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전국 맛집가이드북 낸 음식평론가 황광해씨

  • 이춘호
  • |
  • 입력 2014-12-12   |  발행일 2014-12-12 제41면   |  수정 2014-12-12
“막국수 같은 것은 하루 열한 집서 열한 그릇…목구멍서 냄새날 정도로 먹었다”
20141212
최근 한국 맛집 가이드북을 출간한 음식평론가 황광해씨. 그는 ‘식당주의 홍보맨’으로 전락한 악덕 푸드 블로거의 횡포로 인해 극도로 왜곡된 온라인 맛집 문화에 직격탄을 날렸다. 특히 남의 콘텐츠를 맘대로 베끼는 식당 취재 기자의 무책임한 기사의 폐단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음식평론가 황광해(57). 참 깐깐한 ‘나그네식객’이다.

그는 설렁탕의 유래를 찾기 위해 조선왕조실록을 샅샅이 뒤질 정도로 지독한 검증벽을 가졌다.

 

일식은 변하지 않고 한식은 변해
원칙지키며 변하는 게 오래 남아

호텔이든 영세업체든 식재료 무지
좋은 된장·간장·고추장 몰라
식재료가 엉터리니 양념 과다사용

대구경북 음식 엉망이라는 말은
자기 정체성을 모르기 때문이다
남을 따라하면 짝퉁이 되기 십상

잣대 없고 맛에 대한 정의도 없어
‘가봤다 푸드블로그’ 폐해 심각

 


그는 현재 채널A ‘먹거리X파일’의 착한식당과 MBC ‘찾아라 맛있는 TV’의 검증위원이다. 김순경, 주영하, 황교익, 박찬일, 박정배 등과 함께 서울 쪽에서‘먹방’(음식 관련 TV 프로그램) 시대 떠오르는 음식칼럼니스트다. 그런 그가 최근에 의미심장한 책을 펴냈다. 지난 30년간 찾은 전국의 3천500여 업소 중에서 엄선한 곳을 다룬 ‘한국 맛집 579’(토트)이다. 면류, 두부, 육류, 어류, 탕반류, 비빔밥류, 한정식 등을 도표로 정리했다. 숨겨진 전국 한식당 정보가 빼곡하다.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경향신문사에서 잔뼈가 굵었다. 80년대 바캉스 부록으로 전국의 맛집 시리즈를 낼 때 그는 전국을 아홉 번 정도 일주했다. 그때 안목이 생겼다. 현재 네이버 맛집 카페 ‘포크와 젓가락’의 매니저.

그가 이번 책을 통해 뭘 느꼈는지 전국 식도락·미식가와 식당주, 파워 푸드 블로거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지 알아봤다.


20141212
▲지금 맛집 신드롬이 일어나고 있는데 진짜 맛집이 있다고 생각하나.

“맛집은 분명히 있다. 맛집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인기 있는 집과 제대로 음식을 만드는 집이다. 진정한 맛집은 음식을 제대로 만들면서 인기도 있는 집이다. 음식을 진정성을 가지고 헌신적으로 만드는데 인기가 없는 집은 ‘언젠가는 알려질 맛집’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민폐 끼치는 식객과 먹방, 파워 푸드 블로거가 많은 것 같은데 이들의 허와 실에 대해 신랄하게 지적해달라.

“소비자들이 우선 문제다. 인스턴트 음식은 싫어하면서 정보는 공짜로,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인스턴트로 얻으려 한다. 노력하지 않고 간단하게 검색하여 가려고 하면 늘 당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철저하게 마케팅의 대상이 된다. 음식점에 제대로 다니지도 않고 한정된 곳만 다니는, 이른바 ‘가봤다 푸드블로그’의 폐해가 심각하다. 아무리 많은 곳을 가도 잣대도 없고 맛에 대한 정의도 없이 무작정 다닌다. 아무리 많이 가봐도 한 집도 제대로 모른다. 음식도 정확하게 모른 채 남의 말을 그대로 옮기니 문제다. 길을 잘못 알려줘도 문제인데 하물며 음식점 정보를 고의로 잘못 알려주면 큰 죄다. 그걸 모르니 문제다.”

▲식당 취재 기자도 문제가 많은 것 같다.

“젊은 기자들, 혹은 방송작가들은 음식의 원리를 전혀 모른다. 원본도 모르고 공부도 하지 않고 생각도 없으니 남의 콘텐츠를 아무 생각 없이 옮긴다. 늘 엉터리일 수밖에 없다. 무작정 검색하고 그대로 옮긴다. 틀린 내용이 인터넷에 지천이다. 그대로 옮긴다. 엉터리의 무한 재생산이다. 정보의 공유가 아니라 엉터리 정보, 짝퉁의 공유다.”

▲30년째 전국을 돌아다닌 소회를 밝혀달라.

“하루에 여러 끼 먹을 때가 있다. 막국수 같은 경우엔 하루에 열한 집에서 열한 그릇을 먹었다. 백숙이나 다른 음식도 곁들이니 나중에는 목구멍에서 냄새가 난다. 힘 들여서 60㎞를 갔는데 엉뚱한 음식을 만났을 때 지독하게 화가 난다. 시골 깊은 곳에서, 가령 남원의 내촌식당의 닭국 같은 아주 제대로 된 소박한 음식을 만났을 때, 나이 든 부부가 아주 제대로 음식 만드는 걸 보면 반갑고 짠하면서 아쉽다.”

▲한식 맛의 본질은 뭔가.

“프랑스 문화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말했다. ‘중국은 불맛, 일본은 칼맛, 한국은 삭힌 발효의 맛’이라고. 공부를 하다가 결국 어른들이 하는 말인 ‘음식은 장맛’이라는 표현을 되살렸다. 다시 말해 한식은 장맛이고 발효의 맛이다.”

▲어떤 식당이 흥하고 어떤 식당이 망하는가.

“음식 내공은 음식에 대한 진정성과 헌신에서 비롯된다. 일식은 변하지 않는 음식이고 한식은 변하는 음식이다. 원칙을 지키면서 변하는 음식이 오래 남는다.”

▲맛있는 식재료에서 이젠 건강한 식재료로 가야한다. 맛있는 식당에서도 식재료가 어떤 전처리를 거쳐 오는지는 솔직히 주인도 잘 모르고 있다.

“호텔의 식당이나 작은 영세업체나 모두 식재료를 정확하게 모른다. 제일 심각한 것은 소스와 양념이다. 대량생산된 제품의 뒷면을 잘 읽어보고 이해하는 이들이 거의 없다. 대부분은 균이 없고 안전한 제품일 뿐이지 좋은 제품, 잘 만든 양념이나 소스는 아닐 수도 있다. 역시 장의 문제다. 좋은 된장·간장·고추장을 모른다. 식재료보다 더 심각한 것이 양념이다. 양념을 왜 과다 사용하겠나. 식재료가 엉터리기 때문이다. 식품이 아니라 식품공학적으로 만든 제품이다.”

▲개인적으로 대구 음식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예전과 지금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대구는 유교 사회의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의 전통이 살아 있다. 조선시대 음식은 봉제사접빈객의 도구다. 결국 대구는 경북 북부의 전통을 물려받은 경상좌도의 중심이고 음식의 중심지였다. 그런데 ‘호남 음식은 맛있고, 대구경북 음식은 엉망’이라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자기 정체성을 모르기 때문이다. 앞으로 구심력을 가지고(경북의 음식 전통) 원심력(서울, 호남 등)을 찾는 것이 좋다. 구심력 없이 원심력만 가지면 결국 남을 따라하는 짝퉁이 되기 쉽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