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남의 차마고도 .8] 창고 숙성에 능숙한 차 상인이 빚어낸 풍미는 보이차 전체량의 극히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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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12-19   |  발행일 2014-12-19 제35면   |  수정 2015-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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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보이차는 같은 연대에 만들어졌을지라도 다른 향과 맛을 가진 것이 있다. 그것은 장기간 보존되면서 숙성되는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산지인 윈난성에서는 보이차를 오랜 세월 보존하는 경우가 적고, 대부분 생산 후 곧바로 출시된다. 기원전부터 존재했다고 여겨지는 차마고도의 교역로를 통해 몇 개월에 걸쳐서 카라반이 운반했던 보이차는 운반 도중에도 숙성되어 맛과 향의 변화가 일어났다. 차마고도 루터의 하나인 이무산(易武山)에는 1950년 이전부터 생차가 자연 발효되어 숙차가 된 것이 있었다.

명대의 기록에 의하면, 관문에서 징세되는 세율의 유리한 타이밍을 기다리기 위해서 창고에서 대량으로 보관하였다가 몇 년이나 출하를 기다린 상인도 있었다. 그러한 현상 때문에 정부가 차의 저장 금지령을 내리는 사태가 일어나기도 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발효차의 숙성을 통한 풍미를 자연스럽게 발견하였을 것이다.

17세기로 접어들자 서양과 차 무역을 시작하였고, 차를 싣고 남쪽 항구를 출발한 범선이 서양인의 수중에 닿는 데 2년이나 걸렸다는 기록이 있다. 무역풍에 의지한 해로는 동남아시아의 해협부근에 위치한 항구에서 풍향이 바뀌기를 반년이나 기다리기도 했다.

해운의 거점이 된 광둥·홍콩·마카오·말레이시아·싱가포르·인도네시아 등의 항구 일에 종사하고 있던 동남아시아의 화교인들에게 장기간 숙성된 풍미가 선호되었던 것이 우연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무역항으로 번창한 광둥이나 홍콩에는 음다(飮茶)의 습관이 있다. 매일 대량으로 차를 마시는 그 기호에, 순하게 숙성된 풍미의 보이차가 선호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1950년대의 홍콩에는 다루(茶樓·중국의 간단한 식사 레스토랑)의 붐이 일어났다. 당시 중국의 간단한 식사는 현대와 같은 요리보다 차가 주역이었다. 예를 들면 차 한 잔을 주문하면 점심을 무료로 두 가지를 선택할 수 있다고 하는 룰이 있었다고 한다. 다루에서는 맛있는 차를 겨루거나 품평회가 이루어져 차 상인들이 거기에 맞추어 상질의 보이차를 가지고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 무렵 중국에서는 사회주의 개혁이 농업에도 영향을 미쳐 윈난지역의 차 산업은 국가의 전매공사제가 되어 일괄구매 일괄판매의 대상이 되었다. 국영의 무역회사로부터 배급이라는 형태를 통하여 차 상인들에게 할당을 하여 수출을 했다. 수요가 있고 없음에 관계없이 소규모의 차 상인이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규모가 큰 창고에서의 보존이 필요했다.

주장 하구에 위치하는 아열대 기후의 광저우나 홍콩의 여름은 기온 30℃ 이상 습도 90℃ 이상의 날이 많아 상온의 건조한 곳에 두는 것만으로도 찻잎에는 습기가 스며든다. 그렇게 해서 수분을 포함한 찻잎에는 세 가지의 변화가 일어난다. 첫째는 찻잎의 성분변화가 천천히 진행된다. 둘째는 차의 맛을 좋게 하는 누룩곰팡이류(자낭균류)가 활동을 한다. 셋째는 여러 가지 균류가 번식을 하면서 향과 맛을 변화시킨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조건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해명되고 있지는 않다. 보이차가 발효되는 조건이 너무 다방면에 걸쳐 있기 때문에 응용 가능한 노하우가 확립되어 있지 않은 상태다. 따라서 현재까지도 사람의 경험이나 감에 의지하고 있다. 능숙하게 숙성시키는 차 상인이 있는 반면에 악취가 나게끔 숙성시키는 차 상인도 있다. 창고 숙성에 능숙한 차 상인이 빚어내기 시작하는 풍미는 보이차 전체량으로는 극히 소량으로 그 관능적인 맛은 보이차 애호가 사이에 구전되어 차 맛의 세계에 우아하고 아름다운 다양성을 주었다.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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