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우문현답(愚問賢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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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12-22 07:53  |  수정 2014-12-22 07:53  |  발행일 2014-12-22 제15면
[행복한 교육] 우문현답(愚問賢答)

우문현답이라는 한자성어가 있다. 말 그대로 바보 같은 질문(愚問)에 대해 현명한 대답(賢答)을 하거나, 문제의 본질을 짚지 못한 질문을 받고도 바른 답변을 할 때 쓰는 표현이다. 학교에 있으면 가끔 아이들의 창의적인 생각이나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우문현답을 들을 때가 있다.

쓸어도 쓸어도 낙엽이 쌓이던 어느 가을날, 청소하는 아이들에게 공부하는 게 더 어려운지 낙엽 쓸어내는 게 더 어려운지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흔하디 흔한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식의 우문. 아이들은 저마다 공부가 더 어렵다, 낙엽 쓸어내는 게 더 어렵다 논쟁을 벌였다. 그때 미망을 깨우는 포효처럼 내 귓가에 들려온 말, “그야 당연히 낙엽 쓸어내는 게 더 어렵죠! 공부는 하는 척이라도 할 수 있지만 낙엽은 떨어지는 척할 수가 없잖아요?”

낙엽은 떨어지는 척할 수 없고 삶은 사는 척할 수 없다는, 자연과 인생의 이치를 벌써 깨우친 중학교 2학년 학생의 현답이었다.

그런데 학교 현장에서는 이 우문현답이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말로 재해석되어 애용되는데, 곰곰이 생각할수록 현답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며칠 전에는 근무하는 학교의 전 교직원과 함께 워크숍을 다녀왔다. 이렇게 바쁜 학년말에 전 교사가 참여하는 워크숍을, 그것도 1박2일로 계획한 것이 다소 무모한 도전처럼 보여 사실 시작하기 전에는 여러 걱정이 앞섰다. 다들 귀한 시간을 내주었는데 늘 하던 업무 전달식으로 시간을 보내게 되면 어쩌나, ‘이런 걸 왜 하지?’라며 의미 없는 행위로 치부해 버리면 어떡하나 등.

더구나 학교교육이나 학사일정을 계획하는 일에 함께 모여 고민하고 논의하면서 의견을 모아가는 과정을 겪어보지 못한 이들은 도리어 토론하고 협의하는 일련의 과정을 어색해 하거나 귀찮아 하는 경향도 있어 때로는 교육공동체라는 말이 허울뿐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쓸데없는 기우였음을, 정말로 현장에서 판을 펼쳐만 놓으면 선생님들은 반짝이는 정답을 수도 없이 쏟아냄을 이번에도 깨달았다. 생각하고 판단하고 의견을 내놓을 시간을 기다려 주기만 해도 새로운 아이디어들은 넘쳐났다.

벼룩의 자기 제한이라는 게 있다.

벼룩 몇 마리를 빈 어항에 넣는다. 어항의 운두는 벼룩이 충분히 뛰어넘을 수 있는 높이다. 그 다음에는 어항 입구를 막기 위해 유리판을 올려놓는다. 벼룩들은 톡톡 튀어 유리판에 부딪힌다. 그러다가 자꾸 부딪혀서 아프니까 유리판 바로 밑까지만 올라가도록 도약을 조절한다. 한 시간쯤 지나면 단 한 마리의 벼룩도 유리판에 부딪히지 않는다. 모두가 천장에 닿기 바로 직전 높이까지만 튀어 오르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유리판을 치워도 벼룩들은 마치 어항이 여전히 막혀있기라도 한 것처럼 계속 제한된 높이로 튀어 오른다.

지금 학교에는 분명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유리판이 놓여 있는지 치워져 있는지 위를 바라보지는 않고, 그냥 습관적으로 튀어 오르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를 경계하고 되돌아보는 연말이 되기를 바란다.

장성보<성서중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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