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제주 안덕면 대평리

  • 류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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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2-27   |  발행일 2015-02-27 제38면   |  수정 2015-02-27
바다와 고개 사이 낮은 음조 고즈넉이 흐르는 마을…저 멀리엔 ‘샘물 솟는 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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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평리는 도둑과 거지와 대문이 없는 마을이다. 수많은 비닐하우스가 있고 마늘밭이 넓게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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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카페. 장선우 감독이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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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평포구에서 보이는 해안절벽인 ‘박수기정’.‘박수’는 샘물을 ‘기정’은 높은 벼랑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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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평리 마을 앞바다. 제주 올레 8코스에 포함되어 있고 군데군데 미술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제주도 일주도로에서 안덕계곡 안쪽으로 들어선다. 골짜기의 좁은 길은 서서히 오르다 고갯마루에서 탁 트인다. 끝없는 바다. 바다는 고갯마루까지 상승했다가 어느새 저 멀리 달아난다. 바다와 고개 사이에 둥그스름한 마을이 있다. 하얗고 반듯한 비닐하우스와 푸른 밭과 지붕과 구불구불 구획을 짓는 검은 돌담들이 보인다. 대평리다.

대평리, 너르다는 뜻이지만
안덕 12개마을 중 가장 작아

바다 향한 높이 130m 절벽
포구서 보는 박수기정 장관

도둑·거지·대문 없는 마을
장선우 감독 카페 자리잡아

◆ 대평 혹은 난드르 마을

대평, 크게 평평한 마을이다. 옛 사람들은 ‘난드르’라 했다. 넓은 들이란 의미다. 동쪽에는 대동천이 흐르고 서쪽에는 월라봉, 북쪽에는 군산이 솟아 있다. 산과 천과 바다로 둘러싸인 둥그스름한 땅이 난드르다. 약 59만5천여㎡(18만평)라 한다. ‘넓다’와 ‘들’에 대한 보편적인 심상으로는 대평이 아니지만, 제주 사람들에게 이 땅은 드물게 크고 넓은 땅이었을지도 모른다. 재미지게도 대평리는 서귀포 안덕면의 12개 마을 가운데 가장 작은 마을이라 한다. 가장 작아서, 부러 대평이라 부른 것은 아닐는지.

오래전에는 용왕의 아들이 이 땅에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용왕난드르마을’이라 부르기도 한다.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약 300년전쯤이다. 원래 돌담으로 폭 싸인 지붕 나지막한 집과 마늘밭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마늘밭은 한 해 평균 1만9천835㎡(6천평)정도가 사라지고 있고 그 자리에는 펜션과 게스트하우스, 카페와 식당이 들어서 있다. 언젠가 난드르라 부르기 어색해질지도 모르겠다.

마을은 매우 고요하다. 대평리는 도둑과 거지와 대문이 없는 3무(無) 마을이다. 담벼락에는 타일벽화가 그려져 있고, 골목골목에는 아담하고 예쁜 게스트하우스가 한집 건너마다 포진해 있다. 대평리는 제주에서 이주정착 비율이 가장 높다고 한다. 마을구성원의 2할이 이주민이고 토지의 7~8할이 외지인 소유다. 최근 대평리를 부르는 새로운 이름은 ‘자유로운 영혼들의 안식처’다.

대평리에 터를 잡은 외지인 중 1세대에 속하는 이는 장선우 감독이다. 그는 마을의 옛집을 개조해 ‘물고기 카페’를 운영한다. 카페 앞에 마늘밭이 펼쳐져 있다. 그 너머는 바다다. 마을을 관통한 길이 시린 초록의 마늘밭을 양쪽에 거느리고 바다로 간다.

◆ 대평 포구와 박수기정

바닷가에는 물질하던 해녀들이 영원히 서있고, 푸른 마늘밭의 가장자리를 따라 유채꽃이 활짝 피었다. 해안을 따라 포구로 가는 길, 유채 잎을 따던 아저씨가 손짓을 한다. “박수기정에 폭포 떨어져. 저기, 저기 봐.” 저 멀리 수직으로 떨어지는 해안 절벽이 안개비에 희부옇다. 절벽은 좁고 긴 바위가 서로를 꽉 물어 하나가 된 모습으로 바다를 향해 전진해 있다. 서너 줄기 폭포가 가장 먼 벼랑에서 떨어진다. 높이가 130m나 되는 성채와 같은 저 절벽을 ‘박수기정’이라 부른다.

박수는 샘물, 기정은 절벽이란 뜻으로 박수기정은 샘물이 솟는 절벽이란 의미다. 절벽 중턱에 대나무가 무성하게 숲을 이루고 있어 ‘대왓기정’이라 불리기도 한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박수기정 뒤로 산방산과 송악산, 형제섬과 사계해안도로가 선명하게 보인다고 한다. 예전에는 절벽 위에서 소와 말을 키워 당나라에 상납했다고 한다. 절벽 아래에 날씨쯤은 아랑곳 않는 낚시꾼이 보인다.

대평포구는 박수기정 때문에 요새처럼 느껴진다. 벼랑 위에서 키워진 소와 말이 대평포구를 통해 당과 원으로 보내졌다. 그래서 대평포구는 ‘당캐포구’라고도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주변에 큰 소나무가 있어 ‘송항’ 또는 ‘송포’라고 불렸다고 전해진다. 포구 주변으로 식당과 카페가 밀집해 있다. 대평포구는 제주 올레 8코스의 종착지로 ‘대평리 용왕난드르 올레 축제’와 전통 테마 마을 프로그램의 운영으로 이름나 있다. 테우 체험, 소라 잡기, 용왕 나들이 체험, 마늘 꿀탕 만들기 등의 프로그램이 있고 5월에서 10월의 주말 저녁에는 포구 입구의 작은 야외무대에서 해상 공연이 펼쳐진다.

예전에는 대평리를 아는가 모르는가에 따라 제주 여행의 고수와 하수를 나눴다는 소문이 있다. 조용히 스며들어온 자유로운 영혼들로 인해 쉬쉬 알려진 대평리는 이제 올레와 축제 등으로 유명해졌지만 여전히 난드르의 낮은 음조가 고즈넉이 흐르는 곳이다. 포구에 배들이 쉬고 있다. 우산을 접어든 몇몇 사람이 벼랑을 향해 멈칫 서있고, 방파제 끝 붉은 등대에는 한 소녀가 누군가를 마중하듯 바다를 향해 서있다. 오후의 공기에 소녀는 구리 빛으로 물들어간다. 그리고 조금 뒤 말할 수 없는 일몰의 아름다움이 왔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대평리는 서귀포 중문의 서쪽에 위치한다. 제주도를 일주하는 1132번 도로에서 안덕계곡 안쪽으로 들어가면 된다. 대평리 포구는 제주 올레 8코스와 9코스가 만나는 곳. 마을 안에 30개 넘는 게스트하우스가 있고 이름난 카페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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