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 이호성 영남이공대 총장 인터뷰

  • 이창호
  • |
  • 입력 2015-02-05 08:21  |  수정 2015-02-05 08:21  |  발행일 2015-02-05 제27면
“4년제와 맞먹을 만큼 대기업이 원하는 융합 관리자 육성”
‘돈키호테’ 이호성 영남이공대 총장 인터뷰
이호성 영남이공대 총장은 “먼 훗날 ‘학생이 행복한 학교를 만든 총장’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다”고 소망을 피력했다. <영남이공대 제공>

“2009년 첫 직선제 총장에 올라
과감히 학과 감축·정원 조정…
교육과정 재편성 등 과제 남아
취업률보다 취업의 質이 중요
생산기술단과대 전국 첫 개설”


강의를 마친 뒤엔 블루진을 즐겨입고, 학생들과 함께 막걸리를 주고받으며 인생을 논하던 29세의 젊은 교수는 어느덧 한 대학을 이끄는 수장이 돼 있었다.

그 주인공은 이호성 영남이공대 총장(56).

‘돈키호테 총장’ ‘청바지 총장’ ‘럭비공 총장’…. 주변에서 부르는 이 총장의 닉네임이다. 이거다 싶으면 망설이는 법이 없는 추진력, 그러면서도 합리적이고 정확한 판단력은 이 총장을 영남이공대 첫 연임 총장으로 있게 한 원동력이라고 대학가에선 주저없이 말한다. 어떤 이는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이호성표 경쟁력’이라고 했다.

내달 초 제10대 총장 취임 2년째(9대 포함 6년째)를 맞는 이 총장을 만나 그가 대학의 명운을 걸고 걸어온 길과 앞으로 가야할 길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총장 집무실이 맞습니까, 방이 왜 이리 좁고 소박합니까.

“마치 골방 같죠? 과거 총장에 취임하면서 다짐한 게 있어요. ‘나를 혁신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혁신시킬 수 없다’고. 변변한 접견실도 없고 비좁은 방이지만 제 업무 보는 데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집무실은 좁고 작지만 일은 넓고 크게 한다는 게 제 스타일입니다.(웃음)”

-과거 회사를 다니다 대학교수가 되었습니다.(1988년) 특별한 동기가 있는지요.

“회사에선 1년간 연구원으로 일했죠. 그런데 학벌로 차별을 하더라고요. 제가 그런 건 못 참습니다. 과감히 사표를 던졌죠. 이후 제조업체 기술이사 대표로 잠시 있다 영남이공대 교수 공채에 원서를 냈죠. 교수가 되고 난 뒤 ‘딱 3년만 신나게 애들 가르치고 떠나자’고 한 게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 2000년 초엔 대학이 좀 어려웠죠. 그때 결심했습니다. ‘내가 있는 한 이 과(금속과) 안 망하게 할 것’이라고. 동료 교수들에게도 자신있게 얘기했습니다. ‘만약 구조조정이 있으면 내가 먼저 나가겠노라’고. 입시철 학생 모집 하러 100군데 이상의 학교를 돌아다녔습니다. 얼마나 바빴는지 그때 중요한 교수협의회 회장선거에도 투표를 못 했을 정도입니다.”

-‘스승 이호성’은 어땠나요.

“제 강의원칙은 ‘마지막 페이지까지 깨알같이 가르치자’였죠. 학생들이 애 좀 먹었죠. 때론 일요일에도 보강을 들어야 했으니까요. 가끔씩 찾아오는 졸업생이 그래도 그때가 제일 좋았다고 해요(웃음).”

-2005년부턴 보직을 맡으셨습니다.

“그때도 어려운 시기였죠. 전문대는 곧 망한다는 말이 나돌았을 정도였으까요. 학과장 회의부터 소집했습니다. ‘여기서 무너지면 끝’이라고 엄포를 놨죠. 휴일도 없이 학교 재정비에 올인했습니다. 낡은 규정을 정비하고 정부재정지원사업을 준비했습니다. 이땐 한 이틀 밤잠 안 자고 일했죠. 한마디로 엄청난 드라이브를 걸었습니다. 그래서 돈키호테 별명이 나온 겁니다.”

-2009년 영남이공대 최초의 직선제 총장이 됐습니다. ‘중단없는 개혁’은 여전했다는데.

“총장 출마 때 ‘대구 최고의 전문대학을 만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를 위해 ‘뜨거운 감자’인 학과감축, 정원조정을 단행했습니다. 교원복무규정도 새롭게 만들었죠. 교수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학교의 잠재력과 위상은 괄목하게 올라갔습니다. 임기 동안은 내가 대학의 주인이라고 여기고 일한 결과입니다.”

-평소 ‘학생이 행복한 학교’를 만들겠다는 소신을 피력했습니다.

“우리 학교엔 어려운 환경 속에서 ‘공업기술’을 배워 사회에 써먹으려고 들어온 학생이 많습니다. 이런 친구들이 졸업 후 자리 잡고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은 학교의 의무입니다. 그래서 전 학생을 귀하게 생각합니다. 어려운 학생을 보면 마음이 짠해져요. 한번은 학생들이 해외인턴 교육에 다녀와서 저를 붙잡고 감사의 인사를 몇 번이고 할 땐 감동의 눈물이 나더라고요.”

-최근 업무차 베트남과 폴란드를 잇따라 다녀왔습니다. 어떤 성과를 거뒀는지요.

“폴란드 얘기부터 할게요. 그곳에 자리 잡고 있는 대구지역 자동차부품회사인 ‘SL’과 폴란드와 3자협력체결을 맺었습니다. 향후 폴란드인은 우리 대학서 연수를 받고, 우리 학생도 현지서 연수를 받은 뒤 SL 에 취업하는 시스템이죠. 앞으로 스페인, 브라질에도 가서 타진할 작정입니다. 학생들을 직접 인솔해 방문한 베트남에선 ‘영남이공대표 직업교육시스템’ 투자여부를 검토했습니다.”

-올해 전국 처음으로 ‘생산기술단과대학’을 개설한다고 들었습니다. 취지는 무엇인지요.

“기계·전기·전자·화공 등 제조업을 대표하는 4개 학과의 교육과정을 일부 통합하는 것인데요. 이는 단순기능중심의 인력양성에서 벗어나 대기업에서 원하는 융합형 현장관리자를 육성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대학은 이 같은 생산기술단과대학을 중심으로 하는 제조업과 간호보건계열을 특성화할 계획입니다.”

-영남이공대는 취업률이 좋은 학교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 대학은 단순 취업률보다 취업의 질을 높이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습니다. 특히 해외취업에 공을 들이고 있죠. 지난해 34명의 학생이 물 건너가 일하고 있습니다. 올핸 이미 49명이 해외취업에 성공했고요. 생각만 해도 학생들이 기특합니다.”

-대학구조개혁의 파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전문대의 경우 산업구조 변화에 따른 교육과정 재편성 등이 관건인 것 같습니다. 이와 함께 ‘전임교원 확보율’ 문제 등도 꼼꼼하게 대책을 세울 작정입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좌우명을 갖고 계시는데 앞으로의 포부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4년제 대학과 맞먹을 만큼 ‘잘 가르치는 대학’이라는 소리를 듣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기업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을 더욱 강화하고 교직원도 신나게 일할 수 있는 대학을 만들겠습니다.”

이창호기자 leech@yeongnam.com

기자 이미지

이창호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사회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