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쏙쏙 인성쑥쑥] 나면서부터 도를 깨달은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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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3-02 08:04  |  수정 2015-03-02 08:04  |  발행일 2015-03-02 제18면
[고전쏙쏙 인성쑥쑥] 나면서부터 도를 깨달은 사람은 없다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인 설을 쇠기 위해 섣달그믐날 광명역에서 기차를 내렸습니다. 마중 나온 아들 내외 틈바구니에서 세 돌 지난 손자가 멀리서 재빠르게 뛰어와서 안기며 “할아버지, 할머니 보고 싶었어요.” 하며 반갑게 맞이합니다. 귀엽고 사랑스럽습니다.

새벽녘에 읽었던 호즈슨 버넷이 쓴 동화 ‘세드릭’이 생각났습니다.

곱슬곱슬한 금빛 머리카락과 발그레한 뺨을 가진 아이 세드릭은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습니다. 자라면서 잔병치레 한 번 하지 않았고, 성가시게 구는 법이 없었습니다. 하는 짓은 늘 귀여워서 누구나 예뻐했습니다.

며느리와 떨어져 살면서 거만하고 냉정하고 자기만 알던 백작 도린코트 할아버지가 귀여운 손자 세드릭을 만난 것은 일곱 살 때였습니다.

두려움 없이 믿음과 용기로 자존감을 가지고 자란 세드릭은 도린코트성에서도 서로 공감하고 배려하며 따뜻한 인정을 나눕니다. 이기심이 많던 할아버지는 차츰 마음을 열어 진심으로 손자를 사랑하게 됩니다.

장 자크 상페의 동화 ‘얼굴 빨개지는 아이’에서 주인공 마르슬랭은 얼굴의 빨간 모습 때문에 혼자 노는 것을 더 좋아하고, 소외감으로 외로운 사춘기를 보냅니다. 그러다가 재채기를 습관적으로 하는 친구를 만납니다. 얼굴이 빨간 것, 재채기를 하는 것은 하나의 다름일 뿐인데 이웃들이 서로 공감해서 끌어안아주지 못합니다. 가슴 아프고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동화작가 서정오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게 뭐냐고 누가 묻는다면 ‘그것은 아이들 눈에 맺힌 눈물’이라고 서슴없이 대답합니다. 그중에서도 슬픈 이야기를 듣고 저도 모르게 눈가에 번지는 눈물은 더 아름답다고 합니다.

장 지오노도 ‘나무를 심은 사람’에서, ‘세상일이라는 것은 겉만 봐서는 모르는 거야. 참으로 훌륭한 사람의 업적은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그 참다운 가치가 알려진다’고 하였습니다.

일곱 살부터 어른까지 동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공감, 배려, 나눔을 실천하는 감명 깊은 삶을 살았습니다.

논어에 ‘생이지지(生而知之)’라는 말이 있습니다. 생이지지는 ‘나면서부터 도를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바탕을 이루는 성질인 형상이 깨끗하고 선명하여 학문에 별 노력을 하지 않고도 문득 도를 아는 것일 겝니다.

공자는 ‘나는 나면서부터 도를 깨달은 사람이 아니라, 옛것을 좋아하여 이를 재빨리 알아채 나 자신에게 힘쓰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아니다(我非)’라고 말합니다. 생이지지의 천재가 아니라고.

그저 인간 경험과 옛 학문 중에서 좋은 것을 더욱 재빠르게 찾아내어 가면서 꾸준히 지식을 얻었다고 합니다.

설날 어린 손자가 아이들과 함께 세배를 합니다. 아이들을 따라 이름과 나이를 또박또박 소개합니다. 놀랍습니다. 속도감을 느낄 만큼 아이들도 빠르게 자랍니다. 공감, 배려, 나눔을 일깨워야 합니다.

‘나면서부터 도를 깨달은 사람은 없다.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덕담이 정초엔 좋을 듯합니다.

박동규<전 대구 중리초등 교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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