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 씨가 말랐다” 눈물의 낙동강 어부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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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1-30   |  발행일 2015-01-30 제33면   |  수정 2015-01-30
洑 생긴 후 어획량 급감…폐업해야 할 판
20150130
낙동강 고령군 다산면 일대에서 물고기잡이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전상기씨가 지난 23일 강에 설치한 통발을 힘겹게 들어올리고 있다.

‘밤 고요하고 물결 차가우니 고기 물리지 않아 부질없이 온 배 가득한 달빛만 싣고 오네./닻 디여라 닻 디여라 자그만 다북쑥에 배 매여 두자꾸나./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낙동강변에 살면서 어부의 삶을 노래한 농암 이현보(1467~1555)의 ‘어부가’ 가운데 한 작품이다. 농암이 살던 안동지역에선 낙동강 어부를 ‘어뱅이’라 부르기도 했다. 어뱅이는 통발과 사발, 명주그물 등 전통적인 방법으로 천렵을 했다. 농암의 시에서 보듯 조선시대에는 낙동강 700리를 터전으로 삼아 생계를 잇는 어부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어부는 그 이전에도 존재했다.

현재 민물에서 이루어지는 내수면어업은 대한민국 총 어획량의 약 1%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산업화가 시작되기 이전 내수면자원조사서(1970)에 따르면 낙동강에서 잡힌 담수어 총생산능력은 1만1천900t이었으며, 어획고는 370t으로 전국 내수면어획고의 30%에 이르기도 했다.

지금도 대구·경북과 부산·경남 등 낙동강본류에만 200여명의 어민이 내수면어업허가를 받아 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대구 인근 낙동강에는 달성군 6명, 고령군 7명 등 총 13명의 어부가 있다. 이 가운데에는 30년이 넘는 경력을 가진 어민과 2대째 물고기를 잡는 어부도 있다. 하지만 이들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낙동강어부는 홍수 등의 자연재난이나 전쟁 등 인공재해를 제외하곤 물고기를 잡으며 생계를 잇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낙동강유역 어민이 지금까지 생계의 위협을 느낀 사례는 크게 두 번이다. 한 번은 91년 페놀오염사태 때 강물이 오염되면서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해 물고기의 씨가 마를 뻔한 사고였다. 그다음은 4대강사업 이후 강물이 탁해짐으로써 수생생태계 교란으로 생긴 어종고갈이다.

4대강사업 이후 낙동강 어업 환경변화에 따라 어민의 어획량이 최근 4년간 3분의1 수준으로 감소하자 지난 19일, 정부는 내수면과 해수면 어민 1천900여명에게 77억원 상당의 보상을 해주기로 결정했다.

4대강사업 이후 대구 근교 낙동강 어부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고령군 다산면, 성산면과 달성군 화원읍 낙동강에서 물고기를 잡아가며 살아가는 어민을 만나 그들의 애환을 들어봤다. 또 4대강사업의 여파로 생긴 생태계 교란과 그 피해에 대해서도 살펴봤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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