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영의 포토 바이킹 .2] 칠곡군 동명면 동명사거리∼팔공산 한티재 휴게소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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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1-16   |  발행일 2015-01-16 제40면   |  수정 2015-01-30
자동차 길에서 순례자의 길로 자전거 길로 거듭날 때
한티재 ‘한국의 아름다운 길’은 비로소 완성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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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티재는 추위에 떨고 있는 것일까? 여름날 한티재로 오르는 그 많았던 자전거는 정초에 단 한대도 지나가지 않았다. 인적 끊긴 한티재 고갯길에서 길 위에 비친 자전거 타는 인간의 그림자만한 아름다움을 얻어내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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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숨을 몰아가며 한티재휴게소에 올라 조망한 운해.



가장자리 넓은 팔공산 4차 순환로
훗날 자전거가 달릴 걸 예상한걸까
자전거와 보행자를 생각하는
도로건설 귀감으로 손색없다

기성리서 한티재까지 총 6.51㎞
차로 10분이면 도착하는 고갯길
1시간30분 넘게 땀 흘리며 오르는
자전거 탄 인간의 몸짓은
오체투지하는 순례자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한티재는 팔공산보다 높은 고갯길이다! 자전거를 타고 헐티재와 쌍벽을 이루는 한티재 고갯길을 넘어선다는 것은 성취감 그 자체다. 그래, 산은 오르는 자의 것이고 길은 나서는 자의 것이다!

한티재 가는 길은 여러 갈래다. 나는 산격시장~검단동 대구종합유통단지~산격대교~서변동 쪽을 택했다. 동변동과 서변동 사이엔 동화천이 흐르고, 방향을 연경동으로 틀면 지묘동으로 이어진다. 이 길로도 파계재를 넘어 한티재의 입구에 이르는 기성리에 도착할 수 있으나, 주행 안전도가 높은 국우터널을 통과하기로 했다. 국우터널 출구에서 칠곡 3지구 진입로와 50사단 쪽 길 분기지점에선 앞서가는 자전거를 깔아뭉갤 속도로 추월하는 운전자들 때문에 아찔했다. 아무쪼록 자동차는 브레이크 때문에 더 빨리 달릴 수 있다는 사실을 유념하고 배려 있는 운행을 부탁드린다.

50사단 정문 지나 북진하면 대구 도시철 3호선 종점이 나오고 조금 더 가면 국우동에 도착한다. 반포천에서 흐르는 물이 들을 적시어 국가의 살림을 넉넉하게 한다는 의미에서 국우동이라고 하는데 옛 이름은 아홉 마을이 있어서 ‘구우리’였다고 한다. 이 마을과 칠곡로를 연결하는 팔거교를 지나면 팔거천이 젖은 몸으로 흐르고 있다. 참새들은 떼를 지어 군무하듯 날며 반기고, 팔거천 그 마르지 않고 흐르는 그 얕은 물 속에서 청둥오리들은 본능의 몸짓으로 먹이를 쫓는지 가족여행을 온 건지 철퍼덕거리며 노닐고 있었다. 팔거천은 숲이나 자연보다 인간의 편의를 더 고려하고 새들보다 더 많은 인간들이 서식하는 생태하천으로 거듭난 것 같았다.

팔거천을 지나 동명사거리로 가는 길엔 자전거 타는 사람을 위해 닦아놓은 전용도로가 있는데, 연속성이 없고 속도를 좀 내려고 하면 끊어진다. 송림사로 향하는 동명사거리에 이르면 화사한 단풍빛을 하고 들어선 아웃도어업체들이 눈길을 끈다.

아웃도어 매장을 끼고 송림사 쪽으로 돌면 길 건너 마당 너른 동명천주교회가 순례자의 길 출발선처럼 눈에 들어온다. 칠곡군은 송림저수지 앞에 호국정신을 자랑하는 대형간판을 내걸어놓았다. 오른쪽으로 칠곡의 명품 산악자전거 코스인 도덕산~명봉산으로 들어가는 천년고찰 나한도량 도덕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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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암을 차고 나가면 평지길에 가깝다. 팔공산 4차 순환도로로 오르는 길은 가장자리가 넓다. 경북도의 길 인심이 후해서 좋다. 훗날 자전거가 달릴 걸 예측하고 가장자리를 확보해 두었는지 알 수 없으나 차량소통을 위해 길을 닦더라도 덤으로 다닐 자전거와 보행자를 생각하는 도로건설의 귀감으로 손색이 없어보인다.

속도를 붙여 달리면 송림사로 들어가는 구덕리가 나온다. 신호를 받아서 좌회전해서 쭉 들어가면 마을회관이 있고 우회전하면 송림사다. 원래 소나무가 울창해서 송림사라는 이름을 얻었을텐데, 몇 그루 남지않은 소나무숲보다 벽돌탑(전탑)이 더 우람해 보였다. 산세를 보니 5층 벽돌탑이 먼저일지 대웅전이 먼저일지 궁금해졌다. 5층탑 앞엔 글씨가 너덜너덜해진 안내판이 알아먹기 어렵게 서 있었다. 문화재의 가치를 배우고 익히기 위해 부모님을 따라나섰을 아이들이 연신 뛰어다니며 노는 걸 보면서 잘 배우고 해박한 교수님의 문장이 아니라 호기심 푸는 낙으로 배우는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작성될 필요성을 느꼈다.

한국 건축을 개념적으로 풀어 세계 최고로 만든 건축가 승효상은 ‘비움’의 건축 미학을 불교의 본질이라고 꼽았다. 그렇지만 온갖 불사 프로젝트로 지어진 건축물들로 마당이 좁아진 송림사에서 ‘비움의 미학’을 느낄 수 없어 안타까웠다. 한국 불교가 남는 땅 위에 ‘채움의 미학’을 실천하면서 겨레의 전통미학이 파괴되는 것 같아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 주길 바라는 불심이 일었다.

보고 즐길 문화재가 많아 머무르는 시간을 붙들고 늘어지는 ‘채움’의 송림사를 애써 빠져 나와 한티재 고갯길의 입구인 기성리로 향했다. 경사가 가파르지 않아 쉬엄쉬엄 다가가니 통일신라 시대 3층석탑이 있는 안내판이 보였다. 고생 시작이라는 문구로 읽혔다. 총 6.51㎞ 고갯길을 차로 10분이면 도착하는데, 1시간30분 넘게 땀을 뻘뻘 흘리며 한티로 향하는 자전거 탄 인간의 몸짓은 오체투지하는 순례자와 다르지 않으리라.

‘팔공산 한티재’ 고갯길은 팔공산에서 가산으로 이어지는 해발고도 700m 산줄기에 있다. 한티는 높고 큰 고개를 뜻하며 고개를 강조해 재가 붙은 겹말이다. 칠곡군 동명면 득명리와 군위군 부계면 남산리 사이를 연결하는 약 20㎞ 길이의 도로로 1993년에 개통되었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뽑힌 한티재는 태생이 지역 탐방객의 편의를 위하여 건설되어 자동차문화가 잉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더 빨리 가고자 하는 운전자들은 급커브와 굴곡 구간이 많고 경사도가 높아 속도감 떨어지는 이 길을 단축하기 위해 군위군 부계면 창평리에서 칠곡군 동명면 기성리 구간의 4차로 확장공사를 이끌어냈다. 특히 매년 겨울철 눈 때문에 도로가 차단돼 대안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한티재터널이 개통되면 현재 한티재 고갯길(21.3㎞)은 10㎞ 정도 줄어들고, 자동차 주행 시간도 36분에서 12분으로 짧아질 전망이다. 길 없던 산마루에 드라이브를 하기 위해 조성된 팔공산 한티재 고갯길은 신축 중인 한티재터널로 인해 향후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이 길과 더불어 먹고 사는 사람들은 걱정이 태산 같다. 한티재는 문명이 교차되는 고갯마루이기도 하다.

자동차 운전자들은 질러가기를 좋아하지만, 자전거 길은 꼬불꼬불 느릿느릿 ‘까꼬막’이라도 괜찮아한다. ‘꼽사리 낑기더라도’ 달릴 수만 있다면 길을 탓하지 않는다.

길 없던 피난촌에 길이 생기고 레스토랑 및 방갈로가 있는 식당들이 생겨나 가족여행과 데이트를 즐기는 행락객들의 발길이 이어져 팔공산테마리조트를 형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티재로 오르는 길은 순례자의 길이다. 팔공산경북도립공원을 지나 한티재의 8부선에 숨이 멎을 만해질 때 나타나는 곳이 한티성지이다. 한티재 길이 생기기 전 이 산촌엔 한티마을이 있었다. 1815년 을해박해와 1827년 정해박해 때 경상도 북부지방에서 천주교 신자들이 붙잡혀서 대구감영에 끌려와 경상감사한테 재판을 받고 옥에 갇혔다. 바로 그 신앙의 자유를 실천한 양심수들을 옥바라지하기 위해 가족들이 뒤따라왔다가 팔공산 중턱에 숨어 살게 된 곳이 한티 교우촌이었다. 숨어살다가 잡혀 죽고 불살라지고 묻힌 순교자들의 삶터에 성지가 조성된 건 드라마틱했다. 한티공소를 등지고 바라본 팔공산 조망은 슬프게도 아름다웠다. 다시 돌아나가면서 되오를 고생을 생각하더라도 쉬어갈만한 천혜의 은둔지에 한티성지가 있어 순례자의 발도장을 찍게 하고 따로 노는 두 손을 모으게 한다. 불태워 없애도 되살아난 부활의 한티성지에서 쉬어가는 기쁨은 넘치도록 컸다.

겨울 라이딩은 오르막길이 좋고 여름 라이딩은 내리막길이 좋다. 한티성지를 벗어나오면 한티휴게소로 향하는 ‘잔차족’들에게 마지막 고비가 도사린다. 일명 깔딱고개로 알려진 이 구간은 그러나, 저어 올라온 경험으로 탄력을 받는다. 정상이 힘들지 않듯 8부 9부 능선도 그런가 보다. 깔딱고개는 불교의 산문으로 치자면 해탈문에 해당한다 하겠다. 이 길을 기어오르는 자전거에게 깨달음 있어야 하리니! 한티재에선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잘 쉬었다 오르는 지혜에 있다는 것을 배우는 깨달음의 시간이다. 한티휴게소는 고통이 멎는 정상부이고 성취감이 폭발하는 순간이다. 부계로든 동명으로든 내려갈 일만 남은 곳에서 내 오래된 그리움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멈춰 섰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 힘들면 끌고 오르는 한티재 고갯길에서, 나는 자동차의 길에서 순례자의 길이 혼재된 한티재는 자전거길로 거듭날 때 한국의 아름다운 길로 완성되리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포토바이킹은 사라져 가는 길과 함께 할 것이라는 마음으로 달려간다.

인물 갤러리 ‘이끔빛’ 대표 newspd@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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