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만큼 했는데'…한평생 장애언니 돌본 20대 자살

  • 입력 2015-01-26 21:25  |  수정 2015-01-26 21:25  |  발행일 2015-01-26 제1면
유서에 '지쳤다. 장기 기증하고 월세 보증금 사회에 환원'

일생 장애인 언니를 보살피며 삶을 버텨온 20대 여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류씨는 숨지기 전 장애인 언니와 함께 세상을 떠나고자 수차례 자살시도를 했으나 주위로부터 아무런 보살핌을 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4일 오전 9시 50분께 대구 수성구 한 식당에 주차된 EF쏘나타 승용차에서 번개탄을 피워놓은 류모(28·여)씨를 식당 주인이 발견했다.

    차창을 두들겨도 인기척이 없자 식당 주인은 곧장 신고를 했다. 현장에 도착한 소방구조대가 3분 만에 차 문을 열었지만 운전석에 앉은 류씨는 조수석 방향으로 쓰러진 채 이미 숨진 상태였다.

    류씨는 휴대전화 메모장에 유서를 남겼다. 메모장에는 '할 만큼 했는데 지쳐서 그런다. 내가 죽더라도 언니는 좋은 시설보호소에 보내주세요. 장기는 다 기증하고 월세 보증금도 사회에 환원하길 바란다'고 적었다.

    류씨는 밤낮으로 마트에서 일하며 지적장애 1급인 언니(31)를 거의 한평생 돌봤다.

    갓난아기 시절인 1987년 아버지를 여의고, 유아기 때인 1991년 재가한 어머니는 연락이 끊겼다.

    자신과 언니를 키워준 할머니가 지난해 세상을 떠나자 홀로 언니를 챙겼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한때 삼촌 부부와 함께 살기도 했지만 언니가 대구에  돌아가고 싶다고 해 다시 대구로 돌아왔다.

    2000년 8월 언니가 기초생활 수급대상자로서 선정돼 복지 혜택을 받았으나 유일한 가족인 류씨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류씨는 홀로 가장 노릇을 하며 언니를 보살필 수 없게 되자 그를 시설보호소에 보냈다. 때마다 언니는 동생과 함께 살고 싶다며 집으로 돌아왔다.

    기초생활 수급자인 언니는 매달 최저 생계비를 지원받고, 장애인 시설에 입소할 수 있다.

    장애인이기 때문에, 장애인 복지시설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주민 이모(41·여)씨는 "독거노인처럼 가정방문 돌봄 서비스라도 받았으면 류씨가 죽지 않았을텐데…"라며 안타까워했다.

    류씨는 생계 때문에 힘들어도 꿋꿋이 살았다고 지인들은 입을 모았다.

    언니와 함께 생활한 원룸 월세는 3년간 밀려본 적이 없어 오히려 월세가 내려가기도 했다.

    삼촌이 수차례 함께 살자고 권했으나 "괜찮다. 우리는 신경 쓰지 말라"며  도리어 삼촌 부부를 걱정했다.

    그러나 결국 벼랑 끝에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지난달 월세 36만원은 내지 못했다.

    도시가스 사용 요금과 카드 할부 값 30여만원이 쌓였다. 자동차 보험이  만기되고 각종 통지서가 날라왔다.

    류씨는 최근 언니와의 동반자살도 수차례 시도한 것으로 조사됐다.

    세상을 등지기 사흘 전인 21일엔 집에서 연탄을 피웠다가 언니가 살려달라며 창가에서 소리치는 바람에 병원에 실려가 목숨을 건졌다.

    류씨 언니는 경찰조사에서 "동생이 높은 곳에서 같이 뛰어내리자고 했지만 죽기싫어서 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경찰 한 관계자는 "류씨 언니가 평소 양손을 떨지만 동반자살을 거부하는  의사표현을 확실히 하자 류씨가 차마 같이 죽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마지막 가는 길 류씨는 자신의 장기가 기증되길 바랐지만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류씨 언니는 타지에 사는 삼촌이 보살피고 있다.

    류씨 자매의 사연이 알려지자 지역 장애인 자립센터 등지에서 언니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묻는 문의가 잇따랐다.

    자매가 지낸 원룸 관리인은 장례가 끝나고 유가족이 찾아오는 대로 원룸 보증금 500만원을 전하고자 기다리고 있다.

    그는 류씨에 대해 "참 괜찮은 아가씨였다. 항상 잘 지내 보여 힘든 상황인지 알아채지 못했다"고 말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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