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서 싱글맘 대형마트 계산원 연기한 문정희

  • 윤용섭
  • |
  • 입력 2014-11-14   |  발행일 2014-11-14 제37면   |  수정 2014-11-14
“나도 한땐 乙…촬영 때 스스로 최면 걸었죠, ‘비정규직 노동자’라고”
20141114


영화 ‘카트’는
甲-乙의 최전선 대형마트 무대
삶 위해 투쟁하는 사회적 乙들
甲의 입장도 함께 펼쳐 보이며
대한민국 냉엄한 현실 담아내

자녀 없는데 리얼한 모성애 연기
경험 안해봤지만 ‘상상력으로’
결혼 후 일의 연속, 아이 없어
내년에 마흔, 더 미룰 수 없어

문정희 도도할 것이다?
유쾌한 성격…에너제틱한 여자
파이팅 넘치고 리더십도 있어
때론 선봉에 서는 것도 좋아해

‘카트’의 혜미는 대형마트에서 계산원으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다. 이혼 후 아이를 홀로 키우며 살아가고 있지만 그가 처한 현실은 갈수록 녹록지 않다. 회사는 걸핏하면 초과 근무를 요구하고, 실리를 명확하게 따지는 그에게 수당도 제대로 챙겨주지 않는 야근은 의미가 없다. 덕분에 회사의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됐다. 하지만 혜미는 어린 아들을 건사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 그가 부당해고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게 된다. 전 직장에서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아들을 위해서라도 순순히 물러날 수 없다. “회사의 일방적인 계약 위반에 대응해야 한다”며 동료들에게 노조 가입을 권고하고 그 중심에서 투쟁을 이끌어간다.

혜미는 그 점에서 문정희에게 조금은 익숙하고 흥미로운 지점에 놓여 있는 캐릭터다. 싱글맘으로서 또 한 번 절실한 모성애 연기를 펼친다는 점에서 전작 ‘연가시’ ‘숨박꼭질’ ‘마마’와의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면,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감정노동자가 돼야 했던, 강단 있고 책임감 있는 엄마의 모습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평범한 보통 아줌마의 그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라고 느꼈다”는 문정희는 “혜미는 전 직장에서 부당해고를 당했던 비슷한 경험 때문에 노조를 만들고 리더 역을 맡는다. 아줌마 파워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는데, 영화를 하면서 이 나라의 중추인 여성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카트’는 우리 사회의 노동 현실 문제를 다룬다. 영화는 이를 마트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이 부당해고를 당하고 이에 맞서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또 가족과 동료들 간의 끈끈한 우정과 사랑 이야기로 풀어간다. 문정희 역시 삶을 위해 투쟁하는 소수자, 여성, 엄마들을 대변할 수 있는 좋은 영화라는 점에서 흔쾌히 출연을 결정했다. “사회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사연에서 시작됐다고 본다. 그런 것들이 보장받아야 된다는 점에서 공감이 됐고, 영화가 사회를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서 더 의미 있게 작업했다”고 말하는 그다. 그렇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영화 ‘카트’가 탄생했다. 그리고 설득력 있는 연기로 신뢰감을 쌓은 문정희의 존재감은 영화에 강한 추동력으로 작용했다. 그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영화에 대한 반응이 좋다.

“솔직히 별다른 기대를 안했는데 반응이 좋아서 얼떨떨하다. 상업적인 영화가 아니라서 굳이 이런 영화를 돈주고 보러 올까 하는 의구심은 있었다. 하지만 ‘카트’의 미덕은 고발성에 포커스를 맞춘 게 아니라 다같이 공감하고 우리들의 얘기로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무언가가 이야기의 중심이라는 점에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영화를 만들고 출연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는데 반응까지 좋아서 기쁘다. 이 분위기가 흥행으로까지 이어졌으면 정말 좋겠다.”

-사실 ‘카트’는 상업영화로 다뤄지기 힘든 소재이긴 하다.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일단 명필름이 제작을 맡았다는 점에서 믿음이 생겼다. 명필름은 분명한 색깔을 가지고 있는 제작사다. 조금은 투박하고 진중한 이야기도 자신만의 색깔로 이를 매력적으로 풀어왔다. 그래서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신뢰와 기대감이 있었다. 그리고 시나리오를 보니까 어렵고 복잡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를 편하게 담아냈다. 노조와 비정규직이라는 단어들이 무겁게 느껴지기보다는 우리가 항상 마주하는 청소부 아줌마, 마트에서 일하는 아줌마, 혼자 애를 키우는 엄마 등 그들의 처한 현실적인 이야기와 그 안의 따스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하고 싶어졌다. 게다가 김영애 선생님과 염정아 선배님, 엑소의 디오도 출연한다고 하니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카트’는 일종의 ‘을의 항변’을 다룬다. 그 입장이 되어 보지 않으면 모를 텐데 연기적으로나마 을의 입장이 돼보니 느낌이 어떤가.

“배우가 하이 소사이어티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일반인들은 생각하고 있다. 물론 사회적인 위상과 경제적인 측면에서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소수에 불과하다. 내 경우를 보더라도 연극에 입문하면서 세 달에 50만원을 받았다. 당연히 모자라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저녁엔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지금 연기자를 꿈꾸며 연극무대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 안정적인 삶을 꾸려나갈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말하자면 배우도 비정규직이다. 개런티가 높은 분이야 일이 없어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겠지만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배우라면 을의 입장이 될 수밖에 없다. 이쪽 분야도 갑과 을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 점에서 ‘카트’를 말한다면.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정말 내 이웃과 나의 이야기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드는 작품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갑과 을, 어느 쪽 편도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 부당해고를 당했을 때 을이 처한 입장, 갑의 입장을 펼쳐서 보여줄 뿐이다. 대한민국이 처한 냉엄한 현실을 보여주는 영화다.”

-여자들이 중심이 돼서 극을 이끌어간다. 이 점 역시 상업영화에서 쉽게 나올 수 없는 설정이다. 호흡은 어땠나.

“이 영화 전에 여자들의 우정을 다룬 드라마 ‘마마’를 찍었다. ‘마마’는 그래도 좋은 결과를 보여줬지만 대부분 여자들이 등장하는 영화는 흥행이 되기 어렵다. 왜 그럴까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주 관객층이 여자들인데 되려 그들은 여자들의 이야기에 쉽게 공감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건 작품성이나 상업적인 코드가 맞지 않아서 그런거지 꼭 여성들이 주가 된다고 해서 실패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마마’를 하면서 느꼈다. ‘카트’를 찍으면서는 여자들이 많이 나온다는 생각보다 현실 자체가 여성 노동자들이 주위에 많고, 그게 우리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관객층이 여자든 남자든 현실적인 부분에서 접근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촬영을 하면서 편하고 결속이 잘 된 건 있다. 하지만 신선함은 없었다.(웃음) 강우씨와 승준씨도 무척 불편해 하더라. 조금 불쌍했다.”

-엄마 역할을 주로 해왔다. 기존의 모습이 주로 영화적인 설정이었다면 혜미는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이다. 캐릭터에 접근하기는 어땠나.

“혜미는 이혼한 싱글맘이다. 내가 실제로 이런 상황이라도 웃음 같은 건 나오지 않을 것 같다. 이 캐릭터를 접하면서 처음 생각한 설정은 그래서 조금은 냉정하고 실리를 추구하는 쪽이었다. 염정아 선배가 연기한 한선희와는 그 점에서 반대의 지점에 있다. 혜미는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에서도 항상 날이 서 있다. 웃음기는 아예 찾아볼 수 없고 누구와도 마음을 나누지 않는다. 그런 그가 부당해고를 통해서 다른 많은 동료들과 노동조합의 일원으로 섞이게 되면서 천천히 변해간다. 그 과정을 보여주는 게 흥미로웠다. 하지만 현실과 너무 맞닿아 있어서 오히려 연기적으로 접근하기는 더 힘들었다. 개인적으로도 친구를 많이 만나는 스타일은 아닌데 혜미는 나보다 더 독립적이고 자신의 삶에 대해서 많은 것을 나누고 싶지 않은 여자다. 선희에 비해 가정사를 자세히 보여주지 않지만 그녀 역시 사건의 중심에서 가슴 아픈 현실을 보여준다. 매 순간 촬영 모습이 아니라 노동자처럼 있었기 때문에 감정이 자연스럽게 이입됐다.”

20141114

-아직 자녀가 없는데 모성애 연기는 지극히 사실적이다.

“그런가. 모성애 연기는 많이 했지만 경험해보지 않은 거라서 아직 잘 모른다. 얼추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접근했다. 결국은 상상력이다. 더 깊은 모성애 연기를 위해서라도 빨리 아이를 낳긴 해야 하는데 그동안 너무 바빴다. 결혼 후 쉬지를 못했다. 이젠 더 미룰 수도 없다. 내년이면 나도 마흔이다.”

-엄마 역할만 주로 해왔는데 아직 로맨스의 여주인공 역할도 충분한 당신이다. 그런 아쉬움은 없나.

“당연히 있다. 처음에는 ‘왜 나에게 벌써 엄마 역할을…’이라는 생각을 가졌다. 하지만 지금 내 나이의 여배우라면 피할 수 없는 딜레마이기도 하다. 엄마라는 걸 탈피하기가 쉽지는 않은 것 같다. 시나리오가 좋아도 고민이 되는 건 ‘또 엄마구나’라는 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과정들이 있었기에 로맨스의 여주인공도 꿈꿔 볼 수 있는 것 같다. 그 부분에 대해선 감사하게 생각한다.”

-최근 출연작들이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이젠 흥행에 대한 부담감도 있을 듯하다.

“흥행은 관객의 몫인 것 같다. 사실 ‘연가시’나 ‘숨바꼭질’은 흥행을 염두에 두고 출연한 영화는 아니다. 그리고 아직 내가 흥행에 대한 부담감을 가질 정도로 극을 이끌어가는 중심 역할이 아니라서 사실 부담감은 좀 덜했다.(웃음) 다만 많은 분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잘 골라서 해야겠다는 생각은 한다. 그건 흥행과 상관없다. ‘마마’도 주변에서 하지 말라고 말리는 분이 많았다. 엄마 역할이고 뒤에 개봉할 영화들도 비슷한 역할이라 식상하게 여겨질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나는 대중과 좀 더 가까워지려면 드라마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없는 로맨스물을 만들어서 할 수는 없는 거고 그 점에서 ‘마마’는 기존 작품과 비슷한 듯 아닌 듯한 경계에 있는 작품이었다. 도전해보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많은 것을 얻어간 작품이다.”

-실제 성격은 어떤가.

“나를 도도한 도시적인 이미지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아니다. 그렇다고 이제껏 작품속에서 보여준 엄마의 모습도 아니다. 나는 굉장히 에너제틱한 것 같다. 운동도 매우 좋아하고 성격적으로도 굉장히 밝은 사람이다. 파이팅이 넘친다고 해야하나. 나름 리더십도 있어서 혼자하는 일보다 같이 하고 선봉에 서는 것을 좋아한다.”

-연기자로 입문한 계기는 뭔가. 원래부터 연기자를 꿈꾼 건 아니라고 알고 있다.

“한예종 1기다. 정말 운이 좋아서 들어갔다고 생각한다. 1기생이다보니 연기를 잘하는 것보다 학교 콘셉트에 맞는 학생 위주로 뽑았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내가 예술적인 성향도 있었던 것 같은데 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연기에 ‘연’자도 몰랐다. 그런 내가 뜬금없이 시험을 보겠다고 하니 담임선생님이 어이없어 하더라. 몇 년을 준비해도 될까 말까 한데, 더군다나 끼도 없어 보이는 내가 한다고 하니 그렇게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나에게 이런 기회를 한 번은 줘야 후회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당시 미술을 하던 친구가 그러더라. ‘너는 네 안에 다른 게 있는데 아무런 기회를 주지 않는다’고 말이다. 학교에 들어가서도 배우를 꿈꾼 건 아니다. 그냥 연기를 한다는 게 재미있었다.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도 됐고. 아직도 연기는 어렵다. 하지만 갖가지 재료들을 이용해서 어떤 요리(역할)를 만들어낼지가 흥미롭고 그 과정에서 쏟아내는 열정의 순간이 즐겁다. 그 점에서 연기는 나의 천직같다.”

-연기외에도 노래와 춤, 특히 살사댄스가 수준급이라고 들었다.

“워낙 내가 몸쓰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춤을 즐겨했고 당시 남미 음악에 한창 빠져 있었다. 그 과정에서 살사를 접하게 됐는데 엄청 매력적인 춤이더라. 뭐든지 오래하는 것을 좋아해서 하다보니 살사는 15년 정도 한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살사로 콩쿠르도 나가고 강사생활도 했다. 그래서 지금도 노래를 하라고 하면 떨리는데 춤을 추는 건 확실히 편하다. 바람이라면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춤을 소재로 한 영화에 꼭 출연해보고 싶다.”

-자연인 문정희의 평소 모습은 어떤가.

“아침에 눈을 뜨면 뉴스를 시청한 후 바로 산에 간다. 남편은 조용하게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 반면, 나는 활동적이다. 밖에 나가면 자연과 주변 환경을 보면서 나 말고 다른 많은 것들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 속에서 나는 보잘것없는 아주 작은 존재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느끼는 시간을 많이 주기 위해 가능하면 밖에 나가서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려고 한다. 풀 한 포기도 나를 감동시킬 수 있고, 낙엽이 떨어지는 것조차도 요즘은 신비해 보인다. 그런 세상에 내가 살아가고 있고 나이를 먹는다는 게 재미있고 뜻깊다.”

-내년에 특별한 계획이 있다면.

“앞서 언급했듯 보다 자연스러운 모성애 연기를 표현할 수 있도록 2세를 가질 계획이다.(웃음) 물론 그건 하늘의 뜻이겠지만. 그 전까지는 작품활동을 열심히 할 거다. 지금도 시나리오가 들어오고 있는데 여전히 작품을 선택하는 건 정말 어렵다. 일단 올해 장사는 끝이다. 생각보다 바쁘게 보낸 2014년이다보니 나에게도 휴식이 좀 필요하다. 그래야 내년을 보다 활기차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진=김현수(프리랜서) dada2450@hanmail.net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