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작은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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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12-20   |  발행일 2014-12-20 제23면   |  수정 2014-12-20
[토요단상] 작은 소망

대구, 문학의 도시라는
옛 명성 되찾고 시민의
정서순화 등을 위해서는
생활 주변에서 문학을
쉽게 접하는 환경 만들어야


딩동, 딩동. 전화기에서 메시지 음이 울렸다. “선생님의 시가 침산동 어느 버스정류장에 있네요. 무척 반가워서 몇 번 읽고 이렇게 사진 찍어 보냅니다”하고 버스정류장 풍경과 시화를 전송해 왔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대구시내 버스정류장에 시화가 붙어있는 것을 보았다.

10여 년 전에는 아주 드물게 시만 적혀있더니 요사이는 정류장마다 그림과 시가 어우러진 시화를 흔히 볼 수 있다. 서울은 지하철 역사에 전시할 시를 전국적으로 공개 모집해 선정된 작품을 전광판을 통해 보여준다. 개성이 있고 포근한 느낌을 주는 서정시가 주를 이룬다. 그것을 감상하다보면 어느새 고향 가는 차를 기다리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기도 하고 이곳이 고향마을 같은 친근감이 들어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다. 잠깐의 시간동안이지만 차를 타고 가는 내내 그 여운이 길게 가슴에 남아있다. 이처럼 한 편의 시가 시민들의 정서를 맑고 평화롭게 하는 것이다.

선진국일수록 도시의 문화수준에 따라 시민들의 의식수준도 변한다. 몇 년 전만하더라도 반월당 지하철 역사에 한 편의 시가 커다랗게 광고판처럼 쓰여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 자리에는 상업성 광고들이 차지하고 있다. 대구에는 문인이 1천명을 넘어서고 있다. 그리고 문학의 도시라는 명성에 걸맞게 유명한 작가도 많다. 이처럼 풍부한 자원을 활용해 예전의 명성을 다시 찾을 수 있게 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바로 우리 생활 주변에서 문학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 아닐까 싶다.

달서구에 가면 동네 공원에 시화를 전시해둔 곳이 몇 군데 있다. 이리저리 산책을 하면서 시를 감상하는 것도 마음을 다스리고 정서를 순화시키는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앞으로의 시대는 문화가 주류를 이루고 도시의 수준도 문화수준으로 평가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이제 곧 도시철도 3호선도 개통된다. 대구문인의 주옥같은 작품이 있는 시화로 새로운 역사를 장식하고, 1, 2호선에 있던 오래된 작품도 새롭게 단장, 시민의 행복지수를 높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아직 변두리 버스정류장은 이런 혜택이 아직 적은 것 같아 좀 아쉽다. 문화적 혜택이 골고루 나눠지도록 외곽지 버스종점까지도 시화로 장식하면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대구시와 지역의 문인단체 등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면 시민의 정서함양과 깨끗한 도시 미관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마련될 수도 있을 것이다.

대구 문인단체에서 작품을 제공하면 미술계 등 다른 예술 장르에서 도와주는 등을 통해 시화를 부착하면 될 것이다. 이에 따르는 경제적인 문제해결은 지역의 회사와 제휴해 시화에 광고를 게재하면 회사와 대구시의 이미지, 그리고 대구문인들의 위상이 한 단계 올라갈 것이란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친다.

예순에 가까운 어느 늦깎이 시인이 “선생님, 버스정류장에 시는 우야마 거는데요”하면서 말을 건넨다. 자식과 손자 손녀, 그리고 이웃 사람들이 다 즐길 수 있는 시를 자기가 사는 동네 정류장에 꼭 거는 게 마지막 작은 소망이라고 했다. 그렇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를 쓰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가족이 보고 우리 이웃이 읽어주는 시를 쓰는 동네 시인이라도 되고 싶다는 순수한 소망이다. 새 시장님께서 문화 융성을 염두에 두고 계시니 잘 될 것으로 기대가 된다.

꼭 일류 잡지에 글이 실리는 것만이 문인의 자존감과 위상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이 보고 즐길 수 있는 곳에 전시된 시구 하나가 대구시민들에게 더 유익하고 정서적인 면에서도 아름다운 마음씨를 갖게 하는 촉매제다.

우리 주위에 전시된 시화작품을 그냥 지나치지 말고 꼭 읽어본다면 구겨진 마음이 펴질 것이고 때 묻은 감정이 씻어질 것이다. 한 해를 되돌아보는 12월이다. 늦깎이 시인이 가진 소박한 소망이 내년에는 꼭 이루어지기를 기대해본다.공영구 대구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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