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캠페인 소원을 말해봐] 놀이공원 VIP가 된 아동센터 아이들 “왕이 된 것 같아요”

  • 노인호
  • |
  • 입력 2015-03-26   |  발행일 2015-03-26 제2면   |  수정 2015-03-26
21명 이월드서 마음껏 뛰놀아
지도교사 “희망 알게 돼 감사”
[2015 캠페인 소원을 말해봐] 놀이공원 VIP가 된 아동센터 아이들 “왕이 된 것 같아요”

대구시 북구 A아동센터 아이들이 이월드를 찾은 지난 21일 오전 11시40분쯤 회전목마 인근 식당 앞 벤치. 센터에서 온 6학년 어린이 한 명이 눈물을 흘리며 무언가를 찾고 있다. 점심을 먹기 위해 함께 다른 아이들이 두 줄로 섰지만, 아이는 제일 뒤로 돌아와 여전히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30분이 지나도록 눈물은 마르지 않았다. 함께 온 자원봉사자 언니가 몇번을 안아주어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1시간 가까이 눈물을 흘린 건 이월드에 온다고 집에서 가져온 1천500원 중 500원을 잃어버려서다.

“저희 센터에서는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라는 말을 쓰지 않아요. 보호자의 허락을 받아와야 하는 상황이면 ‘집에 계신 어른’이라고 두루뭉술하게 표현해요. 어떤 아이는 아빠가, 또 어떤 애는 엄마가 없거든요.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랑만 사는 아이들도 적지 않아서 그런 말에도 상처를 받아요.”

소원을 신청한 박민아씨(여·23)가 식당 앞 벤치에서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지난달 25일 영남일보 ‘소원을 말해봐’ 신청 e메일에 한 통의 사연이 접수됐다. 북구지역 한 아동센터에서 생활복지사로 일하는 박씨가 보낸 것으로, 센터에 있는 아이들이 테마파크에서 마음껏 뛰놀게 해주고 싶다는 것.

아동센터 아이들은 주변 여건상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 나들이 한번 하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박씨는 설명했다. 거기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센터에 차량과 티켓비 등이 지원돼 문화생활을 할 수 있었는데 올해부터는 그마저도 모두 끊어져 더 막막한 상황이었다.

소원의 내용은 간단했고, 이뤄주기도 어렵지 않았다. ‘이월드’ 측에 이같은 사연을 전했고, 회사 측도 흔쾌히 도움을 주기로 했다.

이날 이월드를 찾은 센터 아이들은 모두 21명. 이 중 4명은 오늘이 처음이다. 아이들은 이월드로부터 이날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손목에 차는 밴드형태의 자유이용권이 아니라 목에 거는 ‘VIP’ 카드를 받은 것.

신규식 이월드 마케팅팀 대리(42)는 “VIP카드는 이월드 대표가 직접 귀빈을 초대할 때만 사용하는 것”이라면서 “처음에는 밴드형 자유이용권으로 하려다가 귀한 손님으로 모셔야 한다는 판단에 이같이 조치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월드에 따르면 현재까지 VIP카드를 사용한 건 두 번뿐이다. VIP카드를 목에 건 아이들은 직원들의 특별한 대접과 주변 사람들의 부러운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한미소양(가명·12)은 “VIP 목걸이를 걸고 있으니까 놀이기구를 탈 때마다 언니와 오빠들이 나를 후하게 대해줘 좋았다. 내가 왕이 된 것 같았다”며 웃어보였다. 윤소희양(가명·9)도 “놀이기구 타려고 줄을 서 있는데 ‘너희 어떻게 VIP 목걸이를 하고 있니’라며 부럽게 쳐다봐서 기분 좋았다”고 전했다.

특히 이날 처음 이월드를 찾은 아이들은 더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조민수양(가명·10)은 “물배(플룸라이드-Flume ride)는 무서우면서도 엄청 재미있어 많이 탔다”며 “이월드에 갈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오늘까지는 설렘이 있어 좋았고, 와서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 좋았다”고 말했다.

이들보다 더 행복한 시간을 보낸 사람은 바로 소원을 신청하고, 아이들과 함께 온 생활지도사 박민아씨다.

“저희 센터가 132㎡(40평) 조금 넘지만, 이용하는 아동이 39명인 데다 공부하는 아이도 있어서 실내에서는 마음껏 뛰놀지 못해요. 근데 오늘 이렇게 마음껏 뛰노는 아이들을 보니까 그동안 미안하고 안쓰러웠던 게 조금은 사라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냥 이월드를 한 번 온 게 아니라 간절히 원하면 이뤄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기회가 된 것 같아 더 감사해요.”

이날 오후 8시쯤. 센터로 돌아간 박씨에게서 한 통의 메시지가 왔다. “아이들이 영남일보가 소원을 들어줘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해달래요.”

노인호기자 sun@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기획/특집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