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표성흠의 캄보디아 편지] 연재를 시작하며-시소폰에서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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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2-13   |  발행일 2015-02-13 제39면   |  수정 2015-07-10
골목길마저 전부 직선…그러나 하나도 속 시원한 답이 없는 추측·상상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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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시대에 구축된 반테이 츠마 벽화 앞에 선 필자. 벽화에 나오는 인물은 힌두교와 불교신화에 나오는 반인반수의 존재인 ‘나가’다. 이 벽화가 있는 사찰은 12~13세기 크메르왕국을 재건한 자야바르만 7세가 만든 것인데 힌두교가 불교로 넘어가던 시대의 편린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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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베이스캠프로 정한 시소폰 한글학교에서 현지인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고 있는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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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팔방이 들판뿐
가장 높은 뒷동산은
50m가 될까말까다

정상에 오르니
양철 지붕에 판자 벽
초라한 절이 있다
스님·동자승도 있다

먹는 물이 귀한 이곳
바위틈서 나오는 석간수
사람들은 물을 찾아
모여들었나보다


나는 이번 떠남을 ‘눈을 통한 여행’이라고 부르고 싶다. 귀와 입은 닫아두고 오로지 눈과 가슴으로만 보는 ‘살펴봄’이다. 여행이란 낯선 곳을 살펴보는 일에 다름 아니다. 낯선 곳을 살펴봄으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나는 수없이 많은 곳을 다니며 웃고 떠들고 마셔대며 허랑하게 지냈다. 말 그대로 관광이었다. ‘사이트싱(sightseeing)’이란 말 그대로 보고 지나치는 것이다. 순간의 느낌이다. 여행이란 낯선 곳에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얘기하고 깨치는 일이 아닐까. 이젠 여행과 관광을 차별화하고 싶다. 나는 관광이 아닌 진정한 여행을 하고 싶은 것이다. 나이 칠십에 더 이상 낭비할 시간이 없다. 이번 여행길은 정말 ‘조용한 살펴봄’으로 나와 다른 이, 우리 사회와 다른 사회,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 그 문화의 차이를 느껴보고 싶다.

문화란 그곳의 과거 역사와 현재를 아우르는 가장 보편적이고도 뿌리 깊은 사회 현상. 눈으로 보아 가슴으로 느껴지는 그 느낌을 기록하는 것이다. 기록이란 머릿속 기록과 문자의 기록이 있겠지. 나는 작가이니까 글과 사진으로 기록을 남길 것이다. 그게 읽는 이의 마음으로 전달이 된다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까지 내가 써온 여행 기사(서른 권이 넘는 책을 포함)는 누군가가 남긴 선견 기록을 베껴먹는 데 지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남의 나라 역사를 논해서 뭘 할까. 아무리 유서 깊은 문화유적지라 하더라도 남의 기록에만 의존하는 여행기를 남긴다면 읽는 이들의 공감을 얻기는 어렵다. 때문에 인용문이 아닌 눈을 통한 느낌을 적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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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신화와 영험을 간직한 해묵은 불상은 현대인에 의해 새롭게 치장되고 우상화된다.

그나저나 눈을 통한 여행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은 나는 지금 도대체가 무슨 말인지를 알아들을 수 없는 캄보디아에 와 저들이 쓰는 크메르어를 보고 듣고 있기 때문이다. 통역도 번역도 받을 수 없는 곳이다.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그간의 짧은 식견으로 알고 있는 지식을 총동원해 나 혼자 보고 느낀 것을 기록할 뿐이다. 그러자니 편견이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수능시험처럼 정답을 원하는 것도 아니고 누가 잘못 짚었다고 시비를 걸 일도 아니잖은가. 그저 그렇게 담담하게 써내려갈 작정이다.


나는 지금 ‘Serey Saophorn’이라 쓰고 ‘시소폰’이라고 읽는 곳에 머물고 있다. 지도나 간판을 보면 ‘SERY SOPHON’이라 표기한 곳도 있고 그냥 간단히 ‘Siesophon’이라고 쓴 곳도 있다. 크메르어의 영문자 표기법이 통일된 게 없어 일어나는 현상이다. 한마디로 혼란 그 자체다. 따라서 여기 크메르 문자를 안다 해도 그 발음을 흉내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현지 말을 배워서 여행을 원활히 해보자는 생각은 일찌감치 접어야 한다. 영어도 그렇다. 현지인들의 발음과 잉(콩)글리시는 애당초 물과 기름 같은 것이다.

명색이 한국어를 가르치겠다고 한국어교육 선생을 자처하고 와 있지만 이들이 우리말을 배우는 속도와 우리가 이들의 말을 배우는 속도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저들은 잘들 따라 한다. 나는 크메르어의 알파벳조차 엄두를 못 내고 있다. 겨우 한마디 배웠다. ‘억꾼’인데 ‘감사하다’는 뜻이다. 어디 가나 무엇을 하거나 그저 웃으며 억지로라도 억꾼한다. 설마 웃는 낯에 침 뱉겠나. 자전거를 타고 가다 사람을 받을 뻔했는데도 미안하다는 말은 못하고 ‘억꾼’ 하고 말았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는데도 그나 나나 그저 웃고 말았다.

오늘 비로소 이 도시에서 제일 높은 산을 올라가 봤다.

내가 지금 산이라고 했나. 높이가 50m나 될까 말까. 여기서는 ‘프놈’이라고 한다. 수도 프놈펜의 프놈도 ‘산’이라는 뜻이다. 이런 걸 산이라 불러도 되는지 모르겠다. 산이라기보다는 언덕이다. 하여간 이 도시에서 가장 높은 지역이니 조망대 구실을 할 수밖에. 여긴 사방팔방이 들판이라 지평선이 보일 뿐이다. 마치 쟁반 위에 떠 있는 느낌이다. 지붕이 삐죽삐죽한 높은 대문, 우리네 홍살문이나 일주문 같은 게 내 눈에 띄면 그 길 어딘가에는 절간이 있다. 그 길을 따라 갔다. 마치 순례자의 길에 나있는 노랑표식의 화살표와 같다.

올라가는 계단 양옆으로 원숭이 모양의 조각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여기도 힌두교와 불교가 혼재된 상태라고 보면 되겠다. 자전거를 끌고 산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자전거가 어디 서 났냐고? 집안에 부서져 던져둔 헌 자전거가 있기에 고쳤다. 녹도 닦고 브레이크도 갈았다. 비록 삐거덕거리는 소리는 나도 브레이크는 잘 들어야 하지 않겠나. 오토바이 행렬 속을 비집고 나가자면 순발력을 필요로 하는 자전거 타기이지만 큰길보다는 뒷길을 이용한다. 이제 자전거에 익숙해 낯익은 사람이 많아졌다. 애들은 나를 보고 ‘헬로’란다.

뒷골목 지리를 아느냐고.

골목길은 전부 직선이다. ‘계획도시’라는 뜻이다. 스마트폰을 통한 도상연습을 수도 없이 되풀이했다. 이것도 인터넷을 설치한 방안에서만 와이파이가 터지기 때문에 방안에서 예습복습 다 하고 나서야 한다. 밖에 나와서는 스마트폰도 무용지물. 스마트폰 번역기 사용 같은 건 꿈도 못 꾼다. 와이파이가 터져야 말이지. 잘못 데이터를 사용했다가는 원고료 아무리 많이 받아도 통신료도 못 당한다. 하여 통신용 전화기는 따로 구입해 사용하고 있다. 현지 유심 칩을 꽂아 사용하는 전화료와 한국통신사의 전화료는 천지 차이다. 마음 놓고 한국과 통화했다면 수십만 원 통신료를 물어야 한다. 20달러짜리 현지 유심 칩 꽂고 현지 전화번호 받으면 충전량 다 닳을 때까지 사용할 수 있다. 하는 수없이 휴대폰 두 대 갖고 산다.

어쨌든 뒷동산을 올랐다. 무슨 유명관광지가 아니다. 그저 동네 사람이 와서 불공드리는 동네 절이라 한적하기 그지없다. 아름드리 이양나무에 비하면 절집은 너무 초라한 창고 방이다. 양철지붕에다가 판자대기로 막은 벽이 고작이다. 그런데도 금칠을 한 불상이 있다. 놀러 온 동네 사람과 스님이 잡담을 한다. 한편에선 축구를 하는 스님도 눈에 띄고 마른 비질을 하고 있는 동자승도 있다. 언덕 위 손바닥만 한 텃밭에서 축구라니. 공이 굴러 내려가면 족히 108계단을 오르내리며 주워 와야 할 판국이다.

관광객들이 오는 곳이 아닌 이런 곳에 왜 절간이 생겼을까. 사방을 둘러보았다. 높다는 것 외엔 별 특징이 없다 생각했는데 아차, 지나친 게 있다. 바위틈에서 나오는 석간수가 있다. 부여 고란사가 생각난다. 고란초를 띄워 떠 온 약수로 왕의 찻물을 끓였다고 하더라. 여긴 그런 권위적인 인물이 살던 곳은 아닌 듯 이 우물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한 모양이다. 여긴 물이 귀하다. 지대가 낮아 온통 습지이긴 하지만 먹을 물은 귀한 편이다. 집집마다 마당에 커다란 물통이 놓여 있다. 마치 이집트나 트로이 유적지 부근에 뒹굴고 있던 대형 항아리 모양의 물통이다. 고대 이집트나 그리스 로마인은 그 초대형 항아리에 향료와 올리브유를 담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여기 사람은 같은 항아리인데도 물을 받아두곤 바가지로 떠서 식수나 빨래를 한다. 내가 머물고 있는 선교센터는 다행스럽게도 수도가 연결돼 있어 물통에서 물을 길어오는 수고는 안 해도 되지만 툭하면 물이 끊어져 비누칠을 한 채로 머리를 감다 말고 샤워를 중단해야 하는 불상사가 일어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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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현실이고 보면 석간수를 의지하고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하겠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다. 그래서 큰 바윗돌도 숭배의 대상이 되나 보다. 여기 기도처가 생긴 것은 당연지사겠다. 앙코르와트의 위세와 다른 점이다. 앙코르와트는 무너졌어도 이 절은 남아 있다. 이게 민중 신앙이다. 이 신심을 유지시키기 위해 집집마다 성역을 만들어 기도대가 만들어졌다. 심지어는 시장 한 가운데에도 기도를 할 수 있는 기도처가 있다. 시장 상인들은 거기서 돈 많이 벌게 해달라고 기도하겠지. 이들에게 있어 신앙은 생활 그 자체다. 바위에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상형문자 같아 해독할 수가 없다. 물어볼 수도 없다. 여기가 티베트나 네팔 같았다면야 어림짐작으로 ‘옴마니반메훔’ 정도로 때려잡을 수 있겠는데 그게 아닌 것 같다. 관세음보살이나 나무아미타불 정도로 이해하면 될까. 그래도 석연찮은 게 있다. 바위 위에 지어진 산신각 같은 절집 지붕 처마를 받치고 있는 박공을 보니까 불교에 등장하는 인물이 아닌 것 같다. 어쩌면 저게 원숭이 하누만의 변신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힌두교의 영향을 받은 것 같기도 하다. 여기는 온통 힌두교와 불교가 융합돼 여기만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마치 우리네 절간에 유교의 영향으로 들어선 산신각이 공존하고 있는 것과 같다.

내가 왜 이 연재를 눈을 통한 여행이라고 제목 붙였는지 이해가 가는가. 하나도 속 시원한 정답이 없는 추측과 상상뿐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식의 여행을 하고 여행기를 쓰기 위해 ‘시레이사오폰’이라 적고 ‘시소폰’이라 부르는 이곳을 베이스캠프로 삼고 캄보디아는 물론이고 인도차이나 반도 구석구석을 둘러볼 작정이다. 다음 행선지로는 반테이 멘체이에 위치한 츠마 템플을 찾아가볼까 한다. 태국 국경지역으로 앙코르와트처럼 ‘셀카봉’에 휘둘리지 않는 곳이다. 자, 이제 떠나자. 길을 나서는 자만이 여행의 기쁨을 얻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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