면 미소가 절로 나온다”고 대답했다. 이 말은 영어 ‘Thank(감사하다)’와 ‘Think(생각하다)’의 모음(a와 i) 순서에서 착안한 것이다. 모음순서가 a가 i보다 앞서는 것처럼, 감사하는 마음을 먼저 가진 후 생각해야 한다는 것. 감사하는 마음이 곧바로 미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논리다.

“틈틈이 독서를 하는 과정에서 알게 됐다”며 그는 “심장의 전기파가 뇌의 전기파보다 60배나 강해 심장에서 뇌로 가는 정보량이 훨씬 많다”고 말했다. 대면을 하면 복잡한 사안이 더 쉽게 해결되고, 마음을 연결하는 소통도 움틀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인터뷰 분위기가 어느 정도 무르익자 최근 세월호 참사와 칠곡 계모 아동학대 사건 등 국민 법감정이 개입되기 쉬운 사건에 대한 입장이 어떤지 넌지시 물었다. 재판이 진행 중이어서 다소 곤혹스러울 순 있지만, 법관 수장으로서의 생각이 궁금했다.

그는 “국민 법감정이 일시적, 감정적이라면 재판 반영은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건전하게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통해 형성된 지속적인 법감정은 재판에서도 중요한 규범적 판단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연히 이러한 사회인식변화를 반영하기 위해선 법관의 양형감각도 변화될 필요가 있다는 것으로 해석됐다.

그는 “지난 7월 개최된 전국 형사법관 포럼에서 이 문제가 비중 있게 논의돼 그 결과를 재판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소개했다. 온 국민을 공분케 한 세월호 사고에 대해선 “법의 적용을 통해 공동체 안전을 확보하고, 사회의 안정과 평화를 지켜나가는 것도 사법의 중요한 사명 중 하나이다. 이번처럼 대규모 인명피해가 유발된 범죄에 대해선 국민이 체감하는 무게에 대해 깊이 고민해 합리적이고 적정한 양형이 내려지도록 진지하게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뜨거운 감자로 대두된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3년제)과 사법시험 존치(存置) 문제에 대해선 “로스쿨에 대해 일각에서 고비용, 입시의 공정성, 변호사 수의 적정성 문제 등을 제기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국내 로스쿨이 상당히 미래지향적인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 미래세대의 시민들이 가져야 할 다양한 법적 소양을 제공하기 위한 인재양성 제도라는 큰 틀에서 논의돼야 한다”고 다소 원칙적 입장을 견지했다. 기본적으로 법률서비스의 저변확대를 위해 원칙과 룰이 지배하는 사회로 나가기 위한 제도적 기반이 될 수 있고, 향후 어학능력과 다양한 법률지식을 갖춘 국제적 역량을 지닌 변호사들이 많이 배출돼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어 “로스쿨제도는 이미 시행되고 있고, 지금은 여기(로스쿨)에 집중하는 게 맞다. 사시와 로스쿨이 병행하는 지금은 하나의 과도기로 봐야 한다. 다소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로스쿨로의 일원화가 바람직하다”고 진단했다.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의 일당 5억원짜리 ‘황제노역’ 판결 영향으로 지역법관제(향판)가 시행 10년 만에 종지부를 찍은 것에 대해 법조계 안팎에서는 아직도 향판의 장점을 살릴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계속 나온다. 대법원의 개선안에 따라 한 지역에서 7년(최장) 근무하거나 상위보직으로 승진하는 법관을 내년부터 의무적으로 타 지역에서 근무하게 하면 판사들의 연속적인 업무에 일시적인 공백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이에 대해 그는 “법관 개인의 입장에서 볼 때 주거안정은 자신의 가정생활과 직무를 계획성 있게 꾸려나갈 수 있는 바탕이 된다. 선진국에서도 법관의 전보를 가급적 줄이고 있는 게 바로 이 때문”이라며 “다만, 한 곳에 오래 머물게 되는 데서 문제점이 계속 지적되고 있는 이상 이 제도를 그대로 유지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도 기존 지역법관제의 장점을 살려나갈 필요가 있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새로운 제도하에서는 가능한 한 법관의 전보를 점진적으로 진행해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운영해야 할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상고법원이 서울에만 생기는 것에 일부 지방변호사들이 반대를 하는 것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상고법원이 제도상 단일 법원이 되는 것은 맞다고 본다. 다만 최소한 고등법원 관할하에서는 한 곳씩 두자는 의견은 지역 민원인의 이용 접근성을 감안하면 비중 있게 논의될 필요는 있을 것 같다”고 했다.

2008년 전국 처음으로 대구법원에서 시행된 국민참여 재판제도에 대해선 법원 내부적으로도 괜찮은 평가가 내려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피고인과 배심원들이 국민참여 재판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안다. 재판부도 배심원들의 유·무죄 평결 및 양형의견을 최대한 존중해 판결하는 성향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사법부의 신뢰회복과 국민과의 소통에 큰 도움이 된다는 점은 높이 평가돼야 한다”며 “최근 국정감사에서 오히려 상소율이 높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대부분 사안 자체가 중하고, 형사사건의 경우 실형이 선고되면 대부분 상소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화제를 돌려봤다. 최근 조금씩 변하는 대구지법 분위기에 대한 것이다. 개혁이라면 개혁이다. 조 법원장 부임 후 지난 5월부터 실시하고 있는 ‘찾아가는 법정’이 대표적이다. 사건현장을 직접 답사하고, 민원인의 법률서비스 이용에 편의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또 지난 7월 장애인사법지원단을 전국에서 처음 위촉했다. 그는 “사회적 약자를 어떻게 대할지는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가 부축해주는 사람이 결국 우리 삶을 지탱해주는 기둥이 된다. 구체적 실천이 아니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소위 ‘막말판사’ 사건 등과 연계해 바람직한 법정언행을 위해 무기명 상시 법정설문조사와 전문가에 의한 1:1 법정언행 컨설팅, 법정방청 확대 등을 실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26년간 판사로 재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판결이 있느냐고 대뜸 물었다. 그러자 한참 생각에 잠겼다.

“부산고법 재직 시 맡았던 손해배상청구사건이 떠오른다. 운전 중인 20대 남성이 편도 1차로인 좁은 곡선도로에서 전주를 들이받고 사망한 사건이다. 그 사건은 1심에서 기각됐다. 물론 사망자가 과속의 책임은 있지만 전주가 가드레일 내에 있었던 탓에 설치상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됐다.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재판 후 유족들이 한동안 법정을 떠나지 않고 눈물을 훔치는 걸 봤다. 그 사건 이후로 사건은 당사자 입장에서 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가장 존경하는 법조인이 있느냐는 질문에 조 법원장은 이른바 ‘사도법관’으로 불리는 고(故) 김홍섭 판사의 이름을 거명했다. “인간은 항상 불완전한 존재이고, 겸손해야 한다는 미덕을 몸소 실천하신 분이다. 직무상의 엄격함보다는 인간에 대해 먼저 이해하려는 그분의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끊임없는 자기점검과 상호존중의 정신으로 품격 있는 법정이 되도록 힘쓰겠다”는 조 법원장은 ‘말의 성찬’으로 끝나지 않고 행동하는 법조인상을 시종일관 강조했다. 그의 미소에는 상대방과 끊임없이 만나고 소통하고 싶다는 의지가 투영돼 있는 듯 보였다.

최수경기자 justone@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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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소통의 리더십으로 법원의 문턱을 낮춘 조해현 대구지방법원장이 집무실에서 밝게 웃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황인무기자 him7942@yeongnam.com
◇ 조해현 법원장은

▲대구 출생, 사법고시 24회. 사법연수원 14기

▲대봉초등-대륜중-경북고-서울대 법대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판사,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 대구지방법원 상주지원 판사, 대구지방법원 판사, 대구고등법원 판사, 서울고등법원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수원지방법원 부장판사,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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