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토크] 영화 ‘순수의 시대’퇴폐적인 진 역 강하늘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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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3-06   |  발행일 2015-03-06 제37면   |  수정 2015-07-10
“야한 장면 너무 리얼하게 표현…잠자리 누워도 잔상 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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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시대’의 진은 왕좌와 사랑을 욕망하는 이방원(장혁), 김민재(신하균)와 달리, 욕정에 사로잡혀 순간의 쾌락에 탐닉하는 인물이다. 정도전의 외손이자 김민재의 아들, 그리고 태조의 부마라는 엄청난 신분은 치기 어린 그에겐 분명 감당할 수 없는 중압감으로 작용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릴 만한 위치에 있었지만 정작 그 누구도, 무엇도 될 수 없었던 남자, 진. 강하늘이 진을 연기했다는 사실은 그 점에서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핫 이슈’로 작용하기에 충분하다. 누구보다 순수하고 반듯한 이미지로 사랑받았던 그가 퇴폐적인 눈빛 하나로 비열하고 야비한 욕정을 드러낸다고 하니 말이다.

강하늘은 ‘대세’라는 수식어가 누구보다 어울리는 배우다. 장안의 화제를 일으킨 ‘미생’을 또 다른 출발점으로 ‘쎄시봉’ ‘순수의 시대’ 그리고 오는 25일 개봉을 앞둔 ‘스물’까지 최근 몇 년간 누구보다 숨 가쁘게 달려왔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연기가 고프다. ‘미생’의 촬영이 끝나자마자 연극 ‘해롤드 앤 모드’를 차기작으로 택한 건 그런 이유에서다. 덧붙여 흔들리는 자신을 다잡기 위한 방법이기도 했다.

‘순수의 시대’는 조선 개국 7년, ‘왕자의 난’으로 역사에 기록된 1398년 야망의 시대 한가운데 역사가 감추고자 했던 핏빛 기록을 담았다. 그리고 그의 필모그래피에 의미 있는 인장을 새긴 이 영화는 조금은 낯설지만 신선함으로 다가온 강하늘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는 흥미로운 시간이 될 듯하다.


영화를 실눈 뜨고 봤는데
솔직히 못 보겠더라
이미지 변신보다는
작품이 먼저 보였으면…
나는 범생이 아니다
놀 때는 신나게 놀아
연극에 대한 애정은 특별


▲영화는 어떻게 봤나.

“어떤 연기자든 자신의 연기를 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나도 실눈을 뜨면서 보기는 했는데 솔직히 못 보겠더라. 아쉬운 점들이 너무 많이 보였다. 좀 더 고민을 했더라면 지금보다 더 좋은 연기가 나올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만 들었다.”

▲기존의 반듯한 모습에 반하는 진의 모습을 관객들은 흥미롭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 보여줬던 이미지와 분명 다른 면을 발견할 수 있을 거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나의 이미지 변신보다는 작품이 먼저 보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느낌들이 충분히 전달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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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접근이 부담스럽진 않았나.

“부담은 당연히 있었다. 어떤 작품이든 역할에 상관없이 부담감은 있게 마련이다. 이 작품에서 특별히 힘들었다고 생각했던 건 육체적, 정신적으로 좀 센 장면들을 찍고 나서다. 당시에는 그냥 연기라고 생각하고 찍었는데 나중에 잠자리에 누우면 잔상이 사라지지 않았다. 매 장면을 너무 리얼하게 표현했던 때문인지 심적으로 좀 힘들었다.”

▲누가 봐도 힘들었을 것 같은 연기다. 그래서 이 작품에 도전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나.

“내가 등장하는 신들이 부각되긴 했는데 그런 점 때문에 이 작품을 선택한 건 아니다. 진이라는 캐릭터만을 봤을 때 어떤 재미적인 부분을 느꼈다. 부마는 왕의 사위인데 진은 아직 인간적으로 덜 성숙한 인물이다. 그런 사람이 부마의 위치에 있게 된 거다. 그 갭을 표현하는 게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극 중 두 인물은 뚜렷한 욕망을 갈구한다. 반면 진의 욕구는 분명치가 않다.

“진의 욕망은 바로 ‘그’다. 그가 우주의 중심이고, 그가 원하는 건 다 되는 세상인 거다. 어린애 같은 그의 욕망은 다른 사람들처럼 권력과 사랑이 아닌, 단순히 욕정에 대한 욕망만 가지고 있다. 하지만 첩을 둘 수도 없고, 기방 출입도 자유롭지 못했던 부마라는 위치에 있었던 진은 그 제한된 욕정을 표출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게 된다. 그런데 그게 나쁜 방법이었던 거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 탈이 없으니까 그는 이 방법이 맞다고 생각하게 된다.”

▲제목이 ‘순수의 시대’다. 다소 역설적인 제목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잖아도 사람들이 물어본다. ‘순수의 시대’인데 왜 이렇게 야하냐고. 그런데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한다. ‘순수’라는 건 단순히 착하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순수악’이라는 말도 있듯 순수는 주위의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휘둘리지 않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순수는 항상 깨끗하고 밝은 것만이 아니라, 악한 사람이 악한 마음을 순수하게 가지고 있는 것도 같은 의미라고 생각한다. 극 중 인물들 모두 하나의 욕망을 가지고 있는 순수한 사람들이었기에 그들이 부딪혔을 때 더 치열할 수 있었던 거다. 순수와 순진은 다르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것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그 점에서 나는 제목부터 되게 마음에 들었다.”

▲답변에 거침이 없다. 작품이나 캐릭터 준비에 철저한 것 같다.

“작품 분석은 좀 철저히 하는 편이고, 캐릭터 분석은 그에 비해 간결히 하는 편이다. 예전에는 나도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A4용지에 빼곡히 나름의 인물 분석과 일대기를 정리했다. 그런데 나에게는 맞지 않더라. 많은 것들을 미리 준비해 놓으니까 표현하는 데 한계가 생겼다. 일종의 자기 검열인 셈이지. 그래서 공연을 하면서 터득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데, 캐릭터에 어울리는 음악과 그림 하나씩을 설정해 추상적인 이미지를 그려 놓는 방법이다. 그렇게 하면 캐릭터 접근이 편해진다. 표현의 한계도 없어지고 색깔도 더 잘 보인다.”

▲이번에는 어떤 그림과 음악으로 캐릭터를 설정했나.

“그림은 빨간 장미를 탐하려고 수많은 개미들이 줄지어 올라가는 사진을 보고 착안했다. 또 음악은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친구에게 부탁해서 높은 음들로 이뤄진 바이올린 곡을 부탁했다. 가사가 있는 음악은 캐릭터 음악으로 설정하지 않는다. 가사 때문에 캐릭터가 갇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설정된 그림이나 음악을 통해 캐릭터의 감정뿐 아니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들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까지 가능해졌다. 그래서 평소 콘서트나 전시회에 자주 가는 편이다.”

▲실제의 모습은 어떤가.

“나를 학교와 집밖에 모르는 범생이로 보는 분들이 많더라. 절대 그렇지 않다. 솔직히 그런 사람은 되게 재미없지 않나. 놀 때는 신나게 놀고 자유로운 편이다. 대신 ‘돌아갈 곳이 있는 게 진짜 자유’라는 말이 있듯 일을 할 때는 확실히 일에 집중한다.”

▲부모님이 과거 연극을 하셨다고 알고 있다. 연기에 입문하게 된 것도 그 영향을 받은 건가.

“아무래도 피를 속일 수는 없는 것 같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내가 연극을 하겠다고 말씀 드린 후다.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과 함께 연극을 보러 자주 갔는데 알게 모르게 연극에 대한 추억이 남아 있었던 것 같다. 중학교 때 길을 가다가 우연히 교회 성극단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무작정 들어갔다. 종교는 없었지만 재미있을 것 같았다. 해보니 진짜 재미있었다.”

▲연극이 출발점인 셈이다.

“당시 연기를 할 수 있는 통로는 연극밖에 없는 줄 알았다. 그리고 처음에는 막연히 연기가 아닌, 연극에 종사하고 싶었다. 교회 성극단에 있을 때도 연기를 한 게 아니라 소품을 담당했고, 고등학교 연극반에서도 조명을 담당했다. 그러다가 단역을 잠깐 해볼 기회가 생겼는데, 그때 연기의 매력을 처음 느꼈다.”

▲부모님이 모니터링을 해주는 편인가.

“공연을 하고 나면 처음에는 왠지 민망하고 어색해서 일부러 집에 늦게 들어가곤 했다. 그런데 점점 나이가 들어가니까 부모님이 모니터링을 해주시는 게 고맙게 느껴지더라. 제일 가까운 사람이 내 연기를 객관적으로 말해줄 수 있다는 건 사실 되게 행복하고 고마운 거다. 어머니는 ‘미생’을, 아버지는 ‘쎄시봉’을 가장 재미있게 보셨다고 말씀하셨다.”

▲영화, 드라마, 뮤지컬, 연극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다. 모두 연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그래도 특별히 애정이 가는 분야가 있다면.

“연극이다. 연기를 시작한 것도 연극을 하시는 부모님 때문이고, 어렸을 때부터 봐왔던 것도 연극이다. ‘미생’이 끝나자마자 연극 ‘해롤드 앤 모드’를 선택한 것도 그 때문이다. 나를 다잡고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알다시피 ‘미생’이 인기가 많았다. 덕분에 주변에서 많은 관심을 가져 주셨다. 그건 고맙고 행복하고 감사하지만 나 스스로는 경계를 해야 했다. 대중의 인기와 관심은 ‘단술’이라고 생각한다. 달다고 계속 마시면 이성을 잃고 취하게 된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두 달을 꼬박 무대에 섰다. 결과적으로는 배운 것도 많았고 잘한 선택이었다.”

▲좋은 작품의 기준은 뭔가.

“사람들마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가치관이 있다. 그 가치관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대중을 변화시키고 진화시킬 수 있으면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생각을 할 기회를 던져 주고, 좋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고, 무엇보다 즐거움을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예술이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의미가 그런 게 아닐까.”

▲이번 캐릭터에도 그런 생각으로 접근했나.

“앞서 말했듯 역할만을 본 게 아니라 작품 전체를 봤다. 특히 이 영화가 즐거운 작업이었던 건 나는 아직 27년밖에 살아보지 못했다. 그런데도 내 인생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런데 조선왕조는 500년이다.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겠나. 게다가 이 작품은 픽션이다. 실록에 나와있는 것 이면의 것을 비하인드 스토리로 만들어냈다. 이런 작업을 한다는 게 정말 흥미롭고 재밌었다.”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

“지난 ‘2014 SBS 연기대상’에서 뉴스타상을 수상하고 한 말이 있다. ‘좋은 연기자가 되기보다는 좋은 사람이 먼저 되고 싶다’고. 좋은 연기자가 되는 것보다 훨씬 힘든 일일 수 있지만 꼭 그렇게 되고 싶다. 불가능한 꿈을 꾸면 모든 게 가능해질 수 있다고들 하잖나. 그게 요즘 나의 최대 관심사다.”(웃음)

글=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사진=김현수(프리랜서)dada245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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