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김천 부항면 부항호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 |
  • 입력 2014-11-21   |  발행일 2014-11-21 제38면   |  수정 2014-11-21
폭풍과 수몰의 아픔 그후, 고요가 내려 앉았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김천 부항면 부항호
김천시 부항면의 4개 리(里)가 잠겨 있는 부항호. 정면이 부항대교, 오른쪽이 유촌교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김천 부항면 부항호
물에 잠긴 용두대로 짐작된다. 바위의 소나무가 수면 위로 솟아있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김천 부항면 부항호
효자 이영보 정려각. 지좌리에 있던 것을 산내들 공원으로 옮겨 복원했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김천 부항면 부항호
부항호를 상징하는 조형물과 물문화관인 삼산이수관.


그것은 폭풍이었는데, 이토록 잔잔하다니.



◆부항댐 건설 소사

김천의 부항면. 서쪽의 삼도봉을 중심으로 북쪽의 황악산, 남쪽의 대덕산이 백두대간의 준령으로 이어진다. 골짜기는 동쪽을 향해 내려오면서 평평하게 펼쳐졌고, 삼도봉에서 발원한 부항천이 골짜기의 한가운데를 흘렀다. 땅은 좁았지만 천혜의 빛과 물에 의지해 지좌리, 유촌리, 신옥리, 도곡리와 같은 천변 마을들이 잎맥처럼 자리했다.



2002년 태풍 루사가 김천의 구성면, 지례면, 부항면, 증산면, 대덕면 등을 헤집었다. 이전에도 댐 건설은 논의되고 있었다. 김천을 둘러싼 백두대간의 급류는 기존의 수리시설로 감당하기 어려웠고, 김천과 구미 등 경북 북서부 지역의 안정적인 물 공급을 위해서도 댐은 필요했다. 결국 루사로 인해 논의는 종결되었고 바로 그해 계획에 착수, 12년 만에 댐은 완공되었다. 도곡리가 있던 자리에는 댐과 공원이 들어섰고 지좌리, 유촌리, 신옥리는 호수에 잠겼다. 댐 옆에는 물 문화관이 들어섰고, 호수를 일주하는 도로와 데크 로드가 설치되었다.



산과 골의 지형은 고스란히 살렸다. 그래서 호수의 테두리는 마을이 자리했던 골짜기의 윤곽 그대로다. 지난 12년, 그 또한 태풍이었을 것이다. 이제 지금 여기에 조용하고 아름다운 그림이 있다. 그리고 그 침묵에 사려 깊게 뿌리를 내린 이름들이 있다. 폭풍을 감내한 이름들은 여기에 남아 새로운 것을 만들었다.



◆도곡리가 있던 자리, 산내들 공원

부항댐의 우안은 유촌리, 좌안은 신옥리, 댐 아래는 도곡리다. 도곡리는 도래실, 주치밭골, 문질 세 마을로 나뉘는데 문질마을만 댐 공사로 사라졌다. 댐 둑길에서 내려다보면 한눈에 보이는 곳, 6가구가 살았던 문질마을은 산내들 공원과 캠핑장이 되었다.



공원에는 지좌리 마을에 있었던 효자 이영보의 정려각이 복원되어 있다. 13세 때 아버지를 잃자 예를 다하였고, 이어 어머니가 병들자 7년간 성심으로 봉양했다는 사람. 자라고기가 먹고 싶다는 어머니를 위해 한겨울 부항천을 방황하며 우니, 얼음이 깨지며 자라가 튀어올랐다는 효자 이영보. 이야기는 전해져 1858년 효자 정려가 내려졌고, 1970년대에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정려각 앞에는 수몰된 마을의 입구에 서 있던 표지석과, 마을들이 품고 있던 각종 기념비가 모여 있다. 이미 폐교된 학교의 교적비라든가, 마을을 지키고 섰던 나무의 표석이라든가, 마을 회관의 건립비 같은. 그리고 각 마을의 역사와 자랑을 적어 놓았고, 마을을 떠나야 했던 이들의 이름을 일일이 기록해 두었다. ‘댐 부지로 양보해 주고 대부분 타지로 이주했다’는, 건조한 듯하지만 내심에 감사를 담은 문장이 뭉클하다.



◆유촌리의 버드내교, 유촌교, 부항대교, 비룡교

903번 도로는 도곡리에서 유촌리를 지나 무주로 가는 꼬불꼬불한 도로였다. 댐 건설과 함께 길은 쫙 펴졌고, 그 과정에서 수몰된 유촌리 마을 위로 많은 다리가 신설되었다. 유촌리에는 버드내, 가물리, 동산, 용촌 등의 마을이 있었는데 물 문화관에서 조금 달리면 첫째로 만나는 다리가 버드내교다. 천변에 버드나무가 많았다는 버드내는 유촌리 이름의 기원이기도 하다. 다리 앞 터널을 통과하면 유촌교다. 다리 아래에는 가물리 마을이 있었다. 물속에서 걸어 나와 산기슭을 오르는 길이 선명하게 보인다. 사람들은 저 길을 올라 봄나물을 뜯고 산소를 돌보았을 것이다.



유촌교를 지나면 금새 부항대교다. 다리는 부항댐을 마주본다. 물속의 마을은 동산이었다. 1959년까지 부항면사무소가 있었고 장이 열려 장터라고도 불렸다. 길은 유촌리의 뒷산인 비룡산 사면을 달려 한송정교와 비룡교를 지난다. 용이 승천했다는 비룡산 아래에는 용촌마을이 있었다.



◆지좌리와 신옥리, 산책로 따라 기억만 남아

비룡교를 지나 지좌 교차로에서 좌회전하면 지좌교다. 지좌리 마을이 있던 곳이고, 한때 100여 명 넘는 주민이 살았다. 마을에 ‘한송정’이라는 정자가 있어 ‘한송정 마을’로도 불렸고 효자 이영보가 살았던 마을이라 ‘효아촌’으로도 불렸다. 지금 주민의 대부분이 떠났지만 18가구 정도가 산 중턱으로 자리를 옮겨 ‘효아촌’의 명맥을 잇고 있다. 903번 도로의 한송정교는 지좌리를 마주보며 옛 이름을 기리는 것일 게다.



새로운 효아촌 앞에서부터 신옥리를 거쳐 부항댐 까지는 일주도로와 산책로가 나란히 이어진다. 산책로는 도로와 분리된 나무 데크 길이라 부항댐 둘레를 걷는 이들이 많이 이용한다. 효아촌 앞에는 ‘용두대’ 전망대가 있다. 큰 바위가 용머리같이 생겼다는 용두대는 부항댐의 상시만수위(해발 195m) 바로 아래에 있어 일 년에 아주 잠시만 볼 수 있다고 한다. 물 위로 솟아오른 잘생긴 소나무가 용두대의 위치를 짐작하게 한다.



산책로가 부항정 정자가 있는 소공원을 지나면, 신옥리의 옥소동으로 접어든 것이다. 그리고 갈색으로 물든 밤나무의 우듬지가 잦게 보이면, 신옥리 밤실마을에 당도한 것이다. 밤실마을 전망대 바로 아래에 부항댐이 있다.



도곡리, 유촌리, 지좌리, 신옥리. 그들의 이름을 불러본다. 그들은 사라지자 유명해졌다. 사라짐은 담담했고, 이처럼 잔잔하다. 모든 유명한 것들이 그렇듯 잊혀질 것이고, 물의 생명만큼 긴 시간이 흐른 뒤, 유적처럼 발굴될지도 모를 일이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경부고속도로 김천IC에 내려 김천역 방향으로 간 뒤 3번 국도를 타고 남향한다. 지례를 지나 우회전해 903번 지방도로 들어서면 부항면이다. 길을 따라 산내들 공원, 부항댐과 물문화관이 차례로 위치해 있다. 903번 도로로 계속 가다 지좌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가면 다시 부항댐 좌안과 산내들 공원에 닿는다. 물문화관은 월요일과 화요일 개방하지 않는다. 입장료는 없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