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과 책상사이] 크리스마스 카드와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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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12-22 07:56  |  수정 2014-12-22 07:56  |  발행일 2014-12-22 제18면
[밥상과 책상사이] 크리스마스 카드와 실

시골 외딴 마을 고요한 백설의 풍경 속 조그마한 교회나 성당이 위압적이지 않은 높이로 아담하게 서있다. 첨탑 십자가 끝에는 빨간 별이 아기 예수를 기다리며 깜빡이고 있다. 교회 앞마당 눈사람 곁에는 때때옷을 곱게 차려입은 여자아이와 남자아이가 공손한 자세로 인사를 하고, 교회 뒤쪽 먼 곳에는 사슴이 끄는 썰매를 타고 산타 할아버지가 다가오고 있다.

크리스마스 카드가 보여주는 정경은 평화롭고 아름답다. 우리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는 성탄 축하뿐만 아니라, 종교를 떠나 새해 연하장의 용도도 함께 지니고 있다.

부모님 세대는 크리스마스 카드 겉봉에 우표와 함께 크리스마스 실(seal)을 붙였다. 우표와 유사한 형태로 발행되지만 우편 요금과는 관계 없다. 카드를 보내는 사람이 작은 기부를 했다는 증표다.

크리스마스 실은 1904년 결핵 퇴치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덴마크에서 처음 발행되었고,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우리나라에서는 1932년 캐나다인 선교사 로제타 셔우드 홀에 의해 처음 발행되었다. 스마트폰이나 전자우편이 주된 의사소통 수단이 되고 있는 요즘, 크리스마스 실에 대한 관심은 크게 줄었다. 올해도 크리스마스 실이 판매되고 있지만, 이를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우리나라는 결핵 발생률이 인구 10만명당 100명꼴로 OECD 34개국 중 1위다. 크리스마스 실을 산다는 것은 결핵의 위험성을 새삼 인식하면서,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는 자부심을 동시에 가지게 해준다.

어느 사회학자의 주장처럼 공동체로서의 우리 사회는 지금 위기에 처해 있다. 1997년 IMF외환위기 후 본격화된 신자유주의는 우리로 하여금 만인에 대한 만인의 경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강요했다.

우리 사회는 지금 끝이 안 보이는 불황의 터널에 갇혀 있으며, 수많은 사람이 다양한 걱정과 불안 속에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20대는 취업불안, 30~40대는 상시적인 구조조정에 따른 퇴출 불안, 50대 이후는 노후 불안이 심리 근저에 깔려있다 보니, 어려운 이웃을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사치로 간주되고, 그런 것은 여유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라는 생각이 팽배해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혼자서는 행복할 수 없다. 내가 지금 다소 어렵더라도 나보다 힘든 사람을 도울 줄 아는 존재가 인간이다. 크리스마스를 전후한 시기는 학생들이 기말시험을 끝내고 다소 숨을 돌리는 때다. 부모님들이 미술시간에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었던 것처럼 우리 아이들도 카드나 연하장을 직접 만들어, 겉봉에 크리스마스 실을 붙여 친구나 선생님께 보내게 해보자. 차갑고 냉정한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아날로그적인 감수성과 따뜻한 사랑의 손길은 여전히 소중하고 가치 있는 미덕이다. 사랑의 온기가 우리 사회의 가장 구석진 곳까지 전달되어, 모두에게 따뜻한 성탄절이 되길 소망해 본다.

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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