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동행] 4代가 한지붕…“우린 365일이 설날이죠”

  • 이춘호 황인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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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2-18   |  발행일 2015-02-18 제1면   |  수정 2015-02-18
의성 우종한씨 가족 이야기
세대 벽 허문‘눈높이 대화’…컴퓨터게임은 먼나라 얘기
매일매일 손녀들 재롱잔치
20150218
시조모와 시부모, 그리고 남편과 세 아이를 위해 정성스럽게 사과를 깎고 있는 며느리 김보라씨(오른쪽)의 환한 미소에서 대가족이 함께 부대끼며 사는 삶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경북 의성군 안계면 도덕리 434.

의성군청에서 70리(28㎞), 안계면사무소에서 10리(4㎞) 떨어진 농촌마을. 해발 300m 고도산 자락에 새 둥지처럼 깃을 튼 우종한(67)·이옥자씨(64) 부부의 집으로 향했다.

지난 14일 오후 4시 4대(8명)가 오순도순 살아가는 우씨 집에 도착했을 때 땅거미가 밀려오고 있었다. 기자를 제일 먼저 반긴 것은 요즘 아이들한테서 거의 듣기 힘든 동요였다.

손녀인 은솔(12·안계초등 5년)·은서(10·안계초등 3년)가 ‘아기염소’를 율동까지 곁들여 가면서 부른다. 즉석 재롱잔치였다. 손녀의 노래가 끝나자 모친 박춘순씨(97)가 활짝 웃으며 박수로 화답한다. 태어난 지 15개월 된 은률이도 언니의 노래에 즉각 반응하며 방글방글 웃었다. 겨울나무처럼 앙상해진 친할머니의 손을 지그시 잡아주던 아들 병택씨(38)와 며느리 김보라씨(37)의 볼에 형언할 수 없는 넉넉한 웃음이 번진다.

보라씨가 그 손길의 의미를 설명해준다.

“아무리 돈을 많이 드려도, 맛있는 음식을 사 드려도, 좋은 약을 사 드려도 살갑게 시조모의 손을 한번 잡아주는 것보다는 못한 것 같아요.”

두 손녀는 이날 봄방학을 했다. 거실에 들어와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증조모 방부터 찾는다. ‘증조할머니, 학교에 잘 다녀왔습니다’라면서 공손히 배꼽인사를 올린다. 방에 누워 있던 증조모도 반색하며 거실로 나온다. 소파에 앉아 증손녀의 재롱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증조모에게 저 재롱만큼 귀한 게 또 있을까.

증손녀의 행신범절이 저렇게 반듯해질 수 있었던 건 조부모가 ‘성공의 기본이 인사’라는 것을 아이에게 솔선수범했기 때문이다.

요즘 아이들을 ‘중독’시킨 컴퓨터게임도 이 집 손녀에겐 ‘먼 나라 물건’. 가족과 노는 게 최고의 즐거움이란다. 어른들이 자기 얘기를 늘 눈높이로 들어주기 때문에 혼자만의 방에 갇힐 우려도 없다. 예의범절의 씨앗이 책이 아니라 바로 ‘밥상머리’에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조부모는 손녀의 피아노 발표회, 학예발표회 등 이런저런 행사에 반드시 참석해 기념사진을 찍는다. 손녀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서다. 우씨가 2G폰 바탕화면에 깔아 놓은 손녀와 찍은 기념사진을 흐뭇한 표정으로 보여준다. 이 집의 가훈은 ‘인내·성실·화목’이다.

글=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사진= 황인무기자 him7942@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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