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대결] 빅 아이즈·워터 디바이너

  • 윤용섭
  • |
  • 입력 2015-01-30   |  발행일 2015-01-30 제42면   |  수정 2015-01-30

★ 빅 아이즈
‘빅 아이즈’그린 무명화가, 재혼 남편에게 명성 도둑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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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를 바탕으로 한 ‘빅 아이즈’는 팀 버튼 감독과의 특별한 인연으로 시작된다. 큰 눈을 부각시킨 독특한 화풍의 빅 아이즈 그림을 어릴 적부터 보고 자랐다는 팀 버튼은 “늘 나를 지켜보는 것 같은 큰 눈에서 예술적 영감을 얻었고, 또 무언가를 느꼈다”고 말했다.

이는 그의 작품세계로 이어지며 ‘유령 신부’ ‘크리스마스 악몽’ 속 큰 눈을 가진 캐릭터의 탄생을 알렸다. 심지어 20세기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조차도 빅 아이즈의 철학을 따라 했다고 볼 수 있을 만큼 현대 미술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영화 ‘빅 아이즈’가 주목한 건 그림 뒤에 숨겨진 놀랍고도 흥미로운 이야기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팀 버튼 신작
성공과 함께 찾아온
두 남녀 사이 정체성 논란에 초점


첫 남편과 헤어지고 싱글맘으로 딸을 키우며 살아가던 무명화가 마가렛(에이미 아담스)은 화가가 되고 싶었던 부동산 업자 월터(크리스토프 왈츠)와 재혼한다. 결혼 후 월터는 한 클럽에서 마가렛의 빅 아이즈를 전시하기 시작하고, 그림이 큰 호응을 얻자 마가렛의 이름이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그림을 팔기 시작한다.

이후 월터는 일반 대중을 상대로 그림과 포스터를 파는 사업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야말로 대중미술 상업화에 대혁명을 일으킨 것. 하지만 폭력적인 월터를 피해 하와이로 피신을 간 마가렛은 자신이 진짜 창작자임을 언론에 밝히고 남편을 고소하기에 이른다.

빅 아이즈는 “사실이 아니었다면 믿을 수 없는 스토리”라는 팀 버튼의 말처럼 마가렛의 독창적인 화풍의 전시와 함께 그림의 진실을 찾아가려는 그녀의 행적을 쫓는다. 영화의 배경은 여성의 사회활동이 자유롭지 않았던 1950년대다. 당시 일을 원하는 여성 지원자는 드물었고, 집 밖을 나가는 것조차 꺼려했던 시기에 싱글맘인 마가렛은 돈을 벌기 위해 거리의 화가로 나서야 했다. 이는 그녀의 예술을 대중에 알리고 인생의 가치를 새롭게 정의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경제활동이 없다는 이유로 사랑하는 딸의 양육권까지 전 남편에게 빼앗길 위기에 처해 있던 그녀에게 구세주처럼 나타난 건 월터다. 월터 역시 편법이지만 그녀를 통해 못다 이룬 화가의 꿈을 실현하게 된다. 문제는 탁월한 수완가이자 영리한 사업가였던 그가 빅 아이즈의 실제 작가인 양 착각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월터가 미술계에 끼친 영향을 간과할 순 없다. 그는 빅 아이즈 그림으로 당시로서는 파격에 가까웠던 미술의 대량 마케팅을 창조해냈다. 부유층의 소유물로만 여겨졌던 미술작품을 서민도 부담없이 구입할 수 있을 만한 가격으로 대중화를 선도했고, 예술계에 일대 혁명을 일으켰다.

미처 몰랐던 역사의 한 부분이라는 점에서 이 이야기는 상당한 매력을 지녔다. 동시에 영화는 빅 아이즈의 성공과 함께 찾아온 두 사람 사이의 정체성 논란에 초점을 맞춘다. 진짜 화가 행세를 하는 월터를 보며 충격에 빠진 마가렛은 점차 갈등하게 되고, 그때마다 능수능란한 월터의 겁박과 회유가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미디어의 위선과 대중예술의 허상 등을 키치적으로 보여주며 흥미로움을 더한다.

팀 버튼은 이를 그의 장기인 비주얼 특수효과 대신 이야기와 캐릭터에 집중한 드라마로 풀어간다. 이 점이 기존 팀 버튼 스타일의 차별성으로 느껴지지만 오히려 그의 시작과 뿌리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팀 버튼적인 작품세계의 원형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밝고 따뜻한 분위기와 기묘하게 어우러지는 특유의 긴장감은 천재적인 비주얼리스트이자 이야기꾼인 팀 버튼의 존재감과 가치를 새삼 입증하는 인상적인 결과물로 기억될 듯하다.(장르:드라마 등급:12세 관람가)


★ 워터 디바이너
아버지, 전사한 세 아들 시신 찾으러 전장으로 뛰어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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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 중 호주와 뉴질랜드로 구성된 연합군 세력은 고립된 채 싸우고 있던 러시아에 물자를 보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독일의 주 동맹국인 터키의 갈리폴리 상륙 작전을 강행했다. 바로 그 유명한 갈리폴리 전투다. 7개월간 치러진 이 전투에서 연합군은 약 22만명의 사상자를 내며 철수했고, 터키군 역시 약 25만명의 사상자를 내는 막대한 희생을 치렀다. ‘워터 디바이너’는 이 전투로 가족을 모두 잃은 한 남자의 놀라운 여정을 따라간다.

갈리폴리 전투 후 4년. 당시 전투에 참전해 세 아들을 잃은 코너(러셀 크로)는 아내마저 비통함에 스스로 목숨을 끊자 아들들의 시신을 찾기 위해 낯선 땅 터키로 향한다. 그리고 터키에 도착해 우연히 만난 소년에 이끌려 얼떨결에 숙소를 정하게 된다. 이곳에서 소년의 어머니이자 숙소의 주인인 아이셰(올가 쿠릴렌코)를 만나게 되지만, 갈리폴리 전투에서 남편을 잃은 그녀의 시선은 증오심과 적대감으로 가득하다.


제1차세계대전 갈리폴리 전투 배경
호주 수맥탐사 전문가 부성애 물씬
명배우 러셀 크로의 연출 데뷔작


‘워터 디바이너’의 영화화는 제1차 세계대전 참전 군인의 묘지에서 발견된 한 장의 편지에서 출발했다. 이를 기반으로 부성애에 초점이 맞춰진 영화는 코너가 호주에서 터키를 찾아온, 당시 유일한 아버지라는 점에 주목했다. 코너는 아들의 시신이라도 찾겠다는 일념으로 전운이 채 가시지 않은 터키를 찾아왔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빛바랜 아들의 흑백사진만을 달랑 들고서다. 자칫 무모하게 보일 수 있는 코너의 행동은 자신의 권유로 전쟁터로 떠났던 세 아들에 대한 죄책감과 상실감, 그리고 자식들을 데려오겠다는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기도 하다.

코너는 탐사봉을 이용해 수맥을 찾는 워터 디바이너다. 호주처럼 3~4년씩 비가 오지 않는 척박한 환경에서 생명과 같은 물을 찾아내는 만큼 그들은 강인한 생명력과 통찰력을 지닌 사람으로 통한다. 그가 1만4천㎞나 떨어진 터키를 찾아온 것도 오랜 경험으로 터득한 직관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그의 등장은 여전히 호주를 적대시하는 일부 터키인과 이미 갈리폴리에서 전사자의 유해를 수습 중인 영국군에게도 환영받지 못한다. 전반부는 그렇게 아들의 유해 찾기에 나선 녹록지 않은 그의 행보를 따라간다.

다소 느슨하게 진행되던 이야기가 활기를 띠기 시작한 건 큰아들의 생존 소식을 접한 중반부로 넘어가면서부터다. 이 과정에서 코너는 과거 갈리폴리 전투현장에서 적으로 싸웠던 터키군 소령 핫산(일마즈 에르도간)과 우정을 쌓고, 그의 도움을 받는다. 아이셰 역시 적대감을 풀고 그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된다.

‘워터 디바이너’는 러셀 크로의 연출 데뷔작이다. 배우로서 누구보다 화려한 이력을 남긴 만큼 영화에 대한 대중의 기대도 크겠지만, ‘워터 디바이너’는 러셀 크로에게 좀 더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 작품이다. 실제 워터 디바이너였던 아버지에 대한 헌사임과 동시에 호주와 터키 양국 사이의 과거사를 복기함으로써 보다 진심 어린 대화를 건넸다는 점에서다.

최근 부성애 코드의 영화가 대중을 사로잡고 있다고 본다면, ‘워터 디바이너’가 보여주는 부성애는 실화가 지니고 있는 진실의 힘만으로 이들과 차별화를 꾀한다. 인공 감미료가 첨가되지 않은 담백함이 조금은 심심하게 느껴지겠지만, 깊은 울림으로 전해지는 주제와 이야기는 잘 우려낸 국물맛의 그것이다.(장르:드라마 등급:15세 관람가)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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