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소녀 오예리의 톡톡 세상] 힐링의 진수 전해주는 日 하코네 온천 이야기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4-11-21   |  발행일 2014-11-21 제39면   |  수정 2014-11-21
맑고 고요한 자연 속으로 점점 잠기다
[비행소녀 오예리의 톡톡 세상] 힐링의 진수 전해주는 日 하코네 온천 이야기
[비행소녀 오예리의 톡톡 세상] 힐링의 진수 전해주는 日 하코네 온천 이야기
밤과 낮의 분위기가 확연히 다른 일본 가나가와현 하코네의 한 온천 노천탕과 숙소를 이어주는 빨강 다리가 녹색의 숲과 강렬한 대조를 이룬다(위쪽). 몽환적 분위기가 감도는 한밤의 하코네 온천 산책로.
[비행소녀 오예리의 톡톡 세상] 힐링의 진수 전해주는 日 하코네 온천 이야기
집과 숲, 그리고 온천이 마치 한폭의 동양화처럼 절묘한 균제미를 보여주고 있다.
[비행소녀 오예리의 톡톡 세상] 힐링의 진수 전해주는 日 하코네 온천 이야기
마치 폭포수처럼 직강하는 느낌을 갖고 있는 노천탕 옆 대나무 울타리.
[비행소녀 오예리의 톡톡 세상] 힐링의 진수 전해주는 日 하코네 온천 이야기
료칸 투숙객에게 무료로 제공되는 조찬의 일부.

어느새 깔리기 시작한 어둠의 장막이 온 세상을 포근하게 뒤덮고 있습니다.

머리 위로는 보석처럼 촘촘히 박힌 별빛이 하늘을 가득 수놓고 있고, 그런 하늘을 향해 시원스레 일자로 곧게 뻗은 대나무 숲은 마치 견고한 요새처럼 주변을 감싸고 있습니다. 우거진 숲속에 자리한 어느 운치 있는 노천 온천탕. 주위에는 온통 정적만이 가득합니다. 간간이 계곡에서 들려오는 물소리, 주변 대나무 숲에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를 빼놓고는, 어떤 인위적인 소리도 개입되어 있지 않습니다. 안개처럼 자욱하게 눈앞을 뒤덮던 수증기는 또 한순간 바람결에 흩어지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온 세상이 고요한 적막감에 휩싸인 가운데, 필자는 어느새 오롯이 홀로 된 자신의 모습과 마주합니다. 깊고 고요한 밤, 필자는 자연 속으로 점점 잠겨갑니다.

아시노코 호수의 아련한 풍경을 뒤로 하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오르고 내리기를 수차례, 드디어 차는 가나가와현 하코네에 있는 한 온천에 이르렀습니다. 차가 멈춘 곳은 어느 작고 아담한 료칸. 작은 앞마당에는 키 큰 소나무 두 그루가 쌍둥이처럼 나란히 서서 먼저 환영 인사라도 건네는 듯 장거리를 달려온 여행자들을 정겹게 맞이 합니다. 차에서 내리기가 무섭게 얼굴 가득 미소를 띤 한 일본인 직원이 달려 나오더니 입구에서 허리를 깍듯이 굽혀 정중하게 인사하며 일행을 맞이합니다. 일본인 특유의 싹싹함이 묻어나는 말투와 태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체크인을 마치고 방으로 일행을 안내하는 내내 꼼꼼하게 료칸 시설 이곳 저곳을 설명하는 그의 태도에는 성실함과 더불어 자부심까지 묻어나는 듯했습니다. 결코 화려하지 않은, 그러나 정갈하고 세심한 배려가 돋보이는 료칸의 실내 장식은 군더더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단순명료함이 돋보였습니다.

◆ 정중동의 여백미가 특출난 료칸

처음 접해보는 료칸의 일본식 다다미방. 바닥을 딛고 서니 의외로 다다미가 폭신폭신합니다. 외부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큰 창이 정면의 벽 한 면을 가득 메우며 자리잡고 있고, 그 밖에는 방 한가운데 놓여진 나무 테이블 하나, 대나무 그림이 그려진 긴 족자 하나, 그리고 꽃꽂이 장식 하나가 눈에 띄는 전부입니다. 행여 꽃꽂이 장식이 없었다면 너무 단조로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만큼 단촐한 방이었습니다. 그렇게 공간을 비워 낸 만큼 드러난 여백이 담백하게만 느껴졌습니다. 여백의 미학 이랄까요? 불필요한 장식은 철저히 배제한 채 철저히 쓰임에만 집중한 그런 공간이었습니다. 잘 살펴보면 벽으로 보이던 공간은 벽장을 품고 있거나, 옷장을 숨기고 있기도 했고, 두 사람이 마주앉아 담소를 나눌 있는 아기자기한 응접실 공간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없는 듯했으나 존재하는 숨은 공간들을 하나씩 발견해 나가는 것도 이 료칸의 숨은 재미 중 하나였습니다.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면 이렇게 잘 정돈된 조용하고 정적인 공간 속에서 변화를 일으키는 움직임이라고는 저 창 너머 계곡에서 들려오는 물 소리뿐입니다. ‘정중동’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살린 이 료칸의 일본식 다다미방은 가만히 앉아 사색에 잠기기에는 그야말로 안성맞춤인 공간처럼 보입니다.

잠시 주변 경치를 감상한 후 모서리를 맞추어 곱게 잘 개 놓았던 유카타를 옷장에서 꺼내어 편안하게 갈아입습니다. 평소 기모노와 더불어 한 번쯤 입어보고 싶던 의상이건만 막상 차림새를 갖추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네요. 옷깃은 어느 쪽이 위로 향해야 하는지, 끈은 또 어떻게 동여매어야 하는지 모든 게 알쏭달쏭하기만 합니다. 대충 눈썰미를 발휘해 봐두었던 대로 왼쪽 옷깃이 다른 쪽을 감싸도록(여자) 옷을 여미고 나니 이제서야 온천에 제대로 입성한 듯한 느낌이 듭니다. 테이블 한쪽에 마련된 차 주전자에 뜨거운 물을 붓고 녹차 한 잔을 잘 우려냅니다. 조용히 음미하듯 마십니다. 다식도 함께 곁들이며 잠시 휴식을 취하노라니 창 너머 계곡의 물소리가 필자를 유혹합니다. 아직은 이른 저녁. 해가 지기 전에 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주변 경관을 감상하며 여행으로 인한 피로를 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료칸 뒤편 계곡으로 이어지는 빨간색 다리를 건너 노천 온천으로 향하는 길은 그래서 더 기대와 설렘의 연속일 수밖에 없습니다. 나무로 만들어진 울타리 가림막 문을 열고 조심스레 노천 온천에 들어서는 순간 아껴두었던 탄성이 절로 납니다.

‘선녀와 나뭇꾼’이란 전래동화 속에 등장했던 그 신비로운 계곡의 연못이 바로 이러한 모습이지 않았을까요? 시작은 이렇습니다. 커다란 바위가 무심한 듯 여기 저기에 자리잡은 한 깊은 계곡의 작은 연못이 바로 그 배경입니다. 그곳에서는 모락모락 연기를 피우며 솟아나는 온천수가 몽상적인 듯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고, 주위로는 빽빽하게 우거진 대나무 숲과 산림이 마치 주변과의 경계라도 지우듯 병풍처럼 둘러앉아 고즈넉한 분위기를 전합니다. 그 너머로는 높은 바위 절벽에서 떨어지는 폭포수가 시원하게 청량감을 더하며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어 냅니다. 입구에 서 있는 저 커다란 바위 뒤편에 나무꾼 하나가 몸을 숨기고서 잠시 하늘에서 내려와 목욕을 하고 있는 천상의 여인을 훔쳐보고 있다고 해도 쉽게 수긍이 갈 만큼입니다. 노천 온천이 들어선 장소는 마치 이야기 속 한 장면처럼 고요하고 한적하여 비현실적이며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마치 필자가 선녀라도 된 듯한 느낌으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갑니다. 두 눈을 감고 따뜻한 물에 노곤한 몸을 담그니 이내 의식마저도 풀어지는 듯 그렇게 동화 같은 꿈에 잠깁니다.



◆ 일본 전통 코스요리인 가이세키

일본식 전통 코스요리인 ‘가이세키’는 온천과 더불어 료칸 체험의 꽃으로 손꼽힙니다.

일본 료칸은 온천과 이 가이세키 요리의 수준으로 평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답니다. 온천욕을 마친 후 필자가 묵는 다다미방에서 저녁 식사가 차려지는 동안 얼른 로비로 내려가 자판기에서 작은 우유병 하나를 뽑아듭니다. 온천욕을 마치고는 이렇게 우유를 마셔주는 게 좋다고 합니다. 고소한 우유가 꿀꺽꿀꺽 목을 타고 넘어갈 때마다 벌써부터 원기가 회복되고 기력이 보충되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료칸의 요리는 그때그때 계절에 어울리는 것으로 준비된다고 합니다. 음식마다 서로 같은 재료, 같은 조리법, 같은 맛이 중복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구성되는 것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정말이지 음식의 맛은 물론이거니와 재료의 색과 모양의 조화까지 감안한 구성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습니다. 이런 정성이 담긴 음식들을 그릇에 담아낼 때도 그 색과 재질까지 고려한다고 하니 두 배 세 배 정성이 담기는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먼저 따뜻한 국과 생선회가 첫 선을 보입니다. 차례로 다음 요리가 등장했는데요, 맛도 물론이었지만 소꿉놀이 하는 듯 아기자기한 그릇들에 담긴 다양한 소스와 초절임 메뉴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부드럽고 촉촉하게 본연의 맛을 살리며 생선구이, 바삭한 튀김 요리, 달달한 소스가 곁들여진 채소 절임, 심심한 듯 담백하던 탕 요리에 이어 마지막에 달달함을 전하는 디저트에 이르기까지…. 식감과 맛을 음미하며 먹다 보니 눈과 배가 제대로 호사하는 듯한 기분입니다.

저녁 식사 후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찾은 노천 온천에는 짙은 어둠이 깔려 있었습니다.

하늘에서 쏟아질 듯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며 주변 자연의 울림과 소리를 만끽하며 한밤의 온천욕을 즐깁니다. 이 어둠 속 낯선 공간 속에 혼자라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두려움으로 다가올 법도 한데 오히려 홀로 남겨진 이 공간 속에서 편안함을 느낀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집니다. 이것이 자연이 주는 힘인 걸까요? 잡음 많고 탈 많은 바깥 세상과 차단되어 잠시 동안이나마 동떨어진 평화로운 시공간 속에 필자만 홀로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고요한 자연과 하나되는 느낌, 혹은 그 자연 속으로 필자가 편입되는 듯한 느낌, 그리고 그곳에서 마주한 나 자신을 위한 오랜 사색의 시간이 흐릅니다.



◆ 꿈 같은 료칸에서의 하룻밤

낯선 잠자리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료칸에서의 잠자리는 편안했습니다.

아침엔 눈을 뜨자마자 상쾌한 공기를 만끽하며 다시 노천 온천욕장으로 향했습니다. 이른 새벽, 그곳의 정취는 한밤중에 본 그 모습과는 또 어떻게 다를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조용히 문을 열자 아무도 없을 거란 예상을 깨고 먼저 그곳을 찾은 중년의 일본인 여성 서너 명이 한쪽으로 둘러앉아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좀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잡고 앉아 저 높은 곳에서부터 흘러내리는 폭포수를 바라봅니다. 아름다운 자연과 그 경이로움에 대해 다시 한번 떠올리고 감사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이 고즈넉한 곳에서의 온천욕을 통해 몸은 물론이거니와 마음을 정화하고 정신을 가다듬는 소중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잠시 후면 마지막으로 정갈하게 차려진 아침 식사를 하고 곧 이곳을 떠나야 하겠죠. 하지만 벌써부터 마음은 다시 이곳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또 언제가 될까요. 몸과 마음을 재충전할 하코네 온천으로의 여행길은.

외국항공사 승무원 ohyeri@yahoo.co.kr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