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아낙네들 모여들던 우물 집집마다 키우던 감나무

  • 채건기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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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11-26   |  발행일 2014-11-26 제10면   |  수정 2014-11-26
40년 전 일이 어제 같아
[우리 동네] 아낙네들 모여들던 우물 집집마다 키우던 감나무
40년 전 대구시 동구 지묘동 왕산의 모습. 당시 동구청의 정비계획에 따라 37가구는 인근 지역으로 이주해야 했다.

“우리 동네를 소개합니다!”

대구시 동구 지묘동에는 400년 전부터 주민들이 거주했다. 요즘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연립주택이 들어서 과거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불과 30년 전 신숭겸 장군 유적지를 중심으로 지묘동은 동구청의 정비계획에 따라 급격한 변화를 맞게 된다. 당시 유적지를 둘러싼 왕산 아래에는 37가구가 둥지를 틀고 살았지만 이전 통보에 따라 공산댐 등 인근 자연부락으로 이사를 해야만 했다.

농사로 생업을 이어온 주민들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4계절 내내 자연에서 나오는 곡식과 열매, 채소를 통해 끼니를 이었다. 마을에는 우물을 중심으로 아낙네들이 모여 이야기꽃을 피웠다. 마을 왼쪽 입구에 있는 샘집에 위치한 우물에는 쌀을 씻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여성들이 몰려들었다. 오전에는 빨래를 위해 너나 할 것 없이 우물 곳곳에 자리를 틀고 앉았다.

집집마다 키운 감나무도 어린아이들에겐 추억의 놀이터였다. 집성촌을 이뤄 거주해온 지역 특성상 사촌과 형제끼리 감나무 가지에 걸터앉으며 놀이를 했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지금의 신숭겸 유적지 내 표충단 좌우는 대부분 논밭이었다. 겨울에는 꽁꽁 얼어붙은 논바닥에 비료 포대를 이용한 썰매 놀이가 벌어졌다.

특히 마을 앞 동화천은 하루의 고된 농사일을 마친 농부들이 피곤한 몸을 씻던 안식처였다. 어린아이들이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으며 해맑게 웃던 그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는다. 친구들끼리 잡은 물고기를 한데 모아 냄비에 끓여 먹던 매운탕 맛은 지금도 그립다.

50년 전 지묘동으로 시집와 현재까지 살고 있는 채윤옥 지묘1동 통장(74)은 “지묘동은 아직까지 사촌에서 팔촌에 이르기까지 친인척이 모여 살 만큼 집성촌 성격이 강하다”면서 “요즘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이웃 간에 훈훈한 나눔과 정이 예전 만 못하지만 지묘동이야말로 지역에서 가장 인간미 넘치는 따뜻한 고장”이라고 말했다.

글·사진=채건기 시민기자 ken497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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