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대결] 버드맨·세인트 빈센트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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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3-06   |  발행일 2015-03-06 제42면   |  수정 2015-03-06

★ 버드맨
퇴물배우 통해 엔터테인먼트업계 이면 예리하게 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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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히어로물 ‘버드맨’으로 한때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던 리건 톰슨(마이클 키튼). 하지만 이제 그는 명성과 인기, 돈까지 떨어진 한물간 퇴물 배우일 뿐이다. 그가 과거의 명성을 되찾고자 감독, 각색, 주연을 맡은 레이먼드 가버 원작의 연극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으로 브로드웨이에 도전장을 내민다.

그런데 상황이 녹록지 않다. 리허설 도중 어이없는 사고를 당한 주연 배우의 대타로 투입된 연기파 배우 마이크(에드워드 노튼)는 제멋대로 굴어 리건의 혼을 쏙 빼놓고, 마약 재활원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된 딸 샘(엠마 스톤)은 다시 약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또 무명 배우를 벗어나 처음 브로드웨이에 서는 여배우 레슬리(나오미 왓츠)는 불안감을 호소하며 그를 심리적으로 압박하고, 브로드웨이의 스타 비평가는 연극을 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의 연기를 대놓고 폄훼한다. 연극의 오프닝이 다가올수록 중압감과 불안감에 휩싸인 리건은 이제 그의 또 다른 자아인 버드맨의 환청까지 듣기 시작한다.


아카데미 작품·감독상 등 4관왕에 빛나
감독·배우 실제 삶과 닮은 이야기
끝없는 즉흥연주 같은 롱테이크 인상적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한 ‘버드맨’은 퇴물 배우가 되어버린 리건을 중심으로 마치 폭발 직전의 시한폭탄처럼 아슬아슬한 무대 뒤의 모습을 속도감 있게 그려낸다. 무비 스타와 연기파 배우의 흐릿해진 경계를 21세기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대한 신랄한 풍자극으로 담아내고, 다양한 콤플렉스와 욕망을 지니고 있는 인물들로 하여금 이를 예리하게 포착했다. 연출은 멕시코 출신의 알레한드로 G. 이냐리투 감독이 맡았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21그램’ ‘비우티풀’ ‘바벨’ 등의 영화를 선보였던 그는 특장이라 할 수 있는 깊이 있는 시선과 사실적인 묘사로 리건과 주변 인물들의 모습을 매혹적으로 담아냈다.

‘버드맨’은 연극, 혹은 그저 단순한 배우의 이야기가 아니다. 성공의 덧없음과 보잘것없는 개인의 존재감, 그리고 자신의 꿈과 점점 멀어지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특히 리건이 스스로 자랑스러워할 수 있도록 자아의식을 회복하는 과정은 알레한드로 감독 본인이 예술가로서 느꼈던 자아에 대한 직면이기도 하다. 사실 이 영화의 소재와 이야기는 감독뿐 아니라 출연 배우들의 실제 삶과도 닮아 있다.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으로 전성기를 맞았던 마이클 키튼은 ‘배트맨2’ 이후 흥행작이 없자 잊힌 배우가 되었고, 브로드웨이 출신의 에드워드 노튼은 현재도 브로드웨이에서 매혹적인 연기로 사랑받고 있다. 나오미 왓츠 역시 오랜 무명 생활을 견디고 스타덤에 오른 케이스.

이 영화가 인상적인 건 롱테이크를 사용해 원 신 원 테이크 영화처럼 보이도록 만들었다는 점 때문이다. 마치 끝없이 연주되는 즉흥연주 같다. 특히 그림자처럼 리건을 좇는 카메라는 미로같이 얽혀 있는 브로드웨이의 뒷모습과 배우들 사이를 유영하며 그들을 속속들이 관찰하는 듯한 흥미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시간과 공간의 분리가 영화의 본질이라고 본다면 ‘버드맨’은 리듬감 있게 연극에서만 가능한 끊이지 않고 다음 장면으로 계속 이어지는 방식으로 인간 관계와 사건들을 흥미롭게 한데 묶었다.

‘버드맨’은 배우들의 캐스팅도 탁월하다. 할리우드가 인정하는 이들 배우의 조합은 환상적인 시너지를 발휘했고, OST로 사용한 안토니오 산체스의 드럼 연주는 이야기와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알레한드로 감독의 성공적인 복귀를 알린 ‘버드맨’은 그 점에서 연기와 연출, 음악과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맞물리고 기능적으로 발휘한 완성도 높은 결과물이다.(장르:드라마 등급:청소년 관람불가)


★ 세인트 빈센트
까칠한 60대 노인과 10세 소년의 나이 초월한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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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빌 머레이)와 올리버(제이든 리버허)는 특별한 친구다. 세상과의 소통을 거부한 채 혼자만의 세상을 살던 까칠한 60대 노인과 아빠와 떨어져 엄마와 단 둘이 살게 된 10세 소년과의 50년의 나이차를 뛰어넘는 우정이라는 점에서다. ‘세인트 빈센트’는 그런 두 사람의 만남을 코믹과 휴먼 드라마로 담아낸다.

퉁명스러운 말투와 만사가 귀찮은 듯 심드렁한 표정으로 살아가는 괴짜 노인 빈센트. 술과 도박을 좋아하고 친구는 임신한 러시아 출신의 스트리퍼 다카(나오미 왓츠)가 유일하다. 그런 그의 이웃집에 엄마 매기(멜리사 맥카시)와 함께 이사를 오게 된 올리버. 간호 도우미 일을 하는 매기는 남편의 외도로 별거를 선택했다. 하지만 이사온 첫 날, 이삿짐센터 직원의 실수로 빈센트의 자동차와 나무에 상해를 입힌 올리버 가족은 뜻하지 않게 그와 엮이게 된다. 등교 첫날부터 반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열쇠를 뺏겨 집에 못 들어가게 된 올리버가 얼떨결에 빈센트의 집에 머물게 된 것. 누가 봐도 자격미달이지만 한 푼의 돈이 아쉬운 빈센트는 이를 기회로 베이비시터를 자처한다. 사실 그의 재정상태는 최악이다. 은행의 잔고는 마이너스가 된 지 오래고, 그에게 남은 건 빚과 다 쓰러져가는 낡은 집, 그리고 빈티지 캐딜락뿐이다. 그런 빈센트를 못미더워하는 엄마에게 올리버는 “까칠하지만 멋있는 면도 있다”며 “특히 너무 늙어서 위험하진 않을 것”이라고 안심시킨다.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등장 인물들
더 낳은 삶 위한 연대 감동적
빌 머레이·제이든 리버허 찰떡 호흡


영화는 이후 두 사람의 특별한 관계맺기의 과정을 따라간다. 이제 시간당 11달러를 받는 베이비시터가 된 빈센트. 하지만 그는 올리버를 방치하듯 내버려둔다. 대신 자신의 삶 속으로 데려와 그의 방식으로 세상 사는 법을 알려준다. “이 나라는 방어할 줄 모르면 살아 남기 어렵다”며 싸우는 법을 가르쳐주고, 뜻을 굽히지 말고 용감해지라는 의미로 크게 말하고 담대해지라고 조언한다. 또 리스크 관리와 올인의 개념을 알려주기 위해 경마장을 찾고, 인생의 희로애락을 풀 수 있는 장소라며 술집을 데려간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매기가 경악을 금치 못하는 건 당연한 일.

매기는 현재 올리버의 양육권을 놓고 남편과 소송이 진행중이다. 그녀는 올리버를 지키기 위해 빈센트와의 만남을 금지한다. 하지만 올리버는 남들이 모르는 빈센트의 숨겨진 비밀을 알고 있다. 베트남 파병 중 포로가 된 군인 두 명을 구해낸 영웅이기도 한 그는 알고 보면 아내에게 헌신적인 순정파다. 지난 8년간 한 주도 거르지 않고 치매에 걸려 요양중인 아내를 찾아가서 말 벗이 되어주고, 그녀의 빨랫감만은 손수 담당해왔다. 무심하고 시니컬한 듯 보여도 그 이면에는 희생과 인간애가 충만했던 것.

올리버는 빈센트에게 편견을 갖고 있는 세상 모든 사람에게 그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마침 학교에서 ‘당신에게 영향을 준 가톨릭 성인과 실제 삶에서 그 성인을 닮은 사람을 찾으라’는 과제물을 내주게 되고, 올리버는 입양된 아이들의 수호 성인으로 불리는 세인트 윌리엄과 비견될 수 있는 인물로 빈센트를 소개한다.

사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 대부분은 하나같이 어딘가 부족하고 결핍을 지니고 있다. 이 영화의 미덕은 그런 그들이 더 나은 삶을 위해 연대하고,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이다. 그 중심에서 정극과 희극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 빌 머레이와 어린 나이가 무색하게 다양한 스펙트럼을 소화해낸 제이든 리버허의 찰떡 호흡은 여느 콤비 못지않게 눈부시다. (장르:드라마 등급:12세 관람가)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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