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범물동 ‘골안골 사골곰탕’ 김평국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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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11-07   |  발행일 2014-11-07 제41면   |  수정 2014-11-07
육개장 도시 대구서 ‘곰탕의 반란’ 꿈꾸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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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곰탕아저씨로 살고 있는 골안골 사골곰탕의 김평국 사장. 20여년 이어오던 돼지고기집은 사위에게 물려주고 5년전부터 대한민국 최고의 진국 곰탕을 재현하려고 아궁이 앞에서 직접 장작불을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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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에선 구하기 힘든 한우황소사골로 만든 사골곰탕. 물·굳기름을 잘 제거해 농밀하면서도 맑은 기운이 돋보인다.

‘곰탕 아저씨’.

그는 대구시 수성구 범물동 진밭골 초입에서 자기 꿈을 반죽하고 산다. ‘골안골’로도 불리는 진밭골은 요즘 순환도로까지 뚫려 예전과 달리 도회지풍을 갖게 됐다. 20여년전만 해도 전형적인 근교 산의 기운을 갖고 있었다.

범물동 동쪽 끝자락에서 골안골이란 사골곰탕 겸 숯불구이집을 사위와 함께 꾸려가고 있다. 지난 9월초 그는 자신이 20여년 꾸려온 고기 파트를 사위에게 넘겨주고 본인은 곰탕에 올인하겠다고 선언했다.

여러모로 봐도 그는 식당주 같지 않았다. 스콧 니어링 버전의 ‘숲속 오두막집’ 유전자를 갖고 있다. 학구적이고 발명적이고 일견 자연주의적 성격이다. 돈에 집착하지 않고 자신이 믿을 수 없는 음식을 절대 팔지 못한다. 그는 우선적으로 임차료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식당을 차릴 부지까지 구입했다. 그동안 돼지와 쇠고기의 본질에 대해 공부를 했다. 마지막으로 육개장의 도시인 대구에 꿈의 곰탕을 만들고 싶다는 결심을 5년전에 한다. 이제 곰탕의 본질에 조금씩 다가서고 있다.


20년 해온 숯불구이 일
사위에게 바통터치
마지막으로 곰탕에 올인
설렁탕의 사골·마구리뼈
곰탕의 소양·사태 등 골라
김평국標 ‘사골곰탕’으로


◆ 한때 낚시광이었다

대구에서 태어나 대구상고를 졸업했다.

졸업 후 모 기계 제작 업체에서 회계를 담당했다. 35세 때 나와서 이현공단에서 <주>상명을 오픈한다. 기계부품을 만드는 회사였다. 3년 후 진밭골 입구에 식당을 차렸다. 1995년 2월이다. 자기 자금이 없이 회사를 운영해보니 투자금이 회수되어 나오는 게 늦고 해서 자칫 집까지도 날릴까 싶어 식당을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식당의 ‘식’자도 모르는 처지였다.

물론 요리에 대한 기본기는 있었다. 낚시광이라서 자연스럽게 생선 관련 요리를 즐겼다. 국내 바다낚시계에선 좀 알아준다. 감성돔 전유동 흘림낚시는 국내에서도 실력파로 인정을 받는다. 낚시 관련 특허도 낸다. ‘초릿대 슬라이드’, 공구통 안에 불이 들어오는 ‘붐붐박스’ 등 낚시 관련 용품 5종의 특허를 얻어내기도 한다. 87년에 출시한 초릿대 슬라이드는 제법 인기를 끌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투잡으로 식당도 했다.

공장은 자기 길이 아니었다. 가끔씩 괜찮다 싶은 식당의 메뉴를 먹어도 속으로 ‘내가 하면 더 잘할텐데’란 오기도 생겼다. 식당은 제2의 삶의 돌파구였다.

고기를 만지는 불알친구한테 한수 배운다. 돼지고기가 대구에선 가장 무난한 메뉴였다. 대중성 때문에 돼지고기에 손을 댄다. 양념돼지갈비, 생목살(꽃목살), 삼겹살, 항정살 등을 냈다. ‘골안골 불돼지’로 이름을 냈다. 양념갈비로 유명했는데 대원숯불, 미정, 서민 등의 뒤를 이었다. 그는 훗날 벌집삼겹살 같이 고기에 칼집을 내는 걸로 특화를 시켰다. 당시 칼집넣기는 보통 양념돼지갈비에 국한됐다. 생각을 해보니 생고기도 양면 칼집을 주면 더 맛있을 것 같았다. 그는 칼금삼겹살을 주도했다. 기술이 좋았다. 당겨도 떨어지지 않고 그물처럼 펴지도록 했다.

초창기엔 이 식당 근처에 다른 식당이 없었다. 바로 옆은 범물동 카페골목이었다. 오픈 할 때 근처에 우방미진, 현대청림 아파트가 생겼다.

그는 소규모 도축자보다 위생이 잘 돼 있는 브랜드 고기를 선호했다. 소규모 도축업자의 고기는 품질이 들쭉날쭉하고 고기도 덜 위생적이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비싸도 대기업 브랜드를 사용했다.

일반적으로 돼지 생고기는 소금장에 찍어먹는다. 그는 고추냉이 간장소스를 사용했다. 참기름장을 내지 않았다.

핵심은 재료였다. 사실 고기 숙성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유통과정에 다소 숙성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3정 정신(정질·정량·정성)을 고집했다. ‘질을 속이지 않고 양을 속이지 않고 최선을 다한다’가 사훈이었다. 항상 양심과의 싸움이었다. 보여주기 위한 쇼 같은 걸 하고 싶지 않았다. 마케팅정신은 제로였다.

겉절이 소스를 개발했다. 멸치젓갈을 사용했다, 과일과 액젓 등을 넣었다. 배우지도 기술전수도 받지 않았다. 시행착오를 믿었다. 실험하느라 내버린 고기도 엄청나다. 너무 달아도 안되고 너무 자극적이어서도 안된다. 돼지갈비 양념도 20가지 넘는 식재료를 갖고 만들었다. 처음에는 간장과 물의 비율을 몰라서 무작정 실험할 수밖에 없었다. 소스 전수료가 500만원이었다. 그런 전문가를 만나면서 속으로 ‘나는 이렇게 해선 안되겠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시행착오만이 스승이었다. 소스의 맛이 15번 정도 바뀌었다.



◆ 곰탕 이야기

아무리 생각해봐도 한식의 첫단추는 곰탕일 것 같았다.

그런데 만드는 사람마다 레시피가 달랐다. 설렁탕과 곰탕의 차이를 알기 위해 여러 문헌도 뒤적거렸다. 일단 좋은 뼈를 확보해야 하는데 그걸 갈비집 친구 덕분에 마구리뼈(갈비뼈 연골)를 얻을 수 있었다.

5년전부터 김평국표 곰탕 개발에 나선다.

마구리뼈와 사골도 사고 스지(힘줄)를 넣어 무작정 가스불에서 끓여봤다. 손님한테 내니깐 나름 좋아했다. 그냥 서비스로 곰탕을 냈다.

일단 곰탕집 순례를 해봤다. 대다수 쇠머리와 잡뼈를 무분별하게 넣는 무늬만 곰탕이었다. 온갖 종류의 뼈, 소양과 내장, 힘줄 등 각종 특수부위가 가진 맛의 다양한 스펙트럼에 대해 공부를 해야만 했다. 각 재료의 황금비율을 찾아야 했다. 설렁탕과 곰탕의 장점만 뽑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설정한 게 ‘사골곰탕’이었다. 설렁탕에 들어가는 뼈 중 사골과 마구리뼈만 선택했다. 쇠머리와 잡뼈를 너무 많이 동원하면 육수가 탁해지고 잡내가 난다. 설렁탕에선 뼈, 전통 곰탕에선 소양과 사태와 힘줄, 양지와 양지머리를 골랐다.

사태는 콜라겐 심이 들어가 있지만 기름은 없다. 쇠고깃국에 들어가는 양지는 구워서 먹으면 너무 질겨 그냥 먹을 수 없어 끓여 먹는데 그 살점 속에 기름층이 많아 좋은 맛을 만든다.

가스불로 고아보니 그가 원하는 육수가 안 나왔다. 그냥 맹맹한 맛이었다. 연탄불에도 고아봤다. 가스불보다 몇 배 더 묵직한 육수가 나왔지만 향에 문제가 있었다. 역시 가마솥이 딱이었다. 장작불이 솥에 골고루 번져 육수가 골고루 끓었다. 불이 완벽하게 전달돼 육수가 야물어지고 찰졌다. 심플하면서 깊었다. 모르긴 해도 가마솥의 철분이 영향을 준 것 같다.

1년간 기본기를 다졌다. 3년전 고깃집을 리모델링을 하면서 별실에 가마솥 두 개를 놓았다. 하나는 소 여물 끓이던 가마솥이었다.



◆ 진국 만드는 과정

한우황소 사골과 마구리뼈를 1대 1로 준비해 찬물에서 12시간 핏물을 뺀다. 이때 물을 4번 정도 바꾼다. 그냥 끓는 물에 담그는 것만으로는 핏물이 잘 안 빠진다. 물은 버리고 남은 뼈는 가스 가마솥에서 20여분 삶아 마지막 남은 핏물을 제거하면서 잡내를 말끔히 없애준다. 그 뼈를 흐르는 물에 2~3번 헹궈준다. 가마솥에 뼈를 넣고 물을 가마솥의 90% 채워 12시간 끓인다. 육수는 250인분에서 80인분으로 줄어든다. 뼈를 건져내고 그 육수를 망에 걸러서 재탕통에 넣는다. 나머지 12시간은 연탄불에서 고아낸다. 그렇게 재탕을 통해 160인분을 만든다.

이게 끝이 아니다. 가스가마솥에서 사태·스지·양지를 3시간 남짓, 소양은 별도로 3시간 남짓 끓인다. 이 국물이 40인분. 다 합치면 200인분이 된다. 이걸 가스가마솥에서 50%를 농축시켜 물에 넣고 식힌다.

이 과정에 구름처럼 피어나는 물기름을 다 걷어낸다. 식으면서 나오는 마지막 굳기름도 걷어낸다. 사금 같은 육수를 얻어낸다. 48시간에 평균 100인분이 탄생한다. 이 과정엔 리어카 두 대 반 정도의 참나무 등이 필요하다. 물론 연골까지 녹아버려 아교처럼 끈적거린다.

뼈만 고아 만든 육수는 별다른 맛이 없다. 소양 등을 삶아 낸 육수를 섞어야 진미가 느껴진다. 뼈와 살에 자체 나트륨 성분이 있어 별도로 소금을 안 넣어도 저절로 간이 맞다.

곰탕은 주인의 골병을 먹고 태어나는 것 같다. 그가 한마디 던진다.

“철학과 진실이 없으면 식당주는 살인자가 된다.” (053) 781-3476.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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