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에 의존한 성장, 파멸을 부른다

  • 이효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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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11-01   |  발행일 2014-11-01 제16면   |  수정 2014-11-01
빚에 의존한 성장, 파멸을 부른다

“미국의 경제침체기인 2007년부터 2009년 사이 8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400만 채 이상의 주택이 압류됐다. 이는 가계부채 급증이 초래한 일이다.”

미국의 차세대 경제학자 아티프 미안 프린스턴대 교수와 아미르 수피 시카고대 부스 경영대학원 교수가 가계부채의 위험성을 경고한 ‘빚으로 지은 집’이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두 사람은 국제통화기금이 선정한 45세 이하 차세대 경제학자 25인에 토마 피케티와 함께 선정됐다. 또 이 책은 파이낸셜타임스의 올해의 책 최종 후보작이기도 하다.

빚에 의존한 성장, 파멸을 부른다
아티프 미안·아미르 수피 지음/ 박기영 옮김/ 열린책들/ 318쪽/ 1만5천원

저자들이 이 책에서 주장하는 바는 명확하다. 한마디로 가계 부채에 의존한 성장은 매우 위험하다는 것이다. 가계 부채의 급증은 소비 지출을 감소시키고, 이는 장기불황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황은 가진 것이 적은 사람들에게 가장 큰 타격을 입히고,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미국의 대침체기 동안 집의 가치는 5.5조달러나 떨어졌다. 주택 소유자들의 순자산이 엄청나게 감소한 것을 보여준다.

주목할 것은 자산의 소유 정도에 따라 큰 차이가 생긴다는 점이다. 즉, 하위 20%에 해당하는 주택 소유자들은 자산의 80%가 대출이었고, 이들은 집 말고 가진 자산이 거의 없었다. 반면, 상위 20%는 전체 자산 중 금융자산이 80%에 육박했다. 부채는 전체의 7%에 불과했다. 저자들은 이 같은 상반된 결과에 대해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고 말한다. 저소득층의 부채는 고소득층의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심각한 것은 이러한 가계 부채는 빚을 진 가계의 자산에 타격을 입히는 데 그치지 않고 경제시스템을 돌고 돌아 결국 모두에게 손실을 입힌다는 점이다.

가계부채의 위험성에 대해 저자들이 제시한 실증적 증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심각한 경기침체 이전엔 거의 언제나 가계부채 증가가 선행했다. 둘째, 주택자산 가격 급락의 손실은 저소득층에 더욱 피해를 입힌다. 그 결과 양극화가 심화된다. 셋째, 가계 지출의 감소는 주택 관련 자산의 감소에 따른 가계부채의 실질 증가와 깊게 관련된다. 넷째, 그로 인한 손실은 빚이 많은 가계에 집중된다.

빚에 의존한 성장, 파멸을 부른다

그렇다면 가계부채로 인한 악순환을 어떻게 끝낼 수 있을까. 답은 가계부채를 줄이는 것이다. 금융시스템이 융통성 없는 채무계약 형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예를 들면, 채권자인 은행과 채무자인 가계 모두 물가 등 경제상황 변화에 따른 책임을 공유하는 새로운 형태의 모기지계약, 즉 ‘책임분담모기지’를 제안한다. 채무 계약은 돈을 빌려준 쪽도 위험과 책임의 일부를 나눠 가지는 주식의 형태에 가까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미국경제의 분석에 기반해 가계부채의 위험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주장이 우리 경제에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우선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이론적 잣대가 될 수 있다. 가계부채의 부담을 높일 수 있는 경기부양책의 위험성에 대한 주의를 환기한다는 점에서 정책 정당성 논쟁의 단초를 제공한다.

국내 가계 부채도 1천조를 넘어섰다. 한편에서는 가계부채가 한국경제를 파탄 나게 할 폭탄의 뇌관이라며 우려하고 있지만, 여전히 다른 한편에선 아직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고 말한다. 아무튼 한국 경제가 저자들의 권고와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장기 침제의 늪이 우리 앞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보다 보수적인 기준으로 가계 부채를 관리해야 할 때가 왔다는 점을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이효설기자 hoba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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