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GEO] 대구 구암동고분·팔거산성 르포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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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1-23   |  발행일 2015-01-23 제36면   |  수정 2015-01-23
1500년 된 고분 200여기, 당국 수십년 손놓고 있는 사이 도굴·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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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북구 구암동 함지고 동편 함지산 서편 계곡 양쪽 구릉에는 약 150기의 고분군이 정상부 팔거산성까지 이어져 있다. 하지만 1천여년간 방치돼 지금은 흔적조차 희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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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규 영남문화재연구원장이 고분에 남아있는 도굴 흔적을 가리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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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을 훼손시켜 등산로를 낸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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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암동고분군
뭉개서 밭만들고 돌은 축대로 사용
일부 고분 위에는 민간의 묘 조성
고분을 가로질러 등산로·운동시설

팔거산성
대구 북쪽 관문 지키던 대표적 城
일제강점기 조성된 듯한 공동묘지
길이 1.5㎞ 성벽 수풀·잡목에 덮여

◆구암동고분군


“금호강과 낙동강을 낀 지금의 대구지역 일대에는 5~6세기 삼국시대에 축조된 달성고분군, 불로동고분군, 화원 성산리고분군 등이 있습니다. 이곳 칠곡 구암동고분군과 팔거산성도 당시에 조성된 세력의 무덤과 유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난 15일, 박승규 영남문화재연구원장과 기자는 함지고(대구시 북구 구암동) 동편 구릉을 따라 함지산(일명 반티산) 정상부까지 이어져 있는 구암동고분군을 답사했다. 고분군이 밀집해있는 능선은 비교적 가파르다. 약 20분만 오르면 구암어린이집에서 출발하는 등산로와 만나 팔거산성까지 갈 수 있다. 빠른 걸음으로 가면 총 30분만 가면 도달한다.

팔거산성 서남쪽 계곡을 중심으로 양쪽 경사면에는 크고 작은 150여기의 삼국시대 고분군이 능선을 따라 발견된다. 하지만 상태는 극히 불량하다. 수십 년 수령의 아카시아와 굴참나무 등이 고분군 위에 전주처럼 박혀 있다. 무덤 위에는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있어 겨울이 아니면 녹음에 가려 무덤인지 구릉인지 구별이 불가능할 듯하다. 봉분마다 숨구멍처럼 도굴의 흔적이 엿보인다. 일부 도굴된 부분은 붕괴됐다. 작은 구릉에 방공호를 파 놓았다고 해도 믿을 것 같다.

1천500년이나 된 고분군이 이렇게 방치된 이유는 무엇일까.

“달성고분군과 불로고분군 등은 일제강점기 일제가 발굴을 시도했습니다. 구암동고분군은 1971년 문화재관리국에서 발행한 전국 문화유적총람에 기록돼 있습니다. 75년 영남대에서 구암동고분군 중 제56호분 1기만 발굴한 뒤 3년 후 조사보고서를 냈는데, 보고서에 따르면 총 157기의 고분군이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함지산 서북쪽 구릉과 미처 확인하지 못한 고분을 합하면 200기는 훨씬 넘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당시 56호분에서는 금동허리띠조각, 손칼 등의 철기류와 재갈 등 마구류, 굽다리접시·유대발형토기 등의 토기류가 발굴됐다.

하지만 구암동고분군은 78년 이후 학계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박 원장은 일제강점기부터 지금까지 수없이 도굴이 자행돼왔지만 국가도, 시도, 구청도 손을 놓고 있어 이렇게 훼손됐다고 했다.

“이곳은 대부분의 대구분지 일대에서 발견된 봉토분과 달리 석곽을 덮은 적석분입니다. 도굴을 하려 해도 워낙 큰 돌이 쌓여있어 아래 부분까지 세밀하게 도굴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이 고분은 팔거산성과 세트를 이루는 유적으로 칠곡의 넓은 들판을 무대로 활동한 세력의 무덤입니다.”

영남대가 조사한 56호분 앞 일대 고분은 이미 훼손될 대로 훼손된 상태다. 고분을 뭉개 밭으로 이용하거나 고분에서 뺀 돌을 이용해 밭의 축대로 이용하고 있었다. 일부는 고분 위에 민묘까지 만들었다.

구암어린이집에서 출발한 등산로와 만나는 지점 좌우에도 고분군이 낮게 줄지어 팔거산성 정상부까지 이어져 있다. 사람들이 고대분묘인 줄 모르고 무덤을 가로질러 등산로를 냈다. 일부 운동시설도 고분군 위에 있다. 등산로와 운동시설 모두 사람의 편의만 생각했다.

“운암지에서 출발하는 함지산 등산로보다 이곳은 좀 음산한 분위기가 나요.”

기자가 한 등산객에게 이곳이 어떤 곳인지 물어보자 한 대답이다. 등산객은 좌우에 있는 구릉이 무덤인 줄 모르고 있었다. 등산로 주변에서는 토기와 기와파편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팔거산성

팔거산성에 오르자 넓은 평탄지가 나온다. 산성 들머리 표지판에는 88년 대구시가 산성을 기념물 제6호로 지정했다고 나와 있다. 박 원장에 따르면 산성의 주 출입구는 남문인데, 함지산 서쪽 계곡을 따라 오르면 가장 가깝다고 했다.

고위평탄면에는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수백 기의 공동묘지가 있다. 대부분의 분묘는 후손조차 찾지 않는 무덤인 듯 황량하다. 봉토가 덮여있는 일부 무덤은 멧돼지 놀이터가 돼 파헤쳐져 있었다.

박 원장이 “몇 년 전까지 버드나무숲이 산성 안에 우거져 있었던 것으로 봐 음마지나 우물이 존재했던 것으로 본다”고 했다.

서남쪽 성벽은 높이 5m 내외로 수풀과 잡목으로 덮여있다. 치를 비롯해 정상까지 성벽의 흔적이 뚜렷이 확인된다. 토석혼축으로 쌓았으며 길이는 1.5㎞다. 북쪽은 급경사로 절벽이다. 산성이 정비되면 망루를 복원해도 될 듯하다. 함지산 정상에 서면 금호강과 낙동강이 보이고 북쪽으로 가산산성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헬기장도 있다. 팔거산성은 사방으로 조망이 되는 대구의 북쪽 관문을 지키는 대표적인 성이다.

“이곳엔 6·25전쟁 당시 미군의 포병대가 있었던 곳입니다. 여기서 다부동까지 포를 쐈지요.”

산성의 북쪽은 함지산 정상으로 향하는 등산로다. 하산할 땐 구암어린이집 방향 등산로를 택했다. 오를 때 함지산 서편 계곡부 구릉에 있던 고분군보다 줄지어 있는 무덤의 크기는 작다. 이쪽 등산로는 무덤을 마구 밟고 지나가는 길이다. 등산로 들머리에 ‘이곳은 삼국시대 산성으로 귀중한 문화재이다. 허가 없이 무덤에서 유물을 발굴, 훼손하거나 도굴, 유출하면 문화재보호법 82조에 의해 5년 이상 유기징역에 처한다. 대구시장 백’이라는 표지판이 있다. 하지만 고분군을 훼손하면서 등산로를 낸 대구시의 원죄는 어떻게 할 것인가.

박 원장은 “만약 고분군이 불로동고분군이나 고령 지산동고분군처럼 정비된다면 이곳 등산로는 폐쇄해야 마땅하다”고 밝혔다. 그는 또 “함지산 문화유산 이야기를 통한 현장학습, 팔거역사문화관, 유적공원 등을 조성해 구암동고분군과 팔거산성이 칠곡의 뿌리가 됨을 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지난해 12월 칠곡향교에서 홍의락 국회의원 주최로 ‘팔거산성 구암동 고분군 복원, 함지산 새롭게 바라보기’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 참석한 배광식 북구청장은 “2015년 2천200만원을 들여 구암동고분군과 팔거산성 일대 지표조사를 한 뒤 이 일대 복원 계획을 대구시에 전달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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