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포항 영일대해수욕장과 포항운하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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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3-20   |  발행일 2015-03-20 제38면   |  수정 2015-03-20
1.7㎞ 길이 백사장 ‘작은 해운대’…해상누각은 물속에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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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해운대라 불리는 두호동 영일대해수욕장(위)과 바다 위에 우뚝 서있는 영일대. 영일만 저편에 거대한 포스코가 희미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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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일대해수욕장 테마거리의 붓을 든 이순신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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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호동 영일대해수욕장의 왼쪽 끝, ‘설머리’라 불린 동산 아래 작은 어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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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빈내항을 달리는 크루즈. 운하관에서 출발해 동빈내항과 송도해수욕장 앞바다를 거쳐 다시 운하관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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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산강변에 위치한 포항 운하관과 크루즈 선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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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운하, 길이 1.3㎞에 폭은 15~26m다.


영일만은 쓰러진 倭國 力士 손자국이었다는 전설
斗湖라는 동 이름 보면 전설은 진짜일지도 모른다
해변엔 산책로·데크·야외무대·자전거도로·해송숲…
끊겼던 물길 복원한 운하…물살 가르며 배가 달린다

 

영일(迎日), 해를 맞이한다는 뜻이다. 대한민국의 꼬리뼈가 감싸고 있는 깊은 만, 곶과 곶이 소리굽쇠처럼 이어진 바로 그곳이다. 처음에는 호수였다는 전설이 있다. 아주 옛날 힘자랑하기를 즐겼다는 왜국의 역사(力士)가 우리 땅의 창해역사와 치고받다 넘어지면서 손 짚은 땅이 움푹 파여 호수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영일만에 두호(斗湖)라는 동네 이름이 있는 걸 보면 전설은 진짜일지도 모른다.

◆ 해 맞이하는 바다, 두호동 영일대해수욕장

기원후인 157년 즈음, 연오랑과 세오녀가 영일만에 살았다고 하니 이미 호수는 바다였을 것이다. ‘영일’이라는 명칭이 공식적으로 사용된 것은 고려시대 초기부터라 하고 조선 초 김종직은 영일현을 ‘동녘 바다의 고을’이라 기록했다 한다. 커다란 만 자체가 ‘영일’이긴 하지만 2천년 가까운 이름의 역사에 비해 그 사용은 흔치 않아 보인다. 1979년경 나온 최백호의 노래 ‘영일만 친구’와 2009년에 개항한 ‘영일만항’ 정도일까.

새로운 명칭으로서의 ‘영일’은 2013년 여름에 생겼다. 만을 이루는 왼쪽 곶인 흥해읍의 달만곶 저 아래에 1.7㎞가 넘는 백사장이 있는 두호동의 해변, 그곳에 해상 누각인 영일대(迎日臺)를 세우고 ‘영일대해수욕장’이라 명명했다. 원래는 1975년에 개장해 ‘포항북부해수욕장’으로 불렸다. 오랫동안 이곳은 포항 사람들만 찾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사철 사람들로 붐비는 전국적인 명소다.

해변을 따라 산책로와 데크, 야외무대와 자전거 도로, 해송 숲 등이 1.2㎞가량 이어진다. 곳곳에는 미술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도로변에는 횟집과 카페, 호텔 등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작은 해운대라 쉬이 표현되지만 해상누각인 영일대와 해상 고사분수, 그리고 저 멀리 바다 저편에 가로놓여 있는 포스코의 실루엣은 이곳만의 매력이다.

봄이 데려 온 먼지들이 아직 떠도는 탓인지 시계가 흐리다. 수평선이 지워져 하늘과 바다는 하나다. 굵고 긴 많은 기둥들이 해저에서부터 수면 위로 솟아나와 영일대를 떠받치고 있지만, 누각은 물속에 있는 듯하다. 일출은 영일대가 아닌 해변의 단단한 땅에서 맞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누각은 태양의 처소처럼 보일 것이다.

◆ 두호동 설머리의 포구에서

영일대해수욕장의 왼쪽 끝, 나지막한 동산이 바다를 향해 튀어나와 있다. 동산 아래에는 횟집이 조르르 붙어 서 있고, 그 앞쪽에는 작은 포구와 방파제가 바다를 가볍게 안고 있다. 고즈넉한 풍경 속에 하얀 점으로 보이는 갈매기 떼의 움직임이 어지러이 선명하다. 먹을 것이 많거나 방해 없이 쉬기에 적당한 곳이리라.

동산은 옛날 ‘설머리’라 불렀다고 한다. 신라 경순왕 때, 바다와 접하는 땅 끝이 하얗게 눈으로 덮여있는 모습을 보고 눈 설, 끝말 자를 붙여 설말리 혹은 설말동이라 했다 한다. 포구는 고기를 잡으며 살아가는 두호동 어촌계 사람들의 터전이다. 한산한 포구에는 부부가 아무 말 없이 손을 맞춰 그물을 손질하고 있다.

포구에서는 두호동 전체가 한눈에 보인다. 두호라는 이름은 이곳에 있었다는 3개의 호수 중 하나가 머리모양으로 생겨서 두호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3개의 호수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찾을 수 없었지만, 역시 창해역사 전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보다 믿을 만한 유래는 바다로 통하는 길목, 특별한 바다라는 뜻으로 통양포(通洋浦), 두모포(豆毛浦) 등으로 유래되어 오다 두호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일제강점기에는 이 특별한 바다를 통해 소를 빼앗아 갔다고 한다. 번화한 바다였다는 의미겠다. 지금 또 다른 의미에서 두호동의 바다는 번화하다.

◆ 물길의 복원, 포항운하

영일대해수욕장에서 해안길을 따라 영일만의 깊숙한 곳으로 내려오면 동빈내항의 끄트머리에 있는 죽도시장에 다다른다. 시장의 맞은편은 송도동, 그 너머에는 형산강이 동해로 흘러들어간다. 옛날에는 동빈내항과 형산강이 작은 물길로 이어져 있었다. 1960년대 말 포항제철이 건설되고 도시화가 진행되던 때, 물길은 매립되어 주거지역이 되었다.

사라졌던 물길은 지난해 복원되었다. 포항운하다. 물길을 따라 산책로와 공원들이 만들어졌다. 물길 위에 터를 잡고 살았던 2천200여 명은 다른 곳으로 이주했다. 그들의 이름은 포항 운하관의 벽에 하나하나 새겨져 있다. 물살을 가르며 관광 배들이 형산강과 동빈내항과 동해를 일주한다. 복개와 복원이 시대의 요구에 맞춰 순환한다.

운하관의 야외 전망대에서 형산강이 동해로 흘러가는 모습을 본다. 바다가 호수였을 그때도 강은 흘렀을까. 흘러흘러 호수가 넘쳤을까. 넘어진 일본역사의 손자국이 남겼을 해저의 지형도 변했을 것이니 증명할 길이 없다. 그럴듯함이 사실보다 매혹적인 것은 전설밖에 없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영일대해수욕장은 포항IC에서 포항여객선 터미널 방향으로 가면 된다. 여객선터미널에서 두호동 설머리까지가 영일대해수욕장이다. 죽도시장 쪽으로 내려와 종합버스터미널 쪽으로 가면 포항운하 이정표가 있다. 포항역에서 약 1㎞, 고속터미널에서 500m 정도 떨어져 있어 대중교통을 통한 접근도 용이하다. 운하 크루즈는 순환하는 A코스의 경우 40분 정도 소요, 기상악화 시에는 30분 정도 소요되는 B코스로 운항된다. 매월 넷째 주 월요일은 안전점검의 날로 운항이 중단된다. A코스는 성인 1만원, 11세 이하는 8천원. B코스는 성인 6천원, 소인 5천원, 36개월 이하 유아는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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