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충남 보령 대천해수욕장

  • 류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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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2-13   |  발행일 2015-02-13 제38면   |  수정 2015-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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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대천 바다. 서해안 최대의 해수욕장이다.

 

오래전 한 남자가 바닷가 숙소의 베란다에 야전 침대를 놓고 편지를 쓰는데, 종이가 분홍빛으로 물들더라 한다. 해면은 점점 진홍색으로 물들어가다 점점 연분홍이 되었고, 바다가 밀려들어 숙소 바로 앞에서 출렁거렸다 한다. 재주가 있다면 시를 쓰고 싶은, 그런 낙조였다 한다. 50여 년 전 남자의 감성은 오늘에도 유효하다. 다만 바다를 정면으로 마주보고 앉은 베란다 바로 아래까지 파도가 들이치는 모습은 떠올리기 어렵다. 해변이 저렇게 넓은데, 바다가 저렇게 먼데, 바다가 목전까지 다가오는 가슴 벌렁한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하얀 조개껍데기의 대천 해변

대천 해수욕장의 해변 너비는 100m에 달한다. 만조시에는 모래사장으로 내려가는 계단의 바로 아래까지 물이 들어온다고 한다. 지금 바다를 마주보고 선 가겟집들은 살짝 물러서 있지만 과거에는 좀 더 바다와 가깝게 나앉은 과감한 집들이 있었나보다. 계단 위를 서성이며 좀체 내려갈 엄두를 못 내다, 저 멀리 머리를 내민 갯바위에 사람들이 몰려 선 것을 보고서야 하얗고 보드라운 해변으로 발 디뎌 본다.

차분하다. 밟는 감도가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하다. 미세하고 부드러운 것들이 밀도 있게 다져진 느낌이다. 대천해수욕장의 백사장은 바다가 밀어올린 조개껍데기가 가루가 된 패각백사장이다. 유입하천이 없고 암석해안의 발달이 약하기 때문에, 사빈의 구성 성분은 대부분 해저의 해성퇴적물인 패각과 주변의 헤드랜드에서 공급된 것이다. 이러한 대천 바다의 패각분 해변은 동양에서 유일한 것이라 한다. 완만한 만을 그리는 백사장이 끝없다. 그 길이가 3.5㎞에 달한다. 어젯밤 바다가 밀어올린, 아직은 부서지지 않은 하얀 조개껍데기들이 보호색을 지닌 고대의 동물처럼 백사장에 놓여 있다.

‘조개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고 불가에 마주 앉아 밤새 속삭이네 저 멀리 달그림자 시원한 파도소리 여름밤은 깊어만 가고 잠은 오질 않네 라라라 라라라라 라라라 라라라라…’ ‘조개껍질 묶어’로 알려져 있는 노래 ‘라라라’다. 가수 윤형주는 옛날 어느 여름 밤 대천해수욕장에서 이 노래의 가사를 지었는데, 그는 자리를 떠나려는 한 여학생을 붙잡기 위해 즉흥적으로 지어 불렀다고 한다. 하얀 목화실로 하얀 조개들을 엮어 목에 걸었던, 그 순정한 시절이 너무 멀게 느껴진다.

동양 유일 조깨껍데기 가루 해변
백사장의 폭 100m, 길이 3.5㎞
조개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고…
윤형주의 노래 ‘라라라’배경지

머드축제 땐 세계 각국 사람 가득
해변 남쪽 끝에는 기암괴석의 岬

북쪽으로 1㎞ 떨어진 대천항
어족 풍부…꽃게·배오징어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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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드광장에 설치되어 있는 머드 관련 제품 홍보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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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천 수산시장. 길가에 면한 가겟집들에 비해 중정 모양의 내부(아래쪽 사진)는 조용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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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광장과 갓바위

대천해수욕장의 중심은 보령 머드축제가 열리는 머드광장이다. 예전에는 ‘바다의 여인상’이 서 있어 ‘여인의 광장’으로 불렸는데 1998년 머드축제를 시작하면서 머드광장으로 명명되었다. 한쪽에 머드 관련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는 광활한 광장은 축제 시즌이면 세계 각국의 사람들로 가득 찬다.

머드광장의 북쪽에는 조명과 음악이 어우러진 분수광장이 있다. 주변에는 민박단지가 형성되어 있고 몇몇 학교의 수련원이 자리한다. 머드광장의 남쪽은 시민 헌장탑이 있는 시민탑 광장이다. 탑의 양쪽에는 운치 있는 카페와 정결히 단장한 횟집이 어깨를 맞대고 늘어서 있다. 광장 끝에는 보령 머드 체험관이 들어서 있는데, 세계최고의 품질인 보령 머드를 직접 이용해 볼 수 있는 곳이다. 머드 체험관 뒤쪽, 대천 해변의 남쪽 끝에는 기암괴석의 갑이 바다로 뻗어 있다. 바위가 갓처럼 생기기도 했고, 고려말엽 오랑캐의 침범이 잦을 때 김성우 장군이 이곳을 지키며 갓을 걸어 놓았던 바위라 해서 ‘갓바위’라 부른다. 과거에는 부근에 주막과 몇 채의 집이 있었고 배를 대기도 했다고 한다.

대천해수욕장은 1930년 7월1일에 개장했다. 오래된 해수욕장이다. 매년 7월1부터 8월20일까지 개장하고, 개장일에는 관내 주민들이 용왕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수신제(水神祭)를 치른다. 옛날에는 각 학교에서 단체로 많이 왔었고, 어떤 학교에서는 몸이 약한 학생들만 추려 인솔해 오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은 한해 천만 명에 이르는 관광객이 대천 바다를 찾는다.

예나 지금이나 대천해수욕장은 국내 ‘굴지의’ 해수욕장이라 칭해진다.

◆대천항 수산시장

대천해수욕장에서 북쪽으로 1㎞ 떨어진 곳, 대천천이 바다로 빠져드는 지점에 대천항이 있다. 1934년에 개발된 대천항은 인근에 너른 갯벌이 있고, 드물게 오염 안 된 청정수역을 끼고 있는 항구다. 바다가 깨끗하니 어족도 풍부한데 특히 꽃게와 배오징어는 보령의 특산물로 손꼽힌다.

고요한 어선으로 가득 찬 부두 옆 수산시장이 떠들썩하다. 오고가는 충청도 사투리가 이국의 장터처럼 황홀하다. 느린 충청도 사투리도 장터에서는 싱싱한 활어처럼 튄다. 1층에서 해산물을 고르고, 2층 식당으로 올라가 기다리면 된다. 복도에서 내려다본다. 푸른 바다와 흰 파도 같은 천막들이 휘 펄럭이는 사이로 바다 것들로 가득 찬 파란 수조가 보인다. 어느 먼 바다의 조각조각들이 여기에 모여 하나의 그림이 되어 있다. 어디서 왔냐고 살갑게 묻던 시장 아줌마처럼, 저들도 서로 어느 바다에서 왔냐고, 그렇게 수런거리고들 있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찾아가는 길

경부고속도로 대전방향으로 간다. 회덕 분기점에서 호남고속도로지선 당진, 전주 방향으로 가다 유성 분기점에서 당진영덕고속도로 공주방향으로 간다. 공주IC로 나가 36번 국도를 타고 청양을 거쳐 보령으로 들어가면 된다. 수산시장 1층은 장터, 2층은 식당이다. 상차림비가 들지만 덤을 넉넉히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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