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팔공산 집단시설지구 내 이조식당 채영희 대표

  • 이춘호
  • |
  • 입력 2014-11-28   |  발행일 2014-11-28 제41면   |  수정 2014-11-28
보신탕으로 이름 날렸던 그녀 ‘유황오리 전도사’ 됐다
20141128
▶채영희 이조식당 대표가 한상 차려놓은 음식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41128
이조식당의 유황오리 메뉴는 입이 아니라 마음으로 먹어야 한다. 여느 집과 달리 먹기 좋게 쟁반에 담아 꼭 ‘해파리냉채’ 같다. 식욕을 돋울 수 있게 메밀국수를 곁들인 것도 인상적이다.

팔공산 집단시설지구 한복판에 흡사 티베트 사원 같이 서 있는 식당 하나가 있다.

메밀국수를 곁들인 신개념 훈제 유황오리로 유명한 ‘이조식당’이다. 내부는 양반가의 사랑채처럼 정갈하면서도 기품이 있다. 모임의 종류에 맞게 꾸며놓은 각종 별실이 눈길을 끈다. 통유리창이 있는 방은 다소 수다가 어울리는 중년 여성들에게 건넨다. 중년 여성의 고단한 삶의 무게를 배려한 것이다.

군데군데 서화류가 걸려 있다. 여느 식당의 포스가 아니다. 꼭 갤러리 같다.

오너셰프 채영희씨(70).

그녀는 좀처럼 자신의 지난 세월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너무 엄청나고 처절하고 기가막혀 차라리 빙그레 웃는 편이 나을 정도로 ‘풍찬노숙’의 삶을 살아왔다.

인터뷰에 응한 채 대표는 “음식 이야기만 하지 자기 집안 얘기는 별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며 정색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현재 ‘대구 10월항쟁유족회장’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대구시 동구 미대동 출신 독립운동가 채충식 선생(1892~1980)의 손녀다. 미대동 인천채씨 문중은 3·1운동 당시 대구유림 중 마을 단위로는 유일하게 만세운동에 참여한 곳이다. 채충식 선생은 천석꾼의 후손으로 장진홍 열사와 시인 이상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형 박상희 등과 교류했으며, 독립운동과 관련해 숱한 옥고를 치렀다. 그는 여운형이 주도한 건국준비위원회에 참여했으며, 김구 선생과 함께 남북회의 협상차 평양에 다녀오기도 했다. 그의 아들이자 채영희씨의 아버지인 채병기씨는 46년 대구10월항쟁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다 강제로 국민보도연맹에 가입됐다. 그는 6·25전쟁 때 대구형무소에 수감됐다가 좌파정치범으로 분류된 뒤 그해 7월30일 가창골(현 가창댐)에서 처형됐다. 그날부터 그 집안이 쑥대밭으로 전락한다. 아무런 변명도 항변도 소용이 없었다. 연좌제 때문이었다.


질곡의 삶
독립운동가 채충식 선생의 손녀
부친은 ‘보도연맹’으로 희생돼
연좌제 인한 풍찬노숙의 삶 보내
식당하다 뇌출혈로 쓰러지기도
유익한 식재료 찾다 유황오리 만나

신개념 유황오리 개발
기름 싹 제거한 수육형태 요리
부드러운 식감에 잡내도 안 나
메밀국수·새싹 샐러드 곁들여
4명이 둘러앉아 먹기에도 좋아

◆가난이 키워놓은 식당

능력은 있지만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올챙이 화가 등을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연다. 그래서 작품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누가 괜찮다고 하면 그냥 줘버린다.

그녀는 배고픈 게 뭔지 뼈져리게 경험했다. 그래서 배고픈 사람이 자기 식당 문 안으로 들어오면 조건반사적으로 밥상을 차려 올린다.

이조식당.

‘이조’의 한자 때문에 그녀는 질문공세를 받는다. 우리가 평소 알고 있는 ‘이씨조선의 식당’이란 뜻이 아니었다. 그녀는 일제 잔재 중 하나인 이조(李朝)의 한자를 사용하지 말자는 운동도 전개했다. 결국 오얏 리(李) 대신 음식 ‘이()’, 아침 조(朝) 대신 새 ‘조(鳥)’자를 사용한다.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이었다.

사실 그녀는 언행이나 인품으로 볼 때 식당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눈매에서 느껴지지만 조금은 종부스러움과 자애로움이 있다.

조부는 비록 가난하지만 집안의 체통 때문에 그녀가 식당까지 하면서 돈을 버는 걸 싫어했다. 결국 1980년 조부가 89세로 돌아가고 난 다음부터 식당을 차릴 수가 있었다. 그녀가 음식에 손을 댄 것은 올해로 32년째. 식당을 차리기 전에는 독일로 가서 간호사가 되고 싶었다.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명망가인 조부의 도움을 받아 겨우 지역의 모 소아과 병원 간호사로 일할 수 있었다. 한때 대구에서 ‘주사 잘 놓는 여자’로 소문이 났다. 조부와 부모가 다 돌아가시고 난 뒤 그녀에겐 꿈과 희망도 없었다. 어머니는 바느질로 연명을 했다.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자 더 이상 기댈 데가 없었다. 당장 목구멍이 포도청이었다. 마땅히 할 수 있는 일은 식당밖에 없었다. 독립운동가의 손녀였지만 야멸찬 세상은 그녀를 식당주인으로 떠밀었다.

운명은 참으로 가혹했다.

설상가상 그녀는 96년 뇌출혈로 쓰러져 반신불수 신세가 된다. 말을 할 수 없다는 게 그렇게 슬플 수가 없었다. 일단 말문부터 터야되겠다 싶어 눈만 뜨면 노래방에 가서 동요를 불렀다. 이젠 매일 운동으로 버틴다. 투병 중에 좋은 식재료에 대해 공부를 한다. 그때 만난 게 유황오리다.

지금도 운신하기가 무척 어렵지만 남은 힘으로 기력을 잃어버린 단골에게 가장 착한 유황오리를 정성스럽게 요리해 올리려고 한다.

◆나만의 유황오리를 찾아서

그녀는 원래 보신탕에 일가견이 있다.

팔공산으로 오기 전 칠곡군 왜관읍에선 보신탕으로 알아주었다. 개고기만큼 가장 한민족적인 음식도 없다고 믿었다. 육개장도 개로 끓인 국인 ‘개장’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왜 유황오리를 잡았을까?

유황오리는 80년대초 민족의학자였던 인산 김일훈(1909~92)이 86년 ‘신약(神藥)’이란 책을 통해 맨처음 공론화시켰다. 김일훈은 ‘집오리의 뇌수 속에는 암치료의 핵심적인 암약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 말 때문에 일부 요리 연구가 사이에 독극물인 유황을 먹인 오리를 사육하기 시작한다. 그녀도 유황오리에 대해 더욱 깊게 공부를 했다.

유황(Sulfur)은 주기율표 6B족 산소족 원소다. 녹는점은 112.8℃, 끓는점은 444.7℃. 그런데 왜 오리는 차가운 얼음 위에 있어도 동상이 걸리지 않을까. 관절 부위에 ‘원더네트’란 기관이 있다. 이게 위에서 내려오는 혈액의 온도가 땅에서 올라오는 혈액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해 준다. 여느 가금류는 절대 유황을 먹지 못하는데 오리만 먹어도 별탈이 없는 이유는 뭘까? 오리 스스로 자동제독(법제) 하는 능력 때문이다.

수육처럼 생긴 유황오리를 먹어봤다.

식감이 부드럽고 잡내도 나지 않았다. 대구는 너나없이 숯불에 구워먹는 오리를 좋아한다. 그런데 몸에는 좋다고는 하나 기름이 너무 많아 그녀는 기름을 최대한 제거한 새로운 수육 같은 ‘신개념 훈제오리’를 만들었다. 일단 훈제를 통해 기름을 제거한 뒤 펄펄 끓는 육수의 증기를 이용해 채반에서 오리를 쪄낸다.

차림새부터 다르다. 꼭 유황오리를 주재료로 한 보쌈, 아니면 쟁반국수 같았다. 쟁반 중간에는 먹기 알맞게 잘 썬 오리를 놓고 그 주위로 4명이 먹을 수 있게 메밀국수와 새싹을 고명으로 올린 상추와 배추 샐러드를 올린다.

밀쌈전병처럼 얇게 슬라이스 친 무 위에 고추냉이를 조금 묻힌 오리와 메밀국수와 샐러드, 청양고추와 새송이 장아찌를 적당하게 올려 싸 먹는다. 특히 얇은 무의 간은 그다지 자극적이지 않다. 이유가 있다. 무를 얇게 썬 다음 그걸 눕히지 않고 세워 소금과 설탕을 뿌려 무의 습기를 제거하고 빼낸만큼 현미식초로 채워주면 된다. 여름이면 이틀, 동절기에는 닷새면 충분하다. 국내산 천일염이 무조건 좋다고 믿는데 그녀는 아직 서해의 수질을 다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해 입자가 국내산보다 조금 작은 뉴질랜드산 천일염을 사용한다.



◆음식을 먹어보니

일단 자리에 앉으면 죽과 육수부터 준다.

죽은 전복죽처럼 녹색 기운이 감돈다. 찹쌀, 구기자, 감초, 당귀, 녹두 등 7가지 식재료를 오리 육수에 삶은 뒤 마지막엔 상황버섯가루를 뿌려 특유의 식감을 그려낸다.

곁반찬 중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건 꼭 햇사과를 껍질째 씹는 맛인 우엉김치. 알맞게 썬 우엉을 살짝 데친 뒤 까나리액젓·고춧가루·마늘을 버무려 낸다. 방금 요리해서 그런지 여느 식당처럼 물컹거리지 않아 좋다.

청양고추 장아찌도 남다른 포스를 취하고 있다. 노릇한 기운이 감돈다. 역시 간장에 오래 염장된, 이젠 흔해진 간장 장아찌와 비교가 된다. 소금물에 담가 노릇해질 때까지 침잠시켜둔단다.

새송이 장아찌는 식초, 진간장, 간장, 설탕, 매실청 등을 갖고 1주일 만에 만드는데 중간에 장물을 3번 끓이는 과정이 있다. 이때 잘 숙성해서 그런지 송이향이 아주 카랑카랑하게 풍겨난다. 장물과 식재료가 궁합이 맞지 않는다거나 삼투압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으면 식재료와 장물이 따로 놀게 된다. 그러면 장아찌 특유의 맛이 사라지고 그냥 풋내만 나거나 장물의 짠맛만 나게 된다.

또 한 가지 눈길을 끄는 사이드 메뉴가 있다.

갈비처럼 생긴 바로 구운 오리날개찜. 워낙 많이 찾아 다른 업체에서 날개만 별도로 받아 한 번에 100여 개를 집중적으로 장만한다.

최근에는 팔공산 산행하는 이를 위해 오리육개장 같은 ‘오리탕’을 낸다. 5천원을 받는데 거의 원가 수준이다. 등산객을 배려하는 맘 때문이다. 황토를 갖고 황토통오리구이도 별미로 낸다. 이 집 음식은 주인을 닮아 음식보다 꼭 ‘마음’ 같다. (053)981-0052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