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흡연자의 자리

  • 박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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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12-20   |  발행일 2014-12-20 제23면   |  수정 2014-12-20 07:32
[자유성] 흡연자의 자리

담배 전쟁이다. 편의점 등 담배판매 가게는 손님에게 한 갑만 팔고 있고, 고객들은 더 내놓으라며 실랑이를 벌인다. 내년 1월1일부터 담배 한 갑이 2천500원에서 4천500원으로 오르기에 앞서 한 갑이라도 더 사놓으려는 흡연자들과 시세차익을 노린 담배판매업자들 간에 신경전이 고조되고 있다.

흡연자들이 보면 이번 담뱃값 인상은 느긋하게 기다리다 당한 꼴이다. 설마 2천원까지 올리겠나 하고 방심하다 허를 찔린 것이다.

10년전 상황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2004년 당시 정부는 2천원이던 담뱃값의 1천원 인상안을 내놓았다가 엄청난 저항에 부딪혔다. 당시 담뱃잎재배농민들이 항의시위를 하고, 국민여론도 악화됐다. 야당도 나서서 서민 기호품인 담뱃값 인상에 문제가 많다는 논리를 폈다. 소설가들은 글 쓸 때 유일한 벗이 담배라면서 담뱃값 인상에 반대하는 규탄집회를 갖기도 했다. 예상 밖의 저항에 정부는 500원만 인상해 갑당 2천500원으로 정했다. 돌이켜보면 담뱃값을 올리려는 정부와 이를 반대하는 흡연자들간에 명분론과 함께 다소 낭만적인 분위기도 느껴진다.

올해는 무려 2천원 인상인데도 별다른 저항도 없었다. 10년전부터 계속돼온 금연정책이 강도를 더하면서 담배는 사회악이요, 담배를 끊지 못한 사람은 사회적 낙오자라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과거엔 ‘담배를 끊은 사람은 독하니 사귀지 말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요즘은 ‘담배도 끊지 못할 정도로 우유부단하거나 결심이 약한 사람은 사귀지도 말라’는 말로 180도 바뀌었다. 금연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한 갑에 1만원까지 올려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10년 사이 흡연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그만큼 달라졌다. 내년이면 담뱃값 2천원 인상에다 금연장소 확대로 골초들의 처지는 더 불쌍하게 됐다. 하루 한 갑피우면 1년 담뱃값이 121만원이라고 한다. 그 돈이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여유있는 흡연자는 그리 많지 않다. ‘작심삼일’로 그치더라도 금연의 결단을 내려봄이 어떨까. 박종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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